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권 진입해야 ‘꿈’의 현실화 가능 깨달았다”

 

지난 6월 보궐선거를 통해 조합장에 당선된 선종승 전남낙협 조합장은, 3번의 실패를 딛고 4번의 도전에 성공한 ‘3전4기’의 인물이다. 왜 무엇이 그를 그토록 집요하게 조합장직에 도전하게 한 것일까.

전남라도 순천시 우석로 길을 따라가다 보면 숲 속 위에 마치 호텔 같은 축사가 머리를 내밀고 있다. 목장 진입로에는 ‘방역상 소독하지 않은 자는 출입을 금합니다’라는 푯말이 서 있다. 선종승 조합장의 삶의 터전인 「야곱목장」이다. 전화 통화로 출입을 허락받은 후 선 조합장을 만나 그 이유와 향후 계획을 들어봤다.

 

“20대에 공무원 퇴임 후 본격적으로 낙농을 하시던 아버님의 권유로 발을 들여놨습니다. 송아지 2마리를 내 이름으로 사서 키우며, 사료 먹이기, 볏짚 구하기, 아침·저녁 젖짜기, 비 오면 남들은 쉬지만 반대로 일하러 나가는 고된 일의 연속이었습니다.

바닥에서부터 낙농업을 배우며 낙농가들의 일상을 체득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낙농업의 미래와 희망과 가치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미래를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조합’이라는 제도권에 진입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선종승 전남낙협 조합장의 십수 년간 출마의 변이다. 제도권 진입에 대한 그의 열망은 그냥 생긴 것이 아니다. 30대 후반 낙농육우협회 전남도지회 사무국장 시절 낙농산업의 어려움을 해결해 달라며, 지역 낙농인들과 적극적으로 집회를 열었다.

그 과정에서 시위만으로는 아무 것도 해결되는 것이 없을 뿐 아니라, 소비자들로부터 낙농가들이 마치 원유가 모자라면 모자라다고, 남으면 남는다고 해결해달라며 떼쓰는 것으로 보이는 것도 억울했다. 선 조합장이 낙농발전과 제도권 진입을 위해 공부를 시작한 것도 이때쯤이다. 나이 40에 전남낙협 임원이 됐다.

여타 축종보다 앞섰던 낙농인들이었기에 체계적인 농가 지도와 약간의 경제적 지원만이라도 해주면, 노력이라는 불씨 위에 기름을 붓는 형국으로 성장의 가도를 달릴 수 있다는 사실, 그것을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협동조합이라고 깨달았기 때문이다.

1988년 결혼 후에야 비로소 아버님으로부터 40여 마리의 젖소를 물려받고 본격적으로 목장을 경영할 수 있었다. 당시 땅 한 평에 3000원 하던 시절, 송아지 한 마리에 100만원이 넘었지만 자금만 마련되면 꾸준히 늘렸다. 시골에 살면 땅을 늘리는 것이 보편적이었기에 ‘미친 짓’이라는 소리도 들었단다.

선 조합장은 일본중앙낙농프로그램을 집중적으로 공부했다. 일본중앙낙농에서는 생산대비 소비·수입량을 측정해 적정 자급률을 산정한다. 98%가 낙농가 회원이며 지역의원도 100여 명이나 참여하고 있다고 한다. 선 조합장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일본중앙낙농프로그램과 같은 낙농정책을 만들어달라고 주장해 왔다.

그는 전반적인 흐름이 낙농제도가 만들어질 시기가 왔다고 판단하고, 수급조절기능이 가능하다고 생각해 쿼터제 매매를 주장했다. 소 한 마리를 사면 20kg의 쿼터량이 넘어왔다. 주변의 반발이 심했지만 낙농가의 고령화와 환경 악화 등으로 농가는 계속적으로 감소하는 것에 대응해 ‘살아남을’ 사람을 키우자는 것이 본 뜻이었다.

 

 

― 제도권에 진입해 보니 어떤가?

