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규모 투자로 ‘일’과 ‘건강’ 되찾았다

 

 

최근 축산업은 예전의 축산업이 아니다.

왠만한 월급쟁이보다 봉급이 많고 전원생활이 가능하다는 이유로 넥타이 대신 장화를 택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하지만 초기자본이 많이 드는 등 진입장벽이 높은 까닭에 2세 외에 신규로 축산에 진출한 경우는 찾아보기 쉽지 않다.

반면 축산의 틈새시장을 노려 성공리에 안착한 사례도 없지 않다.

봉산물 브랜드 ‘꿀땀(KKulddam)’의 이용승 대표(50)가 그 대표적 예다.

이용승 대표는 어떻게 늦깎이로 축산에 입문하게 됐을까.

 

# ‘일’‘건강’ 양립 위해 양봉 결심

이 대표의 사연은 이렇다.

경기도 안양 출신의 이 대표는 천안 소재 샷시 시공업체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홍성으로 내려와 직접 사업장을 운영했다.

전문기술자다 보니 벌이는 나쁘지 않았지만, 산업현장에서 작업을 하다 보니 몸에 이상이 오기 시작했다.

무거운 것을 들다보니 허리와 무릎에 무리가 가는데다, 먼지를 많이 마시는 탓에 기관지가 안 좋아지기 시작한 것.

‘이대로는 안 되겠다’ 생각한 그는 일도 좋지만 건강도 중요하다고 판단, ‘일’과 ‘건강’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는 직종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농촌에서 비교적 소자본을 투자해 소득을 올릴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심하던 차에 그는 문득 ‘양봉업’을 떠올렸다.

몸이 안 좋으셨던 그의 큰아버지께서 부업으로 벌을 키우시며 봉침으로 건강을 되찾으셨던 일을 떠올리게 된 것.

“자연 속에서 일을 할 수 있는데다 나이에 관계없이 평생 할 수 있으니 딱 이다 싶었지요”

이때부터 그는 미래 양봉인으로서의 청사진을 마음에 품게 됐다.

2012년, 그의 나이 45살의 일이다.

 

# 이론 섭렵 후 이동양봉 나서

그는 양봉공부에 돌입해 벌에 대해 차근차근 배워나가기 시작했다.

이는 어떤 일을 시작하든지 알고 덤비는 것과 모르고 덤비는 것은 천지차이라고 여기는 그의 지론에서 비롯됐다.

벌의 습성과 생리 등 이론이 빠삭해야 실전에서도 강할 수 있다는 것.

그는 양봉의 바이블이라 일컬어지는 ‘양봉 꿀벌과 벌통’‘양봉 사계절 관리법’ 등 관련서적을 구입해 정독하는 한편, 시흥시가 운영하는 ‘시흥아카데미’ 인터넷 강의에서 조상균 전 한국양봉농협 조합장의 ‘양봉학교’ 등을 시청하며 양봉에 대해 섭렵해나가기 시작했다.

1년 반의 준비 끝에 그는 2013년 가을, 30봉군을 분양받아 본격적인 관리에 돌입한다.

봉산물 브랜드는 꿀을 담는 사람이란 의미로 ‘꿀땀’으로 명명했다.

그리고 이듬해 봄, 이동양봉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그의 양봉인생의 막을 올렸다.

“1톤 트럭에 벌통과 채밀기구들을 싣고 벌을 치며 알게 된 지인을 따라 나섰습니다”

 

# 극한 생활 불구, 판로 없어 발동동

그는 아카시아 개화시기에 맞춰 경산에서 용인, 다시 용인에서 홍성으로 이동하며 꿀과 화분을 채취했다.

하지만 이는 여간 고된 작업이 아니었다.

텐트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밤에는 꽃을 찾아 이동하는 극한의 생활을 한 달 이상 이어가다보니 피로도가 극에 달했던 것.

아카시아 등 수원이 있는 곳에 벌통을 내리고 꿀이 차면 채밀작업을 실시하는데, 유밀기에는 2~3일에 한 번씩 작업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소비(벌집)를 꺼내 채밀기 안에 넣고 돌려 꿀을 채취하고 불순물을 거른 후 드럼에 담는 과정에만 하루가 꼬박 걸렸다.

