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만년 전 호모 사피엔스는 아프리카의 한구석에서 자기 앞가림에만 신경을 쓰는 ‘별 중요치 않은’ 동물이었다. 당시 대형동물들에 비하면 작고, 날카로운 발톱이 있는 것도 아니고, 강인한 이빨로 타동물에게 위협적인 존재도 되지 않는 보잘 것 없는 신세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주위 환경을 굴복시키고, 식량 생산을 늘리고, 도시를 세우고, 제국을 건설하고, 널리 퍼진 교역망을 구축했다. 그들이 세상을 지배할 수 있었던 것은 다수가 유연하게 협동할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었기 때문이다. 이 같은 협동이 가능했던 것은 오로지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것들을 믿을 수 있는 독특한 능력 덕분이었다.

 

비로소 협력이 가능

 

종교, 정치 체제, 교역망, 법적 제도 심지어 화폐라는 허구, 즉 지어낸 이야기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히브리 대학교에서 역사학 교수로 재직 중인 유발 하라리 교수는 유럽을 비롯 전세계 30개 국가의 언어로 출간돼 베스트 셀러가 된 「사피엔스(Spiens)」에서 이같이 말했다. 인간이 허구를 만들고, 그 허구를 동시에 믿음으로써 협력이 가능하고, 그 가능이 바로 현실화됨으로써 보잘 것 없던 인류가 지구를 지배하게 됐다는 것이다.

최근 미국 복싱팬들로부터 가장 많은 사랑과 지지를 받고 있는 전설의 복서 비니 파시엔자(Vinny Pazienza)를 주인공으로 다룬 영화 「블리드 포 디스(Bleed for this)」가 개봉됐다. 그가 사랑을 받는 이유는 이탈리아 이민자의 아들로 IBF·WBA 두 체급을 석권해서가 아니다.

두 체급을 석권한 그 해 심한 교통사고를 당해 목뼈와 허리를 다치는 중상을 입고, 회복되더라도 거의 하반신 불구가 될 것이라는 의사로부터의 ‘사형선고’를 받았다. 하지만 그는 3개월 만에 목의 기브스를 풀고 재기해 결국 재기전에서 승리함으로써 미국인들에게 ‘인간 승리’의 감동을 주었기 때문이다.

절망 끝에 선 그는 모두가 불가능이라 말하는 도전을 위해 가족의 만류를 뿌리치고 재활에 성공해 재기했다. 그는 말한다. “세상에서 무서운게 뭔지 알아요? 포기하는 게 세상에서 제일 쉽다는 거죠.”

“‘넌 안돼’ 라는 세상의 거짓말에 속지 마라”는 것이 그의 상상이고 신화다. 한 개인의 상상력의 결과가 이럴진대 조직 구성원의 ‘상상 공유’는 또 얼마나 큰 불가능을 가능케 할까?

 

기적을 일으키는 힘

 

지난 9일 스페인 바르셀로나 캄프누에서 열린 ‘2016~2017 유럽축구연맹(UEEA)챔피언스리그’16강 2차전에서 바르셀로나가 파리 생제르맹를 상대로 일궈낸 역전극도 마찬가지다. 바르셀로나는 1차전에서 이미 0-4로 졌기 때문에 이를 극복하기에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모든 전문가들의 평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6-1로 승리함으로써 축구 역사에 길이 남을 역전승을 이끌어 냈다. 파리 생제르맹이 만만치 않은 팀인 데다 최근의 성적도 상승세였기에 ‘기적’이라고 표현하기에 충분했다.

스포츠가 전 세계인들로부터 각광받는 것은 각본 없는 드라마가 종종 연출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드라마에는 모두가 포기했지만 그 구성원들이 ‘해낼 수 있다’ 또는 ‘하면 된다’는 상상을 공유함으로써 협력했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인류를 강하게 만든 유발 하라리 교수의 ‘상상의 공유’다.

대기업이나 중소기업이나 심지어 협동조합과 같은 생산자단체에서 조직의 방향을 설정하는 자리에 오르는 모든 CEO들이 조직 미래의 기틀과 발전 방향을 설정하려고 내세우는 것이 ‘변화와 혁신’이다. 그리고 “왜 그 자리에 안주하냐?”고 질책하거나 “왜 이렇게 하지 못하느냐?” 책망하거나, 단합을 위한답시고 몇 시간 또는 몇 일의 연석회의를 개최한다. 나름대로 ‘상상 공유’의 움직임이다. 특히 적자 사업장에 속한 직원들이거나 지지부진한 생산자단체의 직원이라면 더 많은 요구에 시달린다.

 

‘버림’의 미학 배우길

 

말과 질책과 책망으로 조직원 모두가 한 방향으로 나아가려는 상상이 자리 잡을 것이라는 것은 이루지 못할 ‘환상’이요 ‘신기루’다. 상상이 공유되려면 모든 사람들의 ‘신뢰’가 전제되지 않으면 안된다.

그 신뢰는 리더가 또는 CEO가 앞장서 행동으로 만들어가지 않으면 안된다. “봐, 이만큼 했더니 이렇게 조금이라도 나아갔잖아. 지금은 아니더라도 조금만 더 나아가면 세운 목표를 달성해갈 수 있잖아” 는 것이다.

CEO가 미래를 지향하지 못하고, 단지 주어진 권리와 권한이라는 단물만을 빨아대는 것은 ‘부도덕’이요 ‘죄악’이다. 조직 구성원들의 미래를 낭비하고, 심지어는 그들 가족의 생계까지 위태롭게 하기 때문이다.

모든 CEO들의 희망인 ‘상상의 공유’는 그 자신의 욕구를 버릴 때 비로소 가능성이 열린다는 점에서 아이러니하다. ‘버림으로서 얻는다’는 이 철학적 의미는 가진 게 많고 누릴 것이 많은 CEO로선 선택하기 어렵지만 그것이 그의 책무다. 임기에 연연하고, 그것도 부족해 ‘한 번 더’라는 욕심을 부릴 때 ‘상상의 공유’는 그만큼씩 물러간다는 사실을 모든 CEO들이 인지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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