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까지 농가소득 5000만원 시대를 열겠다는 김병원 농협중앙회장의 각오는, 농협이 농민의 소득 안정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는 의도로 풀이한다. 왜냐하면 현실적으로 5000만원 시대를 달성할 가능성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농협 관계자의 말처럼 기존의 농협 사업을 농가소득 증대를 중심으로 재편했다는 것에 의의가 있고, 설령 달성하지 못하더라도 이를 위해 노력해가는 과정이 더 중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정작 이를 달성하기 위한 노력이 성급한 목표치를 설정하고, 무슨 일이 있어도 달성하라는 지침은 바로 예전 사업 방식과 결코 달라지지 않았다.

 

소통은 ‘듣기’가 우선

 

‘5000만원 소득 시대’를 놓고 농협 내외부에서의 부정적 입장을 표현하면 이렇다. 축산농가들의 연평균 소득은 7000만원을 웃돌고 있다. 1억을 넘는 전업농가들도 심심찮게 등장한다. 이들의 소득을 좀 더 높게 책정하고, 농촌의 고령화와 영세농가들의 이탈로 농가수가 줄어들면, 이 상황을 평균으로 따지면 5000만원 시대가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라고. ‘평균의 허수’다. 평균이 올라간다고 반드시 모든 대상농가의 소득이 올라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김 회장은 줄곧 ‘소통’을 강조해 왔다. 중앙회장과 조합장, 중앙회장과 임직원 밤샘 컨퍼런스를 열고, 계열사와 사업장 임직원들과의 농담(農談)토론 등등 ‘이념 공유’를 위해 수시로 모임을 가졌다. 하지만 평가는 공유보다는 이념 강조의 ‘훈시’였다. 소통은 ‘말하기’가 아니라 ‘듣기’다.

직원들은 무능력한 바보가 아니다. 직원들은 능력이 넘치고 똑똑하고 지적이며, 창의성이 풍부한 재원들이다. 그런데 왜 현실에서는 직원들을 마치 바보 대하듯 할까? 농협중앙회 직원들은 어느 대기업과 견주어도 특별하게 못나지 않는데도 왜 자유로운 시장 경쟁에만 뛰어들면 일선 기업들과 비교조차 되지 못할까? 그 원인을 직원 개인의 능력에서 찾는 방식 자체가 20세기 아날로그다.

예전에는 직원이 마치 소모품처럼 여겨지곤 했다.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직원들은 매일 비슷한 옷을 입고 비슷한 시간에 직장에 도착해 비슷한 일을 했다. 또 비슷한 책상에 앉아 일을 하고, 같은 상사에게 업무보고를 했다. 물론 점심식사도 같았다. 이러한 ‘동질성’이야말로 창의성을 죽이는 지름길인데도 끊임없는 동질성 속에서 일을 한 것이다.

 

서로 방법 몰라 혼란

 

이러한 획일적인 구도로, 직원들의 업무 몰입도를 높일 수 있을까? 얼마 되지도 않는 물품을 구입하기 위해서는 결제 사인 몇 개가 필요하고, 사소한 업무용 기자재를 구입하는 데도 허락이 필요하다.

2013년 갤럽의 ‘글로벌 일터의 현재’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직장인들 중 13%만이 회사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면서 업무에 몰입한다고 한다. 63%는 몰입하지 못하고, 심지어 24%는 스스로 회사의 ‘방해꾼’이라고 자조한다고 한다. 업무에 대한 몰입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생산성 등이 높아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농협의 집행부가 초점을 맞춰야 하는 것 중 하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농협 방식은 20세기 초 기계공학자인 프레드릭 테일러가 제안한 ‘과학적 관리법’의 개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는 관리자의 역할을 강화해 부하직원을 강력하게 컨트롤해야 노동의 생산성과 운영 효율성을 상승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강요된 획일적 수단과 직원들 간의 강요된 협력을 통해서만 빠른 업무진행이 가능하고, 이를 강요하는 임무는 오직 관리자의 것이라고 했다.

지금 농협중앙회의 흐름은 겉으로는 농민을 위한 협동조합으로 거듭날 것을 천명하지만, 속은 서로 방법을 몰라 혼란스럽다. 한 번도 틀을 깨고 사업 위주로 조직을 재편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경제지주로 바뀌면서 더 혼란스럽다. 금융과 농업과 축산이 각각 자유시장에 편입돼 치열한 생존경쟁을 벌여야 하는 상황에서 어쩔 줄 모르고 ‘이념’에 기댄다. 이제사 시장이 얼마나 냉정하고 치열한지 깨닫고 있는 중이다.

 

옛날 추억에만 집착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장을 비롯한 극소수가 농협을 컨트롤하고, 새로운 시도를 해볼 어떠한 여지도 허락하지 않는다. 과거의 농협이 농민들과 어우러져 직원들이 쌀 가마를 짊어지고, 현장에서 농민들과 고락을 같이 했던 추억에 집착한다.

과거의 관리방식이 기계를 잘 작동하도록 기름칠하는 것이었다면, 미래의 방식은 기계를 개조해 현실에 적응해 나가는 것이다. 바로 관습을 깨는 과감한 도전정신을 고취시키는 것이다. 직원들이 하루 종일 지루한 업무를 보게 하는 일상의 연속에 집착해서는 안된다. 혁신과 창의성, 적응력, 몰입도 등에 집중하게 해야 한다.

농협경제지주가 출범한 지 상반기가 지났다. 수치화된 각종 사업들의 성과는 위로 올라가지 못하고 아래를 향하고 있다. 이전의 상황과 비교하면 ‘위기’다. 하지만 자조 섞인 목소리뿐이다.

사업 부서와 본부를 별개로 나누고, 왜 사업이 부진하냐고 질책하고 또 대책 회의다. 장기간 회의 결과는 ‘대책이 없다’다. 과거 탓이다. 20세기에 길들여진 조직의 분위기로 21세기를 어떻게 견뎌낼지 암담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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