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생활 회의…“내가 주인공 되는 삶 살겠다”
최근 각박한 도시생활에서 벗어나 시골에서의 전원생활을 꿈꾸며 귀농을 택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하지만 농업과 달리 축산은 귀농인들이 쉽게 넘볼 수 없는 분야다.
초기자본이 너무 많이 드는데다 질병·사양관리 등의 전문지식이 필요한 탓에 축산분야로의 진출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여기 젊은 패기 하나로 축산 귀농의 꿈을 실현하고 있는 청년이 있다. 강화섬염소의 신호철 대표(35)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 32살에 첫 장화
“32살에 장화를 처음 신어봤어요. 축산의 축자도 몰랐습니다”
신호철 대표가 껄껄 웃는다.
강화에서 나고 자랐지만, 장애인 콜택시를 모시는 아버지 밑에서 자랐기에 흙 한번 만져보지도 못하고 곱게 자랐다는게 신 대표의 설명이다.
대학과 직장 역시 축산과는 거리가 멀었다.
제과제빵학과에 다녔던 그는 이벤트업체에 취직해 전문 사회자로 활동했다. 타고난 수완 덕에 남들보다 빨리 성공의 열매도 맛봤다.
27살부터 매달 600만원의 큰돈을 손에 쥐었고, 좋은 차도 끌었다.
하지만 정작 그의 삶은 행복하지 않았다.
항상 스케줄이 잡혀 있었고, 나머지 시간은 다음 행사를 준비하는데 허비했다.
잠을 4시간 이상 자본 적도 없었다.
그렇게 5년을 일만 하다 보니 회의감이 밀려왔다.
“앞으로는 내가 주인공인 삶을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 귀농 축종으로 흑염소 선택
그는 고향인 강화도에 돌아가기로 결심하고,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찾기 시작했다.
귀농에 실패하고 도시로 돌아오는 ‘역(逆) 귀농’을 하지 않기 위해선 남들과는 다른 무언가가 필요했다.
사업 아이템을 찾아 이곳저곳을 다니던 그는 결국 흑염소에서 해답을 찾았다.
흑염소는 소, 돼지 등 다른 축종 대비 소자본으로 시작할 수 있다는 것.
또한 아무거나 잘 먹고 추위에도 강하며 성질도 온순해 부녀자나 노인들도 쉽게 키울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으로 다가왔다.
그 중 가장 큰 장점은 빠른 자본 회전율이었다. 흑염소는 임신기간이 짧은데다 한 배에 2마리의 새끼를 낳기 때문에 증식이 빠르고, 사육기간도 짧기 때문.
또한 타 축종에 비해 영양학적 가치가 높아 고기용이나 약용으로의 수요가 증가하고 있는 점도 흑염소를 택한 한 요소였다.
“전라도와 경상도에선 흑염소 시장이 크지만 서울의 경우 흑염소시장이 작더군요. 차로 30분이면 서울에 닿을 거리기 때문에 블루오션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 1년간 본격적인 사전준비
이때부터 그는 흑염소 사육을 위한 본격적인 사전준비에 돌입했다.
배짱만 가지고 아무런 지식 없이 흑염소 사육에 뛰어들었다간 몇 년 후 백기를 들고 나올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33살 3월에는 사표를 내고 강화와 대전을 오가며 생활했다.
그는 강화 소재 ‘농부와 베짱이’란 체험학습장에 취직해 마케팅팀장으로 활동했다.
적더라도 고정적인 수입이 필요하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이곳에서 염소 50여두를 키우고 있다는 점도 취직한 이유 중 하나였다.
“염소 사육에 대해 많이 배웠지요.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1년 뒤인 지난해 3월에는 본격적인 홀로서기를 시작했다.
그는 종자돈 1억원에다 인천강화옹진축협에서 받은 귀농자금 2억5000만원을 더해 총 3억5000만원으로 축산에 입문했다.
농장명은 ‘강화섬염소’로 명명했다.
강화군 송해면 인근 750평의 부지를 매입해 축사를 올리는 한편, 수암흑염소학교에 입학해 전문적인 지식을 쌓았다.
또한 전국 선도 농가를 찾아다니며 노하우와 함께 인맥도 쌓았다.
