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축산업을 위해서는, 고기가 접시에 오르기 전에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소비자들이 적게 알수록 좋다…현대 축산업이 가장 큰 행운 중 하나는 산업화된 국가들의 국민은 몇 세대 동안 농촌과 동떨어져 살아왔고, 따라서 가축들이 어떻게 길러지고 처리되는지 제대로 모른다는 사실이다.”

미 오리건 주립대학 동물학과 교수 피터 치키(Peter.R.Cheeke)가 자신이 쓴 저서 「축산업의 최근 쟁점들」에서 한 말이다.

 

밀집사육 도입 이유

 

20세기 후반만 해도 현대 식품시스템은, 현대인들에게 곡물, 고기, 과일, 채소 등을 그 어느 때보다 저렴하게 공급해 이전의 세대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이제 우리는 세계 시장을 뒷받침하는 공급망을 통해 신선한 농산물과 육류를 언제 어디서나 접할 수 있게 됐다.

요리하고 먹는 과정은 새로운 시간 절약 주방기구와 넘쳐나는 선조리 식품 덕분에 비즈니스처럼 효율성을 띠었다. 어디든 비용이 제일 낮은 곳에서 생산되고, 어디든 수요가 가장 많은 곳으로 운송된다.

이러한 현대 식품시스템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최저가에 방대한 식품을 공급하는 능력은 생산자를 악순환에 가둬버렸다. 식품을 많이 생산할수록 계속해서 더 많이 생산해야 하는 ‘악순환’ 말이다.

예를 들어 경쟁력 있는 가격에 밀을 생산할 경우, 농민들은 끊임없이 생산 비용을 낮춰야 하는 압박을 하고, 보통 수확 속도를 높여 신종 콤바인 기계처럼 개선된 기술을 채택해야만 한다.

축산업이 밀집식 사육을 채택하게 된 이유도 별반 다르지 않다. 저비용 대량 생산의 농축산업이 부상하면서 ‘농업 비즈니스’가 등장했다. 그 결과 소비자들은 식품에 쓰는 돈이 줄어들었으며, 간편한 식품의 출현으로 요리에 들어가는 시간마저 줄었다.

식품 생산과 소비가 ‘지역’에서 ‘세계화’로 전환되면서, 국내 축산업도 외국산 축산물의 수입과 경쟁으로 소규모 농가들의 이탈이 가속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전기업화가 급속히 진행되는 결과를 낳았다.

축산업에 ‘저비용 고효율’의 방식이 적용되자, 축사나 헛간 또는 생산 통제가 훨씬 엄격한 ‘가축밀집사육시설(Concentrated Animal Feeding Operations, CAFO)’에 가두어 키우는 방법이 도입됐다.

 

영세농가 설 곳 없어

 

이는 소, 돼지, 닭 등 가축들을 전통적인 방법으로 풀어놓고 이리저리 돌아다닐 시간과 공간을 주어 충분한 열량을 얻도록 하는 사육방식이, 밀집사육보다 비효율적이라는 점에서 기피돼 비주류로 물러났음을 의미한다.

한 곳에 가둬놓고 곡물로 키우는 가축사육방식은, 방목하며 자라는 가축보다 크고 빨리 자랄 뿐 아니라 훨씬 효율적으로 사육할 수 있다. 그러나 정부의 보조금으로 값싼 곡물을 생산하는 축산선진국과 달리 곡물사료의 대부분을 외국에서 수입해 쓰는 국내 축산업의 성격상 온전한 경쟁은 불가능한 상황이다.

여기에 축산물 가격의 하락세가 지속되면서 영세농가들은 비용부담을 견디지 못하고 축산업을 접었다. 일반적으로 제조업 등은 가격이 떨어지면 수익을 맞추기 위해 산출량을 줄이거나, 감원 등을 통해 대처할 수 있다. 그러나 농축산업은 일반 산업과 달라, 가격 하락을 만회하기 위해 생산량을 늘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가격은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를 ‘트레드 밀(treadmill) 효과'라고 한다.

가격이 떨어질수록 중소규모 농장들은 비용을 분산할만한 규모를 갖추지 못했고, 눈앞에 닥친 위기를 버틸 자본도 없어 밀려난다. 대신 가격 손실을 규모와 효율성으로 만회할 능력을 지닌 기업적 농업이 그 자리를 메운다.

지금 국내 축산업이 겪고 있는 상황이 이를 잘 보여준다. 2000년 29만 가구수의 한우농가는 2015년 10만 농가가 무너져 2017년 현재 8만여 가구로 줄었다. 그럼에도 농가당 평균 사육 마릿수는 4배를 넘었다. 돼지도, 젖소도 모든 축종의 농가당 사육 마리수가 크게 늘었다.

 

“속 터진다”는 농가

 

“예전에 축산물을 먹기가 어디 쉬웠습니까? 월급날이 아니면 엄두도 내지 못했던 시절이 있었는데, 이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축산물을 일상적으로 먹고 있습니다. 그만큼 고품질의 축산물을 저가로 구입할 수 있는 것은 축산인들의 노력 덕분 아닙니까? 그런데 왜 우리를 오염물질을 배출하는 부도덕한 사람으로 취급하는지…”

밀집사육의 축산농가들은 축산인들의 공로를 인정해 주지는 못할망정 비난하는지 억울하다고 말한다. 그는 또 왜 주민들에게 축사가 더럽다고, 또 집값을 떨어뜨린다고 민원을 넣어 떠나라는 강요받아야 하는지 울화통이 터진다고 강변한다. 자신이 피땀 흘려 아름아름 늘려온 축사다.

왜 울타리를 치고, 죄지은 사람처럼 주민들의 눈치를 봐야 하는지, 그리고 이제는 정부까지 나서서 생업을 포기하라고 윽박질러대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러니 억울하다.

갈 곳도 없다. 민가가 있는 주변에서는 축산업을 할 수도 없다. 게다가 새로 축사를 지으려고 하면 주민의 동의서가 필요하단다. 사육규모를 늘려 겨우 채산을 맞추고, 고품질의 축산물을 생산해 적절한 가격에 공급한다는 자부심도 깨진지 오래다. 그런데 또 ‘지속 가능’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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