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곳에서 안전 통합관리…공정 거래가격 형성

 

계란유통센터(GP)를 통한 계란 유통 의무화가 가시화될 전망이다.

농축산부는 식약처와의 협의 하에 축산물위생관리법 개정을 통한 식용란선별포장업 신설로, 계란유통센터(이하 GP센터)를 통한 계란유통을 의무화한다는 방침이다.

이는 지난 겨울 AI 창궐 당시 계란수집차량이 여러 농가를 다니며 AI 바이러스 전파의 주요 매개체로 작용한다는 지적에 따른 것.

또한 살충제계란이 도마 위에 오르며 계란 안전관리방안의 일환으로 향후 판매되는 모든 계란은 GP센터를 통해 수집·판매토록 의무화하고, 이를 안전검사의 거점으로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이와 함께 계란의 공정거래가격 형성을 위한 공판장 역할을 수행케 함으로써 계란 생산유통 흐름을 체계적으로 파악하고, 정책적으로 활용한다는게 정부의 복안이다. 계란 GP센터 왜 필요한 것일까.

 

# 중간상이 국내 계란 65% 유통

계란은 산란계농장에서 식용란수집판매업체를 거쳐 소비지로 가는 크게 3단계의 유통과정을 거쳐 소비자에게 공급된다.

하지만 국내 계란 유통방식은 산지 중간유통상인에 의존한 거래형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국내 전체 계란 유통량을 100으로 가정했을 때 그중 50이 GP센터를 통해 유통되고 나머지 50은 유통상인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는 것.

그러나 GP센터를 이용하는 50도 판매단계에서 중간유통상을 이용하는 까닭에 전체 계란의 약 60~70%가 중간유통상인에 의해 유통되고 있다는게 업계의 추정이다.

실제 aT가 지난 2015년 발표한 ‘주요 농산물 유통실태’에서도 GP센터를 통한 유통비중은 35.7%로, 나머지 국내 전체 계란 생산량의 약 65% 가량이 중간상인에 의해 유통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때문에 계란이 과잉될 경우 큰 폭의 DC가 발생하고 있으며, 농가에게 불리한 선 출하·후 정산 거래 관행이 자리 잡혀 있다는게 업계의 중론이다.

또한 계란유통상인에 의한 부도나 장기어음 등으로 농가손실이 발생하는 등 유통체계 개선은 계란업계가 반드시 풀어야할 숙제로 지적돼왔다.

 

# 생산량 파악 안 돼 수급조절 애로

또한 계란은 소·돼지·닭 등의 육류나 유제품과 달리, 도축이나 가공 등의 처리공정 없이도 소비가 가능한 품목이다.

때문에 처리공정을 거치지 않고 중간상인에 의해 거래되는 유통구조의 특성상 소·돼지와 같은 도매시장 기능을 할 수 있는 공판장이 없어 생산 이후의 유통흐름 파악에 어려움이 있어왔다.

타 축종의 경우 산지시설 중심의 공판장과 도매시장 등이 잘 정비돼있고 법정 도매시장 경매를 통해 투명하고 공정한 가격결정으로 축산물 유통과정에 대한 신뢰성이 매우 높은 반면, 계란은 복잡한 유통구조로 이뤄져있는데다 가격결정에 중심적 역할을 할 시장기능이 부족했던 것.

또한 계란은 소매업태와 직거래를 하는 대형농장부터 유통상인과 거래하는 농장, 협동조합과 거래하는 농장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유통되는 까닭에 정확한 계란 생산량에 대한 통계가 잡히지 않아 관련 정책 수립과 수급조절 등에 애로사항이 있어 왔던 것이 사실이다.

때문에 계란의 수요공급에 의한 시장가격 결정과 산란계산업의 안정적인 기반 구축을 위해 계란유통센터, 즉 GP센터의 설립 필요성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 GP 실패…이후 정부 반대로 무산

이에 양계업계는 1990년대부터 GP센터를 통한 계란 유통구조 개선의 필요성을 줄곧 주창해왔다.

하지만 당시 서울계란양계협동조합에서 시작한 GP센터는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계란값이 낮을 땐 상관이 없지만, 값이 뛸 경우 GP센터로 계란을 납품하지 않고 웃돈을 더 얹어주는 유통상인과 직접 거래하는 일이 많았기 때문.

