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경제학자 겸 사회학자인 소스타인 베블린은 “모든 사회제도는 그 제도가 만들어지던 당시의 시기, 그 사회의 지배적 사고방식의 산물이자 표현”이라고 말했다. 이는 역으로 지배적 사고방식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계속 변하고, 그 변화에 따라 사회제도도 바뀐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어떤 상황에서 변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도저히 변화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을 때”라고 말했다. 인간은 원래 관성의 법칙에 지배받기에 보수적일 수밖에 없는데다, 혁신을 한다는 것은 사고방식과 생활태도를 바꾸는 것이라 에너지(그것도 정신적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기에 계속 보수로 남는다고 덧붙였다.

 

안일함, 현장과 괴리

 

그래서 부유층은 바뀌지 않는다고 한다. 돈이 많아서 생활의 압박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 하루를 살기가 바쁜 사람들은 도저히 못 견딜 때 변화하기 시작한다. 태평성대에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농협 직원들은 농협을 ‘대기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중소기업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을 포함한 많은 근로자들도 농협을 대기업으로 여기지 않는다. 그러나 농협 임원들의 권한이나 직원들의 대우를 구체적으로 열거하면 ‘깜짝’ 놀란다. 협동조합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이 농민과 연관돼 있기에 그렇다.

20세기 농협이 초창기에 현장에서 농민들과 몸으로 때우며 고락을 함께해 왔다면, 20세기 말부터는 금융과 연계되면서부터 좀 더 편안하게 금전적 혜택을 누리게 됐다. 그 편안함이 안일함으로 바뀌고, 안일함이 농업의 현장과 괴리되면서 강력한 개혁의 대상이 됐다.

농민은 줄도산으로 이탈해 그 수가 급격히 줄어들어가는 와중에서도 농협은 ‘농민을 위한 단체’라는 명분을 내세워, 손쉽게 ‘도 금고 등’ 정부 자금을 유치해 왔다. 경제지주로 이관된 상태인 지금에도, 농협 내부에서는 ‘설마 농협이 망하겠느냐’다.

대기업들도 경영이 어렵던 시절 월급 대신 팔던 제품들을 주었고, 성과급을 물품으로 지급한 적이 있다. 그렇게 하고도 대량 해고를 감행해 많은 직장의 동료들이 세상 밖으로 홀로 나섰다. 농협도 부실한 대출 등 대손충당금을 채우느라 M급들의 급여 중 일정액을 떼는 등 허리띠를 졸라맨 적이 있다.

하지만 농협이 변화와 혁신을 하지 못하면 조직의 존폐가 어려운 지경에 이른 적이 있었나? 주인이라는 농민과 그 농민들의 터전이 갈수록 황폐해져 가는 지경에 이르렀음에도 농협은 자체적으로 변화와 혁신을 꾀하지 못했다.

 

살아 남는 법 배워야

 

글로벌 경영컨설팅 회사인 매킨지의 자료에 따르면 기업의 평균 수명은 1935년 기준으로 90년이던 것이 1975년엔 30년, 2015년에는 15년으로 갈수록 줄고 있으며, 또 다른 컨설팅 회사인 액센튜어가 미국 S&P500 기업을 분석한 자료는 2010년 기준 15년, 2020년에는 10년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2007년과 2008년 세계 휴대폰 시장 점유율 1위는 삼성이나 애플이 아니었다. 2008년 점유율이 거의 40%를 차지할 정도로 타 업체와 비교가 불가했던 부동의 1위는 ‘노키아’였다. 하지만 스마트폰 출시 불과 8년 만에 노키아는 시장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당시의 점유율만으로 자만과 오만에 사로잡혀 자멸했다. 빠르게 이동하는 스마트폰 시장의 환경 변화를 제대로 수용하지 못한 결과다. 하지만 오랜 기업들 중에서도 여전히 살아남아 시장에서 선두를 유지하는 기업들도 있다. 이 기업들의 특징은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과거에 얽매이지 않으며, 계속해서 말을 갈아탄다는 것이다. 하지만 농협을 보면 망하지 않는다는 게 용하다는 느낌 뿐이다.

정부의 대농가 자금지원 창구 역할을 하고, 정부로부터의 농업정책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는 기존의 방식은, 경제지주로 이관되면서 한계점에 부딪쳤다. 피 튀기는 ‘레드오션’에서 온전히 살아남는 법을 배워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최근 GS&J 인스티튜트에서 제기하는 ‘가치사슬’ 경영은 특히 의미 있다. 생산과 유통을 따로 접근하는 방식으로는 경영을 혁신할 수 없다는 것이다. 농업이 수입과 생산 증가로 농산물 실질가격이 하락하고 소득은 정체되는 가격 함정에 빠져있음으로 끊임없이 진화하는 소비자 코드를 읽어 소비자의 지불의사를 높이는 가치경영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가치사슬 경영 도입

 

농장에서 식탁까지에 이르는 전 과정을 가치 창출의 연속과정으로 파악하고 가치생산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것이 가치사슬 경영의 요체다.

가치사슬 경영이 성공하려면 가치사슬 각 단계를 일관성 있게 통합하는 강한 통제력을 갖는 기업 또는 생산자 조직이 필요하므로 농협은 가치사슬 경영을 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하고 적합한 조직이며 능력자라고 강조했다.

지주사 중심의 농협 개혁은 이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조치였으므로 농협은 가치사슬 경영을 최우선 목표로 설정해 추진해야 하고, 정부의 농협정책은 여기에 초점을 둬야 한다고 거듭 지적하고 있다.

농협에 있어서 변화와 혁신이란 지금까지 얽매여 있는 20세기의 과거를 버리고 21세기의 사고방식을 서둘러 몸에 익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농협이 흔들리면 한국 농업의 기반이 뿌리째 흔들리기 때문에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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