별반 달라진 것은 없다. 조합원은 지속적으로 감소해 600여명에서 300여명으로 반토막이 났다. 그나마 남아있는 조합원 중에 80살 되신 분들이 다수다. 그만큼 상황이 어려워진 것의 반증이다. 이 분들이 어떻게 하면 보다 나은 조건에서 낙농업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조합장의 역할이다. 지금은 밖에서 본 것과 안에서 보고 있는 것들을 ‘교차 점검’하는 시기다. 그런 의미에서 직원들과의 대화와 현장 조합원들의 목장을 방문하면서 문제점을 파악하고 해결 순서와 방향을 설정하고 있다.

 

― 그동안 품고 있었던 가치의 실현은 뭔가?

물론 조합원들의 실익증대다. 건전한 조합을 만들어 활발한 환원사업으로 조합원들이 ‘잘사는’ 조합만들기가 최종의 목표다. 윤리와 투명한 경영을 통해 조합 경영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조합장 독단이 아니라, 모든 사업에 조합원들이 참여하는 민주적이고 소통이 자유로운 체제로 전환함으로써 신뢰를 바탕으로 조합과 조합원이 하나가 되는 조합 만들기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조합원의 사회·문화적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복지사업과 교육지원사업을 확대한다. 고령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농가 사정에 맞는 맞춤형 컨설팅을 적극적으로 전개한다. 이는 비단 사육관리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맞춤형’이라기 보단 ‘종합 맞춤형’이라는 표현이 적절하다.

3곳의 동물병원을 통해 젖소 생산성 향상과 악성 가축질병 차단은 물론 목장에 맞는 사료 공급까지 모두 포함되기 때문이다. 나주 공판장 물류센터 건립과 TMR사료 생산설비 증설 등은 노후화된 나주 TMR사료공장 개선으로 가능해질 것이다.

보성과 나주공장에 2개의 낙농컨설팅팀이 현지 방문하며 지도하고, 전문컨설팅 직원 3명, 수의사 3명이 농가의 애로사항을 해결하면서 지금 전남낙협은 조합과 조합원간의 신뢰로 리빌딩하는 중이다.

 

― 유가공사업은 하고 있나?

별도로 조합을 중심으로 유가공사업을 하지는 않는다. 대신 조합원들이 자체적으로 치즈공방 등을 통해 유제품을 생산하고 있는 점에 착안해, 광주지점과 본소에 이들이 생산하는 유제품들을 판매할 계획이다. 현재 판매소를 준비하는 중이다.

 

― 낙농산업 발전과 관련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최근 농축산부의 자료에 따르면 2013년 국민 1인당 쌀 소비량은 67.2kg에서 지속적으로 감소해 2016년에는 61.9kg이었다. 반면 유제품을 포함한 우유소비량은 71.3kg에서 76.4kg으로 늘어났다. 우유가 일부의 주장처럼 건강에 좋지 않은 ‘시원찮은’ 식품이라면 이렇게 늘어났겠는가.

국민의 주식으로까지 성장해 가는 낙농산업이 힘든 것은 정부의 낙농정책이 잘못됐기 때문이다. 낙농업 발전을 위해서는 집유 일원화가 시급하다. 일원화가 되면 지역별, 유업체별 유대의 차등 문제, 쿼터에 대한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무허가 축사 적법화 문제도 그렇다. 1단계 유예기간이 불과 6개월도 남지 않았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서울우유의 경우 조합원의 1/3이 절단난다. 기타 조합이라고 배겨낼 재주가 있겠는가. 정부는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낙농가들이 사라지고 나면 가뜩이나 낙농선진국들과의 FTA 협상으로 늘어나고 있는 외국산 유제품이 봇물 터지듯 할 것이 뻔하다. 그렇게 자급률이 떨어졌을 때 과연 수출국들이 유제품을 싸게 팔 것이라고 생각하나? 정부 뿐만 아니라 소비자단체들도 심각하게 생각해 봐야 할 문제다.

 

― 마지막으로 조합장의 역할이란?

리더는 공부해야 한다. 항상 판단해야 할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력을 갖도록 부단히 노력해야 조합과 조합원이 성장할 수 있다. 선거도 물론 중요하다. 제도권에서 벗어나면 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합원들에게 실익을 주는 일에 묵묵히 최선을 다한다면 조합원들이 선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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