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산농가들에게 스스로 자정운동을 펼치라고 하면, 내 재산을 내가 지키고 부를 획득하려면 당연한 이 말이 또 억울하게 들린다. 축산농가들도 할 말이 많기 때문이다. 대다수의 농가들이 부도덕한 짓을 해서 생계를 유지한 것도 아니고, 불법과 탈법으로 부를 축적한 것은 더더욱 아니기에 그렇다.

그런데 정부를 비롯, 축산농가와 관련 산업계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똑같이 손가락질하는 듯 보이는, 지금의 이 상황이 익숙하지 않아 견디기가 힘들다. 그 오랫동안 곁에서 힘든 넋두리를 들어주고, 응석까지도 응석으로 알지 않고 아픔으로 이해해주던 모든 이들이 어느 날부터 낯선 사람 대하듯 냉대하는 이 상황이 이해할 수 없다.

 

정부가 ‘밀집’ 부추겨

 

이 모든 걸 ‘내 탓’이라고 돌리고 싶어도 뭔가 잘못된 것 같아 수긍이 되질 않는다. 매 순간순간 정부의 정책이 결정되기까지의 과정에서 “현장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달라”고 지적도 해 봤다. 일방통행식의 정책에서 방향이 잘못되면 항상 농가들이 피해를 봤다.

현재 축산농가들이 배척당하는 밀집 사육방식도 한 때는 정부가 권장했던 것이다. 경쟁력을 향상한다는 이유로, 현대식 축사를 짓고 되도록 많은 가축을 키우게 저리자금의 융자도 해줬다.

되도록 많은 국민들에게 단백질을 공급하기 위해 축산물 가격을 낮추는 방식의 하나로 전기업화를 독려했다. 그런 취지에 맞춰 국내 축산업도 ‘저비용 고효율’을 앞세워 공장식으로 산업화됐다.

‘양’으로 승부하더니 갑자기 ‘질’로 급선회했다. 축산업이 마치 제조업인 양 쉽게 바꿀 수 있는 것쯤으로 아나보다. 세계 속의 한국인의 위상은 국내에 있을 땐 잘 모른다. 가난을 극복하고자 하는 한국인의 근성과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으려는 피땀 흘린 노력의 대가가 어떤 결실을 맺었는지에 대해서도 그렇다.

하지만 19·20세기 서구 열강들의 식민지배에서 독립한 나라 중 외견상 선진국의 대열에 올라선 나라는, 특히 한국전쟁으로 전 국토와 경제기반이 폐허가 된 상태에서 일어서 ‘한강의 기적’을 일군 나라는 단 한 곳도 없다(독일의 경우엔 이 두 가지가 동시에 발생하지 않았다).

21세기 우리는 세계 경제 10위권을 들락날락하고 있다. 급속한 압축경제의 결과는 자부심을 갖게 하지만, 부작용도 심각하다. 마치 덩치만 큰 초등학생과 다를 바 없다. 불법이 관행이 되고, 탈법이 일상화됐으며, 환경오염은 무의식적으로 넘어갔다.

 

정책 희생양은 농가

 

‘빨리 빨리’는 외국인에게 한국인을 지칭하는 대표적인 상징어가 됐다. 주어진 목표를 수행하는 과정이 체계화되지 못하고, 어떻게 하면 빨리 할까를 생각하면서 순서를 무시한 채 ‘급행료’를 떠올린다.

축산업에서도 마찬가지다. 산업에 문제가 발생하면 원인을 규명하고 전반의 인프라를 구성해 해결할 생각이 별로 없다. 하긴 그렇게 해본 적이 없으니 이해할만 하다. 하지만 그것으론 어떤 것도 ‘지속 가능’할 수가 없다.

특히 정부는 산업 전반을 원활하게 돌아가게 하는 윤활유 역할의 책임이 있다. 축산업을 단기간에 육성한다는 취지에서 ‘저비용 고효율’을 지향하는 정책을 써왔다. 이런 한 방향 몰입정책의 결과물로 지금 축산농가는 힘겹다.

한 때 경쟁력이 강한 가족농을 지칭하는 ‘강소농’이 힘을 받은 적이 있다. 국가 경제정책이 균형있게 발전하려면 대기업 위주로 가서는 안되듯, 농축산업도 전기업 농가로 가선 안된다는 주장이 강하게 일었던 적이 있다. 하지만 그것도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졌을 뿐이다.

정부가 이젠 ‘지속 가능’을 내세우면서 공장식 축산을 지양해야 한다며 앞장 선다. 정부 정책이 ‘극에서 극’으로 급격히 방향을 전환하게 되면 현장의 농축산인들은 갈피를 잡지 못한다. 피해를 입는 것은 그들의 몫이다. 이건 정부가 할 일이 아니다.

지속 가능을 내세우며 들먹이는 ‘동물복지’ 역시 마찬가지다. 축산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소비자들의 입장에선 동물복지 적용이 간단할지 모르지만, 가축을 사육하는 농가의 입장에서는 시설, 비용 등이 바로 부담으로 다가온다.

 

인프라 구축 최우선

 

기존 농장이 동물복지 기준을 맞추기 위해서는 사육방법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 사육마릿수를 대폭 줄여야 하고, 시설 투자비용이 추가로 발생하는 까닭에 바로 소득이 감소하는 결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동물복지 기준은 국내 현실에 맞추었다기보다 유럽 등에서 적용하는 기준을 끌어다 맞춘 격이다. 때문에 동물복지 인증을 받은 농가의 대부분이 기존 농가가 아니라 최근 십년 내 신규 진입했거나 친환경 인증을 받았던 농가다.

게다가 동물복지형 축산으로 가고자 하는 장기적 로드맵도 없다. 도축장도 전국 6개소 뿐이고, 이조차 돼지 4곳, 닭고기 2곳이다. 한육우는 아예 없다. 동물복지 축산물은 일반 축산물보다 가격이 비싸지만 이번에는 비싸다는 이유로 구매를 꺼려한다. 판매처도 적어 소비자들의 접근성도 떨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지속 가능’한 축산업이어야만 살 수 있다고 강조하며, 농가들에게 변화를 강요한다. 농가들이 억울하다고 외치는 가장 큰 이유다. 이제는 지나온 시간을 뒤돌아볼 시기다. 착실히 인프라를 구성하고 준비할 때 ‘지속 가능’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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