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도 「대붕농장」 대표 ‘흘린 땀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산란계 대물림

 

“청년 취업난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습니다. 청년들이 온갖 스펙을 쌓기 위해 빚을 내서라도 자신에게 투자를 하고 있지만 자신이 원하는 직장을 구하기란 쉽지가 않습니다. 그렇다고 주저앉아서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순 없습니다. 실패를 두려워해 주저앉지 말고 농촌에서 도전을 해보길 권장합니다. 농촌에는 청년들의 꿈과 희망이 있습니다.”

경기도 포천시 군내면(반월산성로 317번길 104-28)에서 대붕농장(산란계)을 운영하고 있는 김선도 대표(32세)는 어렸을 적부터 농장에서 살다시피 했다. 김 대표의 부모님은 30여 년 전 부부가 함께 산란계농장에서 직원으로 일을 시작하며 축산업과 인연을 맺었다. 시골 농장이다 보니 부모님과 닭들이 김 대표의 어린 시절의 전부였다.

부모님은 김 대표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던 1993년 대붕농장을 설립했다. 이후 성장을 거듭한 대붕농장은 현재 산란계 15만수를 사육하고 있다. 연매출은 20억원 수준이다.

 

평생 직업으로 양계업을 선택한 젊은 청년

 

꾸미는 것에 관심이 많았던 김 대표는 패션디자인과(대학)에 입학을 했다. 전공에 만족하며 대학 생활을 하던 중 군 입대를 하게 된 김 대표는 제대를 앞두고 고민에 빠졌다.

“평생 직업으로 어떤 분야를 선택해야 할까?” 이런 고민을 거듭하던 중 문득 소년 시절이 떠올랐다. 지금까지의 삶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은 부모님과 함께 직접 닭을 키우고 신선한 계란을 생산해 누군가에게 팔아 수익을 올렸던 때였다.

이후 23살, 전역을 하자마자 김 대표는 부모님과 농장에서 일을 시작했고, 농장 일을 배우면서 계란유통을 도맡았다.

점차 자신감이 생겼다. 25살에는 패기 하나로 도전해 서울의 양재동과 창동에 소재한 하나로마트에 계란납품을 하게 됐다. 그 시기는 보람도 있었지만 김 대표에게 가장 힘든 시기였다.

김 대표는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가 살면서 가장 힘든 시절이었다. 1년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매일 3~4시간 가량 자면서 일만 했고 스트레스로 인해 구토를 한 적도 여러 번이었다”면서 “그러나 ‘부지런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했고, 노력한 만큼의 대가도 따라 힘들지만 보람을 느꼈다”고 회상했다. 몇 해가 흘렀을 때는 주위에서 일을 열심히 잘한다는 칭찬을 듣게 돼 더욱 자신감을 얻게 됐다.

그러나 그런 칭찬들이 김 대표를 ‘우물 안 개구리’로 만들었다. 자만에 빠져 시대의 흐름에 대처하지 못한 것이다. 무엇인가 변화가 필요했다.

이에 대해 김 대표는 “시대가 변해가고 네트워크가 발전하는 것에 발맞춰야한다는 생각을 갖게 됐고 이를 위해서는 전문지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게 됐다”면서 “닭을 더 건강하게 키우고, 더 신선한 계란을 생산·유통하기 위해서는 어떤 개선이 필요할까라는 고민을 하게 됐다. 내 자신이 이를 실천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두려움이 앞서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런 고민과 함께 전문지식을 쌓아야겠다는 의견을 아버지께 전했고, 이에 김 대표의 아버지는 ‘국립농수산대학’을 추천했다.

사실 그때만 해도 김 대표는 다니던 대학을 관두고 농장 경영을 위해 경희대 경영학과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산란계농장 경영에 실질적으로 필요한 닭 사양기술, 선진농장실습, 해외연수, CEO교육 등을 습득·경험할 수 있는 농수산대학에 마음이 조금씩 기울었고 결국 농수산대학에 입학을 하게 됐다.

