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경제지주엔 농업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농업으로부터 독자성을 확보하고, 한국 축산업의 중심축을 담당하고 있는 축산경제도 포함되어 있다. 결과적으로 농협은 한국 농축산업의 기반을 지지해왔고, 21세기 그리고 더 이후까지 지속 발전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라는 사실엔 변함이 없다.

대기업들의 농축산업 진출과 영세 농가의 몰락과 전기업화가 가속화되고 있는 실정에서는 협동조합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협동조합 내·외부는 물론 농축산업 관련 전문가들 역시 공감하는 입장이다. 때문에 협동조합을 둘러싼 신랄한 비판은 애정에서 오는 것이라는 사실도 인지돼야 할 부분이다.

 

왜 ‘바보’취급 받을까

 

얼마 전 축산물 유통전문회사가 중심이 돼 ‘축산물 사이버 경매’가 추진되고 있는 사실을 두고, 구축협중앙회 출신 축산물 유통전문가는 한탄 섞인 말로 영국의 극작가 겸 소설가이자 비평가인 조지 버나드 쇼의 비문을 인용했다.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

농협 부천축산물공판장의 부분육 출하기념식에서 당시 안심분사장은 “농협의 축산물공판장을 중심으로 사이버 경매를 실시하게 되면 축산물의 이송 등에 따른 악성가축질병의 확산을 효율적으로 막을 수 있는 다양한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면서 “조속한 시일 내에 사이버 경매를 현실화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농협 대부분의 계획들처럼 시간 속에 묻혔다.

계열사와 관계사를 포함한 임직원 10만여명, 계열사 31개, 조합원 235만명, 자산 400조원, 보험, 증권, 자산관리, 대학, 신문사, 심지어 동네 주유소에 비료회사까지 대한민국 농(農)자 붙은 것은 거의 모든 회사가 농협과 관련된 것들이다. 거대한 조직에서 도대체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일까?

농협이 없다면 대한민국 농업이 온전히 존재할까? 어림없는 일이다. 농협에 대해 끝없이 불만을 터트리는 농민들조차 인정한다. 초대기업에 버금가는 농협에 입사하기 위해, 수많은 인재들이 치열한 경쟁을 뚫고 농협맨이 되려고 입사전쟁을 치른다.

그토록 쟁쟁한 인재들이 왜 농협에만 들어가면 ‘바보(?)’ 취급을 받는 걸까? 그건 농협이 과거의 관행과 향수에서 벗어나지 못한 소수의 경영형태에서 비롯됐다. 기업들이 신입사원을 뽑는 것은 젊은피의 필요성 때문이다. 젊은피는 낡고 정체된 구조에 자연스런 활력을 불어넣는다.

 

기업문화에 분탕질

 

신입사원들은 기존의 기업문화와 동화되거나 갈등을 빚으면서 새로운 문화를 창출하지만, 농협의 경우, 임기 4년의 회장을 중심으로 움직이다 보니 경직된 문화에서 조금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여기에 농협법은 정부로부터 독립돼 있지만 실상은 정부로부터 독립적이지 못하고, 사사건건 정부가 계획과 경영, 인사에 개입하면서 ‘관료문화’까지 혼합돼 기업문화에 분탕질을 친다.

이러한 문화는 농협을 ‘농민이 주인’이라는 협동조합의 이념과 동떨어지게 만든다. 이러한 문화 속에서 직원들이 협동조합맨으로의 자부심을 가질 수 있을까? 신입사원은 정식 업무 배치를 받기 전, 3개월의 교육을 통해 협동조합이 어떤 곳이고, 어떤 마음자세로 업무에 임해야 하는 지를 익힌다.

업무에 배치된 신입사원들의 눈동자는 한결 같이 빛난다. 교육기간 동안 현장 농가에서 체험을 하면서 자신이 농가를 위해 어떤 일을 해야 하는 지에 대해 스스로 잘 알고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1·2년이 지나고 시간이 흐르면 쌓이는 건 말 그대로 ‘희미한 옛사랑의 추억’이고 남는 건 ‘자조감’이다. 그렇게 무미건조한 시간을 보내도 월급은 또박또박 나오고(그것도 중소기업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특별한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한 퇴사를 종용받지도 않는다. 철밥통이라는 관료사회와 별반 다를 게 없다.

하지만 신경이 분리되고, 경제지주로 조직이 재편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이전처럼 경제사업으로 적자를 내도 신용사업에서 벌어들인 돈으로 메워줄 수도 없고, 자금을 풀어 손해를 보면서 농민이 생산한 농축산물을 사들일 수도 없다.

 

‘시간죽이기’가 싫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협의 집행부는 이전의 방식에서 조금도 벗어나질 못한다. ‘협동조합의 존재가치는 농민을 위한 것’이라는 슬로건을 높이 들고, 부서장들이나 계열사 임원들을 조이고 있지만 그 뿐이다. 직원들도 경제지주가 혼란스럽다. 오랫동안 몸에 익은 안일함은, 조직의 분위기에서 비롯된 것이긴 하지만 그 시류에 휩쓸리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방향점을 잃었다. 그러니 불만만이 남는다.

이전의 인사철 땐 중앙본부로 들어가기 위해 청탁까지 했다. 중앙본부로 들어가야 인사가 쉬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어느 누구도 선 듯 이동을 원하지 않는다. 오히려 중앙본부의 직원들조차 사업부서로의 배치를 원한다. 일단은 ‘답답하다’는 이유다. 주어진 업무는 많지만 일이 혼란스럽고, 창의성을 발휘할 여지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시키는 일에만 매달리는 ‘시간 죽이기’가 싫다는 말이다. 중앙본부가 이 지경이면 전체의 경영은 보나마나다. 다행스러운 것은 “고되더라도 사업부서로 나가겠다”는 움직임이 늘고 있는 것을 보면 아직도 직원들은 ‘협동조합맨’을 붙잡고 있다는 것이다. 아직 늦지 않았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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