따라서 계란이 집중되지 않아 GP센터의 가동률이 낮았고, 결국 적자를 면치 못해 부득이 사업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는게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후 양계업계는 2000년대 중반부터 다시 계란공판장, 계란유통센터 등 GP센터 중심의 유통구조로의 전환을 정부에 요구했지만, 이해관계자들의 반대와 정부의 무관심에 부딪혀 성사되지 않았다.

지난 2012년에도 양계협회는 박근혜 정부에 GP센터 중심의 계란 유통구조 개선을 위해 T/F팀을 가동해 계란검사제도를 의무화하고 GP센터를 계란검사를 위한 창구로 하는 ‘축산물위생관리법 개정안’을 만들어 건의했지만 정부의 반대로 무산됐다.

농협 역시 사업구조 개편 당시 계란유통센터 건설을 계획에 포함시켰지만 개편이 무산됨에 따라 투자계획도 함께 철회했다.

 

# GP, AI·살충제계란 방안으로 떠올라

이처럼 수년째 논의만 될 뿐 갈피를 못 잡고 있던 GP센터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된 것은 지난겨울 전국을 강타한 고병원성 AI의 전파요인으로 계란수집상인이 지목됐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 AI의 피해가 산란계농가에 집중된데는 매일 3~4개의 계란수집상인 차량이 농장에 출입하는데다, 이 차량이 여러 농장을 방문하며 계란을 수집한 것이 주원인으로 드러났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계란수집차량의 직접적인 농장출입을 막기 위한 방안의 일환으로 기존 GP를 포함한 권역별 거점 계란인수도장을 지정·운영하고, 농장과 계란인수도장 간 계란운반 전용차량 지정 운행을 법제화하는 방안을 내놓기도 했다.

여기에 지난 8월 살충제계란 파동까지 불거지며 GP센터 설립 동력의 불씨를 지폈다.

정부는 이번 살충제계란 사태를 계기로 국민건강을 위해 안전관리 방안이 필요하다고 판단, 향후 판매되는 모든 계란에 대해 GP센터를 통한 수집·판매를 의무화하고, 이를 안전검사의 거점으로 활용하겠다는 뜻을 피력했다.

 

 

 

계란유통센터(GP) 해결해야 할 과제는?

 

‘누가’·‘어떻게’ 운영할 지

의견 수렴 반드시 거쳐야

 

이처럼 수년째 도마 위에만 오르던 GP센터 설립 문제는 AI와 살충제계란 파동 이후 급물살을 타게 됐다.

이에 정부는 향후 유통되는 모든 계란이 GP센터를 통해 유통되도록 제도화하는 한편, 2018년에는 GP센터 4개소 신·증축 등에 18억원을 지원해 전국 GP 네트워크를 구축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이같은 GP센터를 통한 계란유통 의무화를 두고 같은 계란업계에서도 이견이 분분하다.

가격 DC·후정산 등의 업계관행 및 질병전파 근절, 계란 유통구조 개선 등을 위한 GP센터 의무화에는 모두 공감하지만, GP센터의 역할과 운영방법 등 세부사항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뚜렷한 윤곽이 잡히지 않아 허울뿐인 전시행정에 그칠 것이란 우려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때문에 이같은 정부의 방침은 ‘GP센터 설립’이란 구호만을 외칠 뿐 현실적으로는 구체적인 계획을 내놓지 않았다는 비난이 높다.

GP센터가 가야할 방향은 무엇일까.

 

# 하드웨어 보단 소프트웨어 먼저

전문가들은 GP센터 신·증축 등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에 대한 결정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GP센터를 ‘누가’‘어떻게’ 운영할지 등 대략적인 문제를 결정한 뒤 향후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수렴한 보완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정부가 운영할지, 농협이나 영농조합인지, 유통상인이 될 것인지.

GP센터의 기능은 선별·검사·포장인지, 아니면 세척업무까지 수행할 것인지. 만약 세척업무를 포함한다면 콜드체인시스템도 함께 갖춰야 하는데 이 부분은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정산은 월 정산인지, 주 정산인지, 당일 계산인지.