김 대표는 “무엇보다 저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같은 분야에 있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었다”며 “지금 생각해보면 농수산대학에 입학한 것은 ‘신의 한수’였다”고 언급했다.

김 대표는 이후 과대표와 총학생회장 등을 역임하며 리더십을 배양했다. 또한 3학년 여름방학에는 트랙터를 타고 전국일주를 하며 선진농장을 탐방하고 CEO들을 만나면서 경영마인드를 일깨웠다.

 

서른 살, 아버지의 노하우 접목 양계장 본격 운영

 

 

대학에서 양계 관련 전문지식을 터득한 김 대표는 서른 살이 되던 해 농수산대학을 졸업하고 본격적으로 농장 운영에 돌입했다. 이전과는 달리 아버지의 노하우에 본인의 전문지식을 결합해 안전하고 건강한 계란 생산을 실현하게 된 것이다.

김 대표는 닭이 더 편안한 환경에서 자라고 계란을 생산할 수 있도록 힘쓴다. 이의 일환으로 부리 자르기나 환우는 금하고 있다. 또한 소비자를 생각해 살충제를 사용하지 않고 있으며 80주령을 넘지 않는 닭에서만 계란을 생산한다. 무항생제 인증도 획득했다. 클래식음악을 틀어 닭의 스트레스도 줄이고 있다.

방역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지속적인 소독은 기본 중에 기본. 농장 앞에 있는 차량자동소독기의 경우 분무가 약하고 구석구석 소독이 잘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 과감하게 철거하고 고압분무기로 직접 철저히 소독을 실시한다.

또한 영상 10℃ 이하일 때는 과산화초산이 들어 있는 성분의 소독제를 사용하고, 영하일 때는 워셔액을 섞어 소독약이 얼지 않도록 해 소독을 실시하고 있다. 이 같은 소독 방법은 김 대표가 외국 논문과 교육 등에서 습득해 실천한 것으로 상당한 효과를 거두고 있다.

실제로 대붕농장의 경우 고병원성 AI가 한 번도 발생하지 않았다. 닭진드기도 없어 살충제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계란 구매자(소비자, 하나로마트, 대학교급식, 식당, 군납)들의 신뢰가 상당한 편이다.

특히 김 대표는 오늘 생산된 안전하고 신선한 계란을 오늘 소비자에게 전달 해주는 ‘zero day ststem’을 실천하고 있다.

 

아버지와의 마찰, ‘솔직한 소통’으로 풀다

 

 

김 대표가 농장을 본격적으로 운영한지 3년여의 시간이 흘렀다. 처음에는 아버지와의 의견 충돌도 잦았다. 이로 인해 김 대표는 농장 일을 그만두겠다며 집을 나가기까지 했다.

김 대표는 “예를 들면 어떤 기계가 우리 농장에 꼭 필요해 구입을 하려고 했을 때 아버지는 예전 방식만을 내세우시며 반대를 하셨다”면서 “그 기계가 필요했던 분야의 일은 제가 인수인계를 받아 제 일이었기에 저 또한 완강히 의사를 표현하면서 마찰이 생긴 적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앞으로도 이 같은 마찰이 지속 될 거란 생각에 김 대표는 아버지와 소통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그리곤 아버지와 대화의 시간을 늘려갔다. 농장 일이 아니더라도 일상에서의 사소한 것까지 대화를 나눴다. 또 농장 일에 대해서는 일주일에 한번 회의 시간을 정해 차를 마시면서 아버지와 진지한 대화를 했다.

그리고 아버지를 설득해야할 사안이 생기면 단순히 말로만 하지 않고 수치화된 데이터를 보여드렸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아버지는 김 대표를 신뢰하는 마음이 커졌다. 지금은 그 누구보다도 친한 친구이자 공동대표로써 농장을 함께 운영하고 있다.

김선도 대표는 향후 자체 GP센터 설립, 기능성 계란 생산 등을 계획하고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

김 대표는 “대붕농장을 계란산업을 선도하는 롤 모델 농장으로 만들겠다”면서 “기부활동을 통한 나눔도 실천해 나갈 계획”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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