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부터 6개월 동안 4000여만 마리의 가금류가 땅에 묻혔다. 5월 초, 농축산부는 위기경보단계를 관심으로 조정하고, 13일 전국 이동제한조치 해제, 31일 평시체제로 전환했다. 그리고 그 다음날 AI가 재발됐고, 다시 평시 그리고 10월 전북 고창에서 고병원성 AI가 발생했다.

해마다 돌아오는 철새와의 전쟁이 다시 시작됐다. 고병원성 가축질병 재발의 중요 요인으로 꼽혔던 소규모 고령농가의 효율적 관리를 위한다는 취지로, 이들 소규모 농가를 ‘취약농장’으로 규정하고 전담공무원제도를 도입했다. 이를테면 북한의 ‘5호 담당제’를 모방한 꼴이다.

 

현장감 없는 대책만

 

방역당국이 수차례의 AI를 겪는 과정에서 관련 정보들을 축적했다면서 나름대로 대책을 마련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것과 다르다. 방역전문가들에게 “연관성을 맺고 있는 기본 데이터들이 갖춰져 있고, 자료 수집 절차가 과연 원활하게 잘 돌아가는가?” 라는 질문을 던지면 대부분이 “그렇지 않다”는 답이 돌아온다.

정부가 무조건 야생철새로 인한 유입으로 확정하면서 ‘자연재해’식으로 몰고 가면 다른 유입 가능성에 대해서는 아무도 말할 수 없는 분위기가 조성된다. 많은 나라들에서 AI와 관련해 엄청난 연구가 이뤄지며, 모든 초점이 재발 방지에 맞춰져 있는 것과 달리 우리는 그저 “겨울만 잘 넘기면 된다”는 식이다.

환경부와 검역본부에서는 철새들의 이동경로를 파악하기 위해 GPS(Global Positioning System, 위성위치확인시스템)를 달아 추적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 보면 턱없이 부족한 예산문제로 단 몇 십마리 정도에만 부착했을 뿐이다.

처음엔 100마리에서 30~40마리 밖에 못 달았다. AI가 한 번 발생하면 이를 진압하는 데 소요되는 비용이 수천억 원임을 감안하면 도대체 어떤 것이 더 효율적이고 중요한지를 아직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그저 하늘만 쳐다보면서 창공을 날면서 땅으로 분변을 뿌리는 철새들을 원망할 뿐이다. 4차 산업혁명을 부르짖는 작금의 현실에서 코메디도 이런 코메디가 없다.

문제는 AI 뿐만이 아니다. 지금 대한민국을 둘러싼 지리적 인접국들에서는 국내에 한 번이라도 유입되면 축산업의 존립까지 영향을 미칠 무시무시한 가축질병들이 잇달아 터지고 있는 상황이다.

 

주변국서 질병 다발

 

지난 9월 본지 창간특집 「해외 악성 가축전염병을 막아라」에서 6인의 전문가들은 지금 국내 축산업은 내부적으로도 힘겹지만, 외래 가축전염병이 유입하게 되면 그 파괴력은 상상 이상이 될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동남아시아와 중국에서 발생하고 있는 전염력이 강력한 고병원성 PRRS(Porcine Reproductive and Respiratory Syndrome, 돼지 생식기 호흡기 증후군)는 물론, 아프리카 돼지열병을 예의주시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질병은 폐사율이 100%일 뿐 아니라 현재는 치료제조차 없다. 따라서 유입될 경우 피해가 막대할 것으로 예상한다. 바이러스가 유럽을 거쳐 최근 러시아의 도축장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중국 국경 인근 지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의 방역은, 현재 전적으로 일용직 근로자에게 의탁한 상태다. 지자체마다 거점소독시설을 운영한다. 이 시설은 차량으로 인한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한 차단방역의 핵심요소다. 축산차량은 반드시 농장을 방문하기 전에 이 시설에서 소독을 해야 한다. 하지만 소독을 담당하는 인력은 일용직 근로자라면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터널식을 제외한 대부분 거점소독시설의 실제 소독 인력은 일용직 근로자 1~2명 뿐이다. 농축산부 자료에 따르면 이 시설에 보통 2~4명의 인력이 배치되어 있다지만, 이 숫자에는 내근 인력이 포함돼 있어 대부분 허수다.

소독을 담당한 일용직 근로자들은 축산업과 아무런 연관이 없다. 차량 소독에 대한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적도 없다. ‘차량을 꼼꼼하게 적셔주면 된다’는 말이 교육받은 요령의 전부란다. ‘실효성 있는’ 소독의 절차와 기술이 철저하게 무시된다. 그러니 소독이 제대로 될 리도 만무하다.

 

하늘만 바라 볼 텐가?

 

김철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10월 농림축산식품부 및 소관기관 국정감사에서 ‘가축방역관에 대한 처우개선’이 시급하다고 지적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김 의원이 밝힌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지자체 가축방역관 수는 총 660명으로, 적정 인원인 1280명의 절반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잇따른 FMD·AI 발생으로 가축방역관 충원이 시급하다는 지적에 따라 행안부가 지난 6월 각 지자체에 가축전염병 대응 전담조직을 신설하고 수의직 공무원 350명을 증원할 것을 통보했지만, 9월 말 기준으로 104개 시·군 중 절반 이상인 54개 시·군에서 지원자가 미달됐다. 33개 시·군은 지원자가 단 한 명도 없어 수의직을 아예 뽑지도 못했다.

실제로 현재 수의직 공무원들의 업무 환경은 매우 열악하다. 이들은 분뇨처리, 무허가축사 적법화 사업 등 방역 외의 업무까지 도맡아 하면서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이다.

산적한 문제들 앞에서 언제까지 하늘만 바라볼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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