계란 운송비는 누가 부담할 것인지. 또한 검사비용은 농가가 부담하는지 GP에서 계란을 구입해가는 도매업자가 부담하는지.

소규모농가의 경우 제도권 안에 포함시킬 것인지.

기존 60여개의 GP는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등 세부적인 체계를 마련한 뒤 GP센터 신·증축에 들어가야 향후 이중으로 자금이 투입되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 GP센터, 구체적 청사진도 없어

GP센터에 대한 기본계획과 연차별 시행계획이 전무하다는 것도 문제다.

GP센터를 통한 계란유통 의무화를 위해선 전국적인 GP센터 구축이 기본이기 때문.

하지만 2017년 9월 현재 국내 GP센터는 60여 개소로, 아직도 GP센터를 통한 유통비율은 전체의 35.7%에 불과하다.

나머지 64.3%의 계란을 유통할 GP센터의 신·증축이 시급하지만, 이 역시 어디에, 어떻게 지을지, 또한 개소당 350억이 소요될 것으로 추정되는 GP센터의 자금을 어떻게 조달할지, 누가 투자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청사진이 없는 상태다.

또한 GP센터를 신·증축한다손 치더라도 GP센터와 거리가 먼 지역이나, 산란계농가가 적어 가동률이 낮을 것으로 우려되는 지역의 경우 GP센터의 운영비를 누가 지원할지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을 지적했다.

 

# GP 성공 전제조건은 법제화

관계자들은 또한 GP센터를 통한 계란유통이 성공하기 위해선 GP센터를 통한 계란유통 법제화가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시행착오를 겪으며 결국 실패로 돌아간 서울계란양계협동조합의 사례를 보듯 GP센터 의무화가 전제되지 않을 경우 적자에 허덕이다 또다시 과거의 전철을 밟을 수밖에 없다는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한 계란전문가 역시 같은 점을 지적했다.

그는 “서울계란양계협동조합 GP센터가 실패한 이유는 산란계농가들이 GP센터 보다 값을 더 높게 쳐주는 유통상인과의 거래를 택했기 때문”이라며 “계란이 모이지 않으면 GP센터의 가동률이 낮아지고 결국 적자가 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법제화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GP센터를 운영할 경우 제2, 제3의 서울계란양계협동조합이 나올 수밖에 없다”며 “정부의 적극적인 의지가 뒷받침돼야 가능하다”고 역설했다.

 

# 질병 발생시 전파 우려도

이외에도 계란GP센터에 고려해야 할 경우의 수는 무궁무진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특히 살충제계란이나 AI 등의 문제가 불거질 경우다.

먼저 마트에서 구입한 계란에서 살충제가 나왔다고 가정해보자.

이 경우 산란계농장의 잘못인지, 아니면 계란 안전검사를 소홀히 한 GP센터의 잘못인지 책임소재가 모호하다.

AI가 발생할 경우도 마찬가지다.

AI 발생농장 계란이 GP센터로 유입됐을 경우 계란 폐기문제와 이에 따른 비용은 누가 보상할 것인지.

또한 아무리 소독을 철저히 하고 입·출입차량 동선을 분리한다 하더라도 발생농장 차량이 GP센터를 방문하는 과정에서 타 차량을 통해 전파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했다.

 

# 계란 가격상승은 필수불가결

가장 큰 문제는 계란이 GP센터를 통해 유통될 경우 가격상승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는데 있다.

전문가들은 GP센터를 거칠 경우 계란가격이 최소 10% 이상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계란은 움직이면 깨지기 때문에 유통과정이 늘어날 경우 파란율도 덩달아 증가한다는 것.

이와 관련 한 전문가는 “GP센터를 통할 경우 파란 비율이 최고 25%까지 높아질 수 있다”며 “기존 중간유통상인이 운반하던 것을 농장주가 전용차량을 이용해 GP센터까지 운반함으로써 발생하는 운반비, 계란 검사비용과 GP센터 운영비까지 계란가격 상승은 필수불가결한 요소”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GP센터에 의한 계란 가격상승을 소비자들이 동의하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며 “인프라 구축에 최소 3년 이상 소요되는 만큼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해 이를 둘러싼 논란은 한동안 지속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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