“‘강화섬’ 브랜드를 단 염소농장으로는 1호입니다. 그만큼 농장이 잘돼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었지요”
# 값비싼 수업료 지불하며 배워
그는 흑염소 사육방식으로 방목 대신 축사 사육을 택했다.
방목은 사료비가 적게 들고 손이 적게 간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소화기 질병이 발생할 확률이 높고 근친교배를 막을 수 없는 단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근친교배시 새끼의 크기가 줄어듭니다. 100g씩 줄어든다고 가정할 경우 10마리면 1kg, 100마리면 10kg이 빠지는 거죠. 티 안 나게 농장의 수익을 갉아먹는 주범이 바로 근친교배입니다”
이처럼 이론은 해박했지만 정작 실전에서는 약했다.
축사에 입식한지 한 달여 만에 120마리 중 30여 마리가 죽어나간 것.
자칭 ‘매의 눈’으로 고르고 골라 구입한 개체가 다음날 아침 죽어 있기도 하고, 수송과정에서 20여 마리가 압사를 당한 일도 있었다.
또한 새끼를 한번 밖에 안 뺐다는 말에 웃돈을 주고 데려온 암컷이 도통 새끼를 배지 않아 속을 썩기도 했다.
속상한 마음에 술로 밤을 지새운 적도 여러 날이다.
“진짜 필요한 것은 이론이 아니라 몸소 겪으며 배우는 것이란 걸 깨달았습니다”
값비싼 수업료를 지불했지만, 염소 보는 눈을 뜨게 됐다.
또한 용접작업을 하다 불똥이 마른 건초에 튀어 농장을 다 태워 먹을 뻔 한 적도 있었지만, 이제는 문짝도 뚝딱 만들어낼 정도로 제법 준기술자가 됐다고.
# 흑염소 유통과 식당 운영도 염두
현재 강화섬염소에서는 암컷 60마리, 수컷 20마리 등 총 80마리를 사육하고 있다.
흑염소 분양과 함께 엑기스, 중탕, 고기 등을 판매하는 한편, 강화읍 소재 개성건강원과 계약을 맺고 흑염소를 납품하는 일까지 병행 중이다.
아직까지는 본전 수준에 그치고 있지만, 농장의 한 싸이클이 끝나는 내년부터는 본격적인 수익이 발생할 것이란게 신 대표의 설명이다.
“모든 것들은 바닥을 친 후에는 올라가게 되어있지요. 현재 흑염소가격이 낮기 때문에 마릿수를 유지하고 있지만, 시장 상황이 나아지면 암컷을 120~150두까지 늘릴 예정입니다”
이를 위해 그는 ‘강화섬염소’ 농장에 스토리를 입히는 작업에 한창이다.
현재 강화섬염소 블로그의 접속자는 일일 250~500여 명 수준이지만, 이를 3000명까지 늘려 마케팅에 적극 활용하겠다는 것.
많은 고정 고객을 확보해 좋은 먹이와 깨끗한 환경에서 키운 정직한 먹거리를 공급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을 것라는게 그의 판단이다.
또한 농장이 자리 잡힌 후에는 흑염소 유통과 흑염소 식당 운영에도 뛰어들겠다는 야심찬 포부도 갖고 있다.
이를 위한 사전포석으로 지난해 3월에는 강화군 농업대학 농업유통과에도 입학했다.
# 귀농인 위한 상담도 진행
그는 귀농인을 위한 상담도 진행하고 있다.
“가장 어려웠던게 서류작업이었습니다. 용어도 그렇고, 사업계획서를 작성해 제출해야 하는 등 복잡하고 까다로운 절차로 꽤나 애먹었습니다”
그는 도움이 필요해 찾아온 사람들에게 본인이 겪었던 사례와 함께 귀농을 위해 필요한 사항 등을 상담해주기도 한다.
“귀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소득이죠. 소득이 없으면 몇 년 안에 역귀농을 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는 “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하는 것보다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내려와야 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구체화 시켜서 내려와야 한다고 조언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지금 처한 현실에는 만족하되 자기 자신에게는 만족하지 말라’는 본인의 좌우명처럼 항상 노력하는 축산인이 되겠다며 “곧 ‘강화섬염소’의 흑염소고기를 서울에서도 만나볼 수 있을 것”이라며 밝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