밀원지를 따라 이동하는 날이면 날밤을 꼴딱 새는 일도 부지기수.

저녁 8시경 벌이 다 들어오면 벌통 입구를 막고 트럭에 벌통을 싣는데 2~3시간, 다른 장소까지 이동하는데 2~3시간, 다시 벌통을 내리는데도 2~3시간이 소요됐다.

또한 채밀이나 이동이 없는 날이면 그동안 꿀을 모아놓은 드럼을 집에다 실어다 놓는 일까지 병행해야 했다.

게다가 수확의 기쁨도 잠시, 첫해에는 꿀을 판매할 길이 없어 발을 동동 굴렀다.

“수확한 꿀이 총 450kg였습니다. 절반은 지인들에게 알음알음으로 판매했지만, 나머지 절반은 처분할 길이 없어 애를 먹었습니다”

결국 나머지 꿀은 내년을 기약하며 지인들에게 선물하고 주변 상가에 나눠주는 수밖에 없었다고.

 

# 홍성 딸기농가에 수정벌 임대 시작

“그렇게 한해를 보내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꿀만 떠서 1년을 먹고 살기엔 한계가 있기 때문에 다른 계절에도 소득을 올릴 수 있는 아이템이 필요했습니다”

그는 후발주자로서 양봉업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꿀 생산 외에 다른 아이템도 있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때 만난 이가 그의 멘토인 대정양봉원 정용호 대표다. 이 만남이 그의 양봉의 길에 있어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

“홍성지역에 딸기농가가 많아 수정벌 수요가 높다”며 ‘수정벌 임대’를 권한 것.

“당시 홍성지역 꿀 농가는 100여 농가, 반면 수정벌농가는 10여 농가였습니다. 열심히만 한다면 분명 승산이 있을 거라 판단했습니다”

그는 홍성 양봉연구회에서 딸기농가 임명부를 받아 일일이 문자를 보내 농가 납품을 시작했다.

10월 중순부터 4월 중순까지 6개월간 딸기농가에 수정벌을 임대하고 납품한 벌통을 관리하게 된 것.

“딸기수정벌의 목적은 수정이 잘 돼 과육이 많이 달리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벌이 많을수록 유리하지요”

그는 고정 거래처 확보를 위해 타 농가에 비해 더 많은 양의 벌을 제공하고, 남들보다 한 번 더 농장에 방문에 벌을 관리했다.

그 결과 첫해엔 30통을 임대했지만, 이듬해에는 100통, 지난해에는 250통을 임대하게 됐다.

“올해는 500개 임대가 목표입니다”

 

# 로컬푸드 입점 1년 내내 수입 올려

현재 이용승 대표는 봄에는 이동양봉, 여름에는 고정양봉, 가을·겨울에는 수정벌 임대로 1년 내내 수입을 올리고 있다.

봉군 역시 2014년 30군에서 2015년 100군, 2016년 250군, 지난해에는 400군까지 규모도 키웠다.

2012~2013년이 준비단계라면 2014~2015년은 투자단계, 2016~2017년은 정착단계였다는 것. 이 과정에서 걸림돌로 작용했던 판로 문제도 말끔히 해결했다는게 이용승 대표의 설명이다.

홍성장 인근에 위치한 농협 하나로마트 안 ‘홍성로컬푸드’에 입점했는데, 홍성을 찾는 관광객들의 구매가 제법된다는 것. 또한 부인 윤미선 씨(44)가 운영하는 미용실에서 봉산물을 판매하는 동시에 ‘네이버팜(FARM)’ 입점도 준비 중에 있다.

이용승 대표는 이에 그치지 않고 벌을 치며 얻어지는 봉산물을 이용해 꿀비누와 밀납초를 만드는 일까지 병행하고 있다.

꿀비누와 밀납초는 판매하기도 하고, 서비스로 하나씩 나줘주기도 하는데 반응도 좋고, 봉산물 판매에 많은 도움이 된단다.

이런 그의 최종 목표는 봉군을 1000군까지 늘리는 것이다.

“홍성군 내에서 수정벌로는 손가락 안에 들도록 할 계획입니다”라는 그의 눈에서 장밋빛 미래가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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