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부터인지는 모른다. 지하철역 앞 포장마차가 생겼다. 새벽부터 아침까지로 한정된 이 포장마차에선 노부부가 토스트를 팔았다.

허름한 차림의 70대의 노부부는, 처음엔 부인의 익숙지 못한 손놀림으로 투박한 토스트를 1500원에 팔았다. 한 쪽에서 일을 돕는답시고 서툴게 움직이고 있는 남편은, 연신 구박을 맞았다.

포장마차 앞에서 이른 아침식사를 토스트로 대용하면서도, 그들의 짜증 섞인 말을 듣게 되면 “다음부턴 오지 말아야지” 결심하곤 했다.

 

노동이 주는 즐거움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갈수록 그들의 말다툼이 줄어들더니 얼굴엔 웃음이 조금씩 비춰지기 시작했다. 그리곤 단골손님들을 외우고, 그들과 스스럼없는 대화도 오갔다. 가끔 공짜 커피도 서비스로 제공했다.

노부부가 토스트 포장마차를 하기 전엔 청소일을 했는데, 나이가 들어 그 일에서도 쫓겨났다고 사연을 털어놨다. 아무 일도 못하니 수입도 없었다. 수입이 없으니 모든 일에 무기력해지고 그냥 짜증이 났단다. 그러다 지하철역 앞의 포장마차를 유심히 봤고, 그게 들어가는 비용은 별로 없지만 수입은 짭짤한 것을 알았다고 한다.

그들의 생각대로 벌이가 나쁘지 않았다. 그러자 그 이전에 자주 원인 없이 표출됐던 ‘화’도 사라지고 매일 새벽에 일터에서 포장마차를 다시 펼치는 것 자체가 즐겁더라는 것이다.

사람이 일을, 노동을 하는 이유를 단순히 풀이하면, 결국 먹고 살기 위한 필요한 재화를 얻기 위해서다. 하지만 노동을 좀더 깊이 이해하면, 개인은 노동을 통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고 생의 보람을 느끼는 가운데 자아실현을 하는 것이다. 바로 ‘행복’이라는 목표를 달성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무허가 축사 적법화’가 되지 못한 농가들은 생업을 아예 접어야 한다. 생업을 접으면 그들이 가장 먼저 접하게 되는 현실은 상실감이고, 좌절감이다. 이른 아침부터 가축을 돌보며 늦은 저녁시간까지 일해오던 일을 당장 접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제 평생을 노동에서 얻는 행복감을 포기해야 한다. 대다수의 농가들이 고령화단계를 이미 넘어섰기에 그렇다. 다른 일조차 할 수 없다는 말이다.

 

‘노력 안했다?” 허탈

김현권 더민주당 의원은 지난 9일 환경부와 농축산부 자료를 기초로, 3월 24일 특례기한 만료에 따라 규제가 불가피한 가축사육 거리제한구역 내 농가수를 3만1000농가로 분석했다. 대규모 농가 1만8700농가의 26%인 4860농가 중 다수가 건폐율 적용 같은 건축법 위반으로 적법화에 진통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소규모 농가의 피해는 더 클 것으로 내다봤다. 환경부는 소농가 2만6000호는 적법화 의지와 적정 축사관리 미흡으로 2024년까지 축산업을 지속하다가 폐업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향후 5년 사이에 3만여 농가가 생업을 포기한다는 뜻이다.

특히 적법화 대상 4만6221농가를 축종별로 보면 한우 71.5%, 닭 10%, 돼지 7%, 젖소 6.6% 등으로 나타나 피해는 소규모 한우농가에 집중돼 국내 소고기 시장이 더 위축될 전망이라고 밝혔지만, 이는 차후의 문제다.

국민소득 증가에 따라 1인당 연간 축산물 소비량이 1990년 72.1kg에서 2017년 134.8kg으로 거의 2배 가까이 늘어나면서, 이에 발맞춰 축산업은 지난 20여년간 생산액이 연평균 5% 가까울 정도로 빠르게 성장했다.

현재 농촌경제의 축을 이루고 있는 것도 축산업이고, 이를 유발한 것은 축산농가들이다. 소비자의 욕구에 맞춰 고품질의 축산물을 생산하기 위해 가축을 개량하고, 시설 현대화작업도 진행했다.

그런 그들에게 정부가 들이민 ‘무허가 축사 적법화’는 청천벽력 같은 일이다. 게다가 ‘연장 3년 동안 아무 노력도 하지 않았다’는 ‘낙인’은, 농가로선 더더욱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다.

어떻게든 생업을 유지해 보기 위해 줄곧 호소해 보지만 요지부동이다. 하물며 이들 대다수는 ‘기한 연장’으로도 생업을 유지할 수 없는 상황이다.

 

무심한 잣대로 퇴출

“말과 말, 잔과 잔을 주고받는 어느 사이엔가, 이제는 내려놓을 것들만 쌓여 있음을 알게 됐어. 세월은 가고 그 의미를 알기까지 왜 이렇게 많은 시간들을 보내야 했을까?

내려놓으라고 그렇게 내려놓으면 그 빈자리를 또 다른 새로운 것들이 채워진다고 그래서 마음을 비우라고 하지만, 이젠 내려놓아도 새롭게 들어찰 것들이 내려놓는 것보다 적다는 사실 때문에 더 외로워. 그것이 아마도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일까?

‘직장을 떠나서 시원하다’는 말은, 십중팔구는 거짓말이야. 이른 아침에 일어나 격무에서 깨어나지 못한 몸으로 또 다시 회사로 달려가던 반복적인 생활을, 한 순간에 정리하기란 쉽지 않잖아”

어느 퇴직자의 말이다. 한 직장에서 30여 년 간을 근무하다 퇴직한 그는, 직장을 나온 순간부터 자신에 대한 자긍심조차 유지하기 어렵다고 했다. 가정 내에서나 밖에서 마치 자신은 없는 존재 같다고 했다.

정상적으로 퇴직한 사람들의 맘이 그럴진대, 거의 강제적으로 생업을 접어야 하는 이들의 마음이야 오죽할까.

그래서 누군가 책상에서 그어놓은 기준을 “현장에 맞게 고쳐달라”고 생산자단체장들이 삭발을 하고, 단식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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