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한다’와 ‘사랑한다’ 중 어느 것이 더 먼저인지 알아?” 친구가 묻는다. “그거야 좋아하는 것이 먼저지. 그걸 몰라서 묻냐?”는 대답에 “증명할 수 있어?” “…” 할 말이 없었다. “뭘 뜬금없이…” 헛웃음을 짓는데 그 녀석 왈 “증명할 수 있다. 영어와 인수분해로.”

“너 개그하냐?” 했더니 종이에 좋아한다는 뜻의 ‘like’와 사랑한다의 ‘love’를 썼다. “자 봐라. 'l'과 'e'는 같은 글자니 지운다. 그럼 ‘ik’와 ‘ov’가 남지? 알파벳 순서에 따라 I는 O보다 빠르고, K는 V보다 빠르니 좋아한다는 사랑한다보다 앞선 것이 맞지?”“푸하하하” 완전 아재개그였다.

 

사랑, 호감에서부터

좋아하는 감정은 사랑하는 것보다 빠르다. 좋아하는 감정을 갖지 못하면 사랑하는 단계로 넘어갈 수 없다. 호감이 없으면 좋아할 수도 없고, 좋아하지 못하면 사랑은 꿈도 꾸지 못한다. 감정이 점점 더 깊어지는 것, 즉 좋아하는 감정이 쌓이고 쌓이면서 사랑의 감정으로 이전한다.

사랑을 하면 모든 것이 아름답다. 아침에 일어나면 그 사람이나 그것이 생각이 나고, 그 생각은 즐거움 자체다. 평소의 보잘 것 없는 것들도 다 의미가 있어 보이고, 주변에 대해서도 관대해진다. 그러므로 그 사람의 표정도 온화하게 바뀐다.

농축산부든 농협이든 생산자단체든 축산업을 리드하는 오피니언들의 새해 인사는 이구동성으로 국민에게 또는 지역민에게 ‘사랑받는 축산’이다. 하지만 축산업을 바라보는 외부의 시각은 ‘비호감’이다. 아무리 둘러봐도 우군이 없다.

이러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축산인들은 ‘사랑’을 내세운다. 사랑받고 싶은 심정은 누구나 똑같다. 내가 좋아하지 않아도 남들이 사랑해주길 바란다. 그러나 ‘내가 사랑받으려면 먼저 사랑하라’는 지극히 간단한 진실을 축산인들은 실천하고 있는가. 새해에 다시 한 번 되새겨볼 문제다.

3월 24일이 지나면 무허가 축사 농가는 해당 축사를 폐쇄하거나 사용하지 못한다. 이를 어기면 범법자가 된다. 발등에 불 떨어진 축산인들은 여의도 국회 앞에서 집회도 열었다. 정문영 전국축협조합장협의회 회장을 비롯 일선축협, 전 축종 농가들이 “가축분뇨배출시설을 법에 맞게 갖추라는 게 원래 취지였는 데, 지금은 건축법·하천법·소방법 등 26개 관련법도 동시에 충족하라니 말이 되느냐”고 주장했지만 뚜렷한 답도 듣질 못했다.

 

주변에 우군이 없어

축산업이 단순히 식량공급기능을 넘어 ‘농촌다움’을 유지함으로써 국민들에게 마음의 위안을 주고, 전통문화를 계승하는 농촌의 다원적 기능을 통한 공익적 가치를 전달하고 있다는 주장도 국민들에게 이젠 설득력이 별로 없다.

축산인들의 고충을 대변해야 할 농림축산식품부조차 실질적 대책 마련보다 책임을 축산농가들에게 전가하면서 축산농가들이 마치 불법을 자행하는 파렴치한 집단으로 몰아가니, 국회나 국민들이 보는 축산업은 당연히 ‘온전한’ 산업이 아니다.

농협은 발등에 불 떨어진 ‘무허가 축사 적법화’ 유예기간 연장을 목표로 국회의원들의 맘을 돌리기 위해 백방으로 뛰고 있다. 하지만 이전과 달리 축산에 대한 비호감이 너무 강하게 박혀 있다고 한숨이다.

“더 이상 연장해 달라 요청하지 않을테니 이번엔 축산농가들의 간절함을 이해해 달라”는 읍소에도 이해하려조차 않는다는 것이다.

현재 축산에 대한 비호감의 강도가 얼마나 높은지를 몸소 체험하고 있는 것이다. 유력한 경제지는 사설을 통해, 한·미FTA 재협상에서 한국 정부가 미국에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 개선을 요구하면서 ‘농축산물 시장 개방’은 논의하기 어렵다고 강조한 것과 관련 강하게 비판했다.

“농축산업 내에서 상대적으로 경쟁력 있는 분야는 개방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는 통상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해, 개방을 외면한 채 정부의 보호와 지원에만 안주하다보니 농업 경쟁력이 바닥을 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농축산업에 대한 주변의 비호감은, 청탁금지법의 개선에 맹렬히 비난하는 여론에서 이미 잘 나타났다.

 

‘강한’ 부정은 긍정

가축질병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국민들이 받는 불편함과 혈세 지출은, 그동안 묻혀 있던 대한민국 축산업의 치부를 낱낱이 드러냈다. 자신들의 입으로 들어가는 육류의 불편한 진실 앞에 당혹스러웠을 것이다.

국민 1인당 축산물의 소비량은 2005년 32.1kg이었던 것이 매년 증가세를 보이며 2016년 말에는 54.1kg으로 훌쩍 뛰어올랐다. 국민들의 육류에 대한 호감은 높아지는 것과 반대로 축산업에 대한 호감은 급전직하했다. 어떤 의미에선 ‘이율배반적’이다.

동물을 비윤리적으로 사육하고 도축·유통하는 축산업은, 근본적으로 소비자들에게 사랑받을 수 없는 산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축산물의 소비는 늘고 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지금은 비호감이지만 아직도 이를 호감으로 반전시킬 수 있다는 말이다.

강한 부정은 긍정이다. 강한 불만은 아직도 관심이 있으니 변화하라는 지적이다.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기꺼이 자기를 희생하는 것이 생리다. 상대가 왜 토라졌는지를 이해하기 위해 몇 날이고 고민하는 것이 연애다. 사랑받고 싶다고? 그렇다면 핑계부터 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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