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일간지에서 “무허가 축사 적법화와 관련 유예기간 종료 후 일정기간 계도기간을 마련해 축산농가를 행정적으로 구제하는 방안에 대해 의견을 좁힌 것으로 알려졌다”는 보도가 나가자 농림축산식품부는 즉각 “사실과 다르다”는 해명자료를 배포했다.

“결정된 바 없다”며 “필요한 준비 기간이 확보될 수 있도록 관계부처와 협의 중”이라는 것이다. 아마도 혼선을 빚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 나온 해명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농축산부가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소리는 어디에서도 들리지 않는다. 지난달 23일부터 생산단체장들과 전국 축협 조합장들이 세종시에서 적법화 유예기간 연장과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무기한 천막농성에 들어갔지만 제대로 된 답변도 듣지 못했다.

 

농가 손 뿌리치는 격

그 와중에 농축산부는 업무보고를 통해 ‘동물복지형 축산 기준’을 새롭게 발표했다. 내용을 접한 축산업계는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마치 적법화 문제로 벼랑에 몰려 손을 잡아달라고 아우성치는 축산농가 손을 뿌리치는 격이다.

농축산부는 ‘국민건강의 첫걸음, 안전하고 깨끗한 농장을 만들겠다’는 슬로건을 내세우면서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동물복지형 축산으로 전환하겠다는 것이다. 생산단계에서부터 안전과 환경에 영향을 주는 요소를 철저히 관리한다는 말인데, 제대로 된 준비과정 없이 불쑥 던지는 대책의 주요골자는 ‘규제’다.

마치 그동안 추진할 법이나 제도가 없어서 안전과 위생 그리고 환경의 문제가 발생된 듯이 말하지만, 대한민국의 사회가 법과 제도가 갖춰지지 않았거나, 형편없었던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법은 태생 자체부터 선진국들의 온갖 본받을만한 법률 체계를 도용했기에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대한민국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조항이 없어서 힘없는 다수가, 권력과 재력 있는 소수보다 못한 대우를 받았던 것은 아니다.

법이나 규정을 만들어 놓으면 통솔하기엔 좋다. 생산자가 정책 수립과정의 테이블에서 배제된 채 만들어진 법은, 적용하는 과정에서도 배제되는 것이 현실이다. 이것이 바로 탁상행정 또는 책상머리 행정이다.

이번 동물복지형 축산 기준을 보면, 영국을 비롯 유럽 국가들이 긴 시간 동안 개선에 개선을 더한 최근의 기준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 동물복지가 자국 내에서 퍼져 나가고 있는 미국보다 오히려 더 강화된 듯 보인다.

 

조급함과 대담무쌍

또 대한민국의 일반법 수립과정에서 보이는 ‘조급성’과 ‘대담무쌍함’이 그대로 나타난다. 선진국들의 시행착오를 겪지 않으려고 앞과 끝만을 생각한다. 그러면 시행 때 부작용들이 발생하지 않을까? 그때 부작용으로 괴로움을 당해야 하는 부류가 일차적으로 생산자요 이차적으로 소비자다.

사람들은 누구나 윤리적인 선택을 하고 싶어한다. 환경에 이로운 쪽으로 선택하고 싶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대신 뭔가를 희생할 의사는 별로 없다. 여전히 싼 물건을 사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음식도 마찬가지다. 맛의 문제를 빼놓을 수 없다. 윤리적 선택도 중요하지만 맛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윤리적 문제와 맛, 편리함, 가격 등등의 조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일은 어렵다. 여기에 먹을거리 생산자가 노동 문제에 얼마나 양호한가? 기업 책임을 잘 준수하고 있는가? 동물복지, 환경에 대해서는 어떤가? 등등 이것들을 세분화해 보면 훨씬 어렵다.

친환경이나 동물복지를 따르는 축산물은 생산과정이 공장식 축산과 다르기에 당연히 비싸다. 그렇다면 과연 소비자들이 그에 합당한 가격을 지불하겠는가?의 의문에 들어가면, 농축산부는 거기까지 생각하지 않는다.

상황이 이렇다면 축산농가들은 왜 동물복지를 강요당해야 하는 걸까? 당장 무허가 축사의 적법화 문제도 해결되지 않은 상황이다. 있는 축사에서 무허가 부분을 쪼개고 나면 적어진 크게에 맞춰 가축 사육마리수를 줄여야 한다.

 

마치 원한풀이 같아

여기에 확대된 마리당 사육면적을 맞추려면 더 많은 마리수를 줄여야 한다. 그렇게 하고도 축산물 가격을 시장의 논리대로 맞춰 판매할 수 있다면 그래도 할만하다. 그러나 축산물 가격 상승에 대한, 몇 번에 걸친 정부의 대응을 보면 도무지 신뢰가 가지 않는다.

무허가 축사 적법화를 비롯 축산농가의 최근 문제들은 축사를 자유롭게 지을 수 없다는 것에서, 규제 대상이 돼 자칫 폐쇄처분을 받게 된다면 축산업에서는 완전히 퇴출될 수밖에 없다는 절박함에서 더 심각하다.

더구나 주무부처인 농축산부가 앞장서서 축산업을 옥죄이는 강력한 규제들을 쉽게 쏟아내고 있는 것은 너무 무책임한 처사다. 마치 “이참에 아주 축산업을 박살(?)내겠다”는 원한풀이 같다.

한 축산농가는 말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금까지 시도된 적이 없는 과감한 방식, 그야말로 혁명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했더니, 역으로 과감하게 축산업을 철폐시키려 한다”고 성토했다.

아무리 시간이 걸리더라도 축산업의 문제를 원활하게 해결함으로써 ‘상생’할 수 있는 길을 터주어야 할 농축산부가, 각종 규제를 제시하는 것은 축산농가의 등 뒤에 칼을 꽂는 배신행위다. 축산인들이 분노하는 가장 큰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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