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소고기를 많이 수입해 먹는 나라다. 식품의약품안전처 발표에 따르면 2017년 소고기 수입액은 24억6378만 달러(한화로 약 2조6808억원)다. 금액으로 따져보면 소고기가 수입식품 중 1위다. 수입 소고기의 시장 점유율도 점점 높아져 국산 소고기를 추월한지 오래다. 특히 우리나라는 미국산 소고기 수입의 큰손이 되고 있다. 광우병 파동을 겪으며 한때 논란의 중심에 섰던 미국산 소고기가 한국 시장을 빠르게 잠식하고 있다.

미국육류수출협회(USMEF)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은 한국에 17만톤, 금액으로 11억4888만달러(약 1조2000억원)의 소고기를 수출해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이는 미국 소고기 수출 국가 중 일본에 이어 두 번째로, 인구당으로 따지면 전 세계 1위다.

특히 신선·냉장 소고기 수입금액(무역협회 기준)은 2016년 1억8929만달러에서 2017년 3억4888만달러로 84.3% 급증했다. 이는 한우와 직접적인 경쟁 상대인 구이용 미국산 소고기 수입이 크게 늘어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는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소고기 시장에서 가장 큰 시장이다. 호주산 소고기 수입 국가 중에서도 3위를 차지하고 있다. 수입산이 밀려들어 오면서 우리나라 소고기 자급률(국산 소비량)은 40% 아래로 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로 인해 국산 소고기 자급률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이듬해인 2013년 50.1%에서 2014년 46.2%, 2016년 37.7% 등으로 날개 없이 추락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향후 5년 내 국산 소고기 자급률이 25%대로 반 토막 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흘러나온다.

미국산 소고기의 수입이 급격히 늘어난 데는 한미 FTA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한·미 양국은 상호 호혜 정신에 기반해 2012년 FTA를 발효했다. 국내 축산업계를 비롯해 범국민적 반대가 거셌지만 안보동맹을 경제영토로 확대하려는 양국 의지 앞에서 빗장이 풀리고 만 것이다. 40%에 달했던 미국산 소고기 관세가 점진 철폐되면서 2004년 17.5%에 불과했던 미국산 소고기의 시장점유율이 지난해 50%대를 돌파하며 국내 축산업계에 피해를 주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미국은 한국산 대형 가정용 세탁기와 태양광 셀·모듈에 대한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를 승인했다. 이어 미국 상무부는 이달 12일 미국의 철강·알루미늄 수입이 국가 안보에 위협을 줄 수 있다는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에게 이들 제품을 수출하는 교역상대방에 대한 관세 부과와 수입량 제한을 권고했다.

태양광·철강 등 한국의 주력 수출산업을 쥐어짜는 트럼프 행정부의 비이성적 행보를 보면 한미 FTA의 존립 근거인 상호 호혜의 정신까지 소멸될 위기다. 비록 협정문상 세이프가드 요건(지난해 기준 30만톤)을 충족하지 않더라도 정부는 이 같은 피해 근거를 토대로 무너진 상호 이익의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에 상응하는 분야에 조치를 취해야 한다. 미국산 소고기에 대한 ‘세이프가드’가 바로 그것이다. 국내 축산업계가 지난 5년간 양국 경제·안보 동맹에서 희생양처럼 방치돼 온 것을 주지한다면 늦었지만 정부는 미국산 소고기 문제부터 ‘세이프가드’를 포함한 결연한 대응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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