“당신은 돈을 얼마만큼 벌고 싶은가요?” “내가 ‘노’라고 말하고 싶을 때, ‘노’라고 대답할 수 있을 정도요.”

미국의 유명한 모델 겸 여배우가 한 잡지사 기자의 질문에 대한 답이다. 자신이 거절하고 싶을 때 거절하지 못한다? 또 거절하고 싶을 때 ‘쿨’하게 거절할 수 있는 것과 ‘돈 버는’ 일이 무슨 연관이 있길래….

그 여배우는 궁금증을 ‘자유의지’라는 한마디로 압축했다. 자신이 먹고 사는 일을 해결하지 못하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일들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시도 때도 없이 돈으로 유혹하는 ‘놈팽이들의 갑질’ 앞에서, 흔들리는 자신의 무력함에 좌절하게 된다는 것이다.

 

뿌듯함이 자괴감으로

생업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오면 가장 먼저 오게 될 상실감이다. 그래서 “일자리를 빼앗지 말아 달라”고 축산농가들이 청와대 게시판에 국민청원을 하는 것이다. 정부의 시설 현대화 정책에 따라, 보다 나은 환경의 농장으로 개선하기 위해 투자한 자금도 태반이 부채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면서 가져온 뿌듯함이, 이제는 가족의 구성원에 짐을 부담시키는 ‘기생인력’이라는 자괴감으로 변할 수밖에 도리가 없다.

이러한 상실감이 개인적으로 변화에 따라 받게 되는 상황이라고 치자. 하지만 여기서가 끝이 아니다. 적법화 대상 4만6221농가의 축종별 비중을 보면 한우 71.5%, 돼지 7%, 젖소 6.6%다. 따라서 민족산업인 한우산업이 가장 큰 피해를 입게 될 전망이다.

돼지와 젖소의 경우 이미 수차례의 구조조정을 통해 농가수가 크게 줄어든 상황이어서, 낮은 비중임에도 불구하고 역시 타격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국민 연간 축산물 소비량은 2016년 144.6kg으로 2010년 117.3kg에서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향후 5~6년간 축산업의 생산현장의 구조조정으로 산업 전반에 걸쳐 위축현상은 불가피하지만, 국민들의 축산물 소비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외국으로부터 그 부족분을 수입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2017년 현재 축산물의 자급률과 외국 축산물의 수입 증가율을 살펴보면 더 확연하다. 2017년 축산물 자급률은 소고기 30%대 초, 돼지고기 70%대 중반, 우유와 유제품은 50%초반으로 대부분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경쟁력 약화 불보듯

이와 반대로 지난해 수입액 증가 순을 기준으로 10위 안에 축산물이 3개 품목이나 포함됐다. 돼지고기 1위, 소고기 3위, 치즈가 8위다. 농축산물과 관계없는 1위인 합판 수입을 제외하면 사실상 돼지고기와 소고기가 1·2위다.

지난해 미국산 소고기 수입은 사상 처음으로 10억 달러(약 1조1663억원)를 넘었다고 관세청은 밝혔다. 그것도 12월을 제외한 수치로, 2000년 이후 연간 수입액이 10억 달러를 넘은 것은 처음이다.

지난해 11월까지 국내 반입된 미국산 소고기 물량은 16만6432톤으로, 전년 연간 수입물량 15만6078톤을 이미 추월한 상태다.

값비싼 한우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수입 소고기를 선호하는 소비자들의 구매 심리로 풀이되지만, 향후 적법화로 농가수가 급격하게 줄어들고 동물복지 등이 전면적으로 적용될 경우 한우고기의 가격 경쟁력은 외국산에 비해 더욱 열악해질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지금 정부의 각종 축산업 대책을 보면 자급률은 안중에도 없는 듯 보인다. 자급률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것은, “국내 환경을 오염시키는 산업으로부터 생산되는 축산물을 배제하고, 외국으로부터 사다 먹자”는 일부 비교우위론의 주장을 따르는 방침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이는 축산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환경에 문제가 되고, 여러 가지 문제들이 얽히고 설킨 복잡하고 짜증스러운 축산업을 포기하자는 선언과 같다.

이와 관련 축산전문가들은 “정부나 국회의원들이 수치상으로 12만여 농가에 불과한 규모만을 놓고 축산업을 너무 쉽게 생각한다”고 반박한다. 정말 그런가? 아직도 축산업이 농업의 한 가지에 불과할까?

 

외국산 지배력 강화

축산생산액은 20조원에 육박한다. 전체 농업생산액 44조5190억원의 절반 가까운 43%대다. 소득도 9조에 육박, 농업 총소득의 32%대다. 농촌 경제에 차지하는 비중과 국민에게 제공되는 비중이 그만큼 크다는 뜻이다.

정부와 농협이 목표로 삼고 있는 ‘농가소득 5000만원 시대’에 가장 근접한 것도 축산업이다. 이미 대다수의 축산농가가 그보다 높은 수익을 올리고 있다.

식품·사료·동물약품·기자재·생명공학·육가공·낙농제품 등과 관련된 전후방 연관산업의 생산액은 50조원대에 이른다. 고용창출규모는 56만여명이다. 축산업이 1차 산업의 꼬리를 떼고 2·3차 산업과 연결되면서 명실상부 하나의 산업으로 완전히 자리매김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정청탁금지법(일명 김영란법)’ 등 지난 몇 년간의 수치에서도 나타나듯 축산업의 위축은, 국내산 축산물의 생산량 감소로 이어지고, 외국산 축산물의 국내시장 지배력 강화로 나타나고 있다.

문제가 생기면 이를 지혜롭게 풀어 보다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것이 정부가 할 일이지, 책임을 전가하거나 회피할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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