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잘 보고 있어요. 별 일 없으시죠?”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낸 열혈 여성 낙농인이자, 나에겐 ‘에너지 바이러스 전파자’로 인식되고 있는 지인이 카톡으로 안부를 물어왔다. 가끔씩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등을 나누던 사이인지라 무척 반가워 잠시 카톡을 주고 받았다.

“어떠세요, 요즘은?”이란 질문에 “오돌오돌 떨면서 지내요”라고 했다. “요즘 추위가 많이 가셨는데…추위를 많이 타시나 봐요?” 그냥 던진 한 마디에 그는 “FMD 때문에 집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기 힘드네요”했다. 그는 나의 질문을 농담으로 받아들인 모양새지만 “아차!” 싶었다. 그리고 하루 종일 ‘자책’했다.

 

‘백신접종 소홀한 탓’

 

지난해 말부터 발생해 전국으로 확산된 AI로 3200여만 마리의, 국내에서 사상 유례없는 마리수가 땅에 묻혔다. 그리고 5일 충북 보은 젖소농가에서 그렇게 우려했던 FMD가 발생했다. 소에서 발생함으로써 청탁금지법으로 소비가 급랭하면서 몸살을 앓고 있던 한우농가와 젖소농가의 주름살도 한층 깊어졌다. 지난 2010년 말 재앙 수준을 경험했던 돼지농가는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방역당국의 대응책은 여느 때나 마찬가지다. 백신항체 형성률이 2016년 12월 기준 소 97.5%, 돼지는 75.7%이며, 그간 FMD 특별방역대책기간(2016년 10월~2017년 5월까지)을 통해 백신 항체 형성률이 높게 유지되고 있으니 확산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낮다고 평가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이유로 이번 보은 젖소농가에서의 발병은 ‘농장주가 백신 접종을 소홀히 한 탓’일 것이라 예단했다. 일단 책임을 농가에게 전가하자 언론은 ‘농가 죽이기’에 나섰다. “농가들이 우유 생산량 감소와 유·사산과 기형 송아지 출산, 돼지에서의 화농 등의 손실을 보지 않으려고 일부러 백신 접종을 하지 않는다”면서 먼저 보상금 문제부터 들고 나왔다.

살처분 보상제도가 농가들의 모럴 헤저드(도덕적 해이)를 조장해 방역 활동을 소홀하게 만든다는 지적이다. 선진국과 비교하면서 일본은 처분된 가축의 시세가 아니라 사육비용만 보상한다거나, 네덜란드는 정부와 농민이 공동기금을 마련한 ‘동물건강기금(Animal Health Fund)’에서 보상받는다는 식이다.

 

현장모르는 몰이해

 

그러나 일차적 책임을 농가에게 돌린다고 해서 방역당국의 책임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소를 사육하는 농가들의 일상을 ‘부도덕’으로 몰고 가는 것은 현장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몰이해다. 농가들이 사육하는 가축을 ‘돈’으로만 본다는 그 인식은 살을 맞대고, 체온을 나누며, 그 천진한 눈망울로 주인을 쳐다보는 축사에서 단 하루만 체험해도 알게 되는 것이 ‘생명의 소중함’이다.

그렇게 온기를 나누던 수십, 수백 마리의 소들이 눈 앞에서 죽임을 당하고 땅에 묻히는 광경을, 사진 속에서라도 한 번만 지켜보면 그것이 할 소린지, 나 자신이 대화에서 깨달은 것처럼 금방 깨닫게 된다. 해당 농가들이 인터넷에 올리는 글들을 보면 하나 같이 통곡이다. 가슴이 터질 듯한 슬픔이다. 젖소농가의 경우 평상시 어미소가 수송아지를 낳지 않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내다 팔아야 하기 때문에 그 아픔을 견디기 싫어서다. 하물며 눈 앞에서 죽여야 할 경우라면….

2010년 말 발생한 ‘FMD 재앙’으로 소·돼지 348만 마리가 살처분된 이후 2010년부터 모든 농가에서 백신접종이 의무화됐다. 그래서였을까? 지난해 말 농림축산검역본부는 “백신 항체 형성률이 과거보다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대규모 발생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고 장담했다.

사상 유례없는 AI와 FMD가 동시에 발생하는 상황을 맞았다. FMD의 경우 그토록 자신하던 항체 형성률도 발병농가에서는 19%, 심지어 5%까지 나왔다. 이것이 백신 접종을 하지 않았다는 증거일까? 높은 항체 형성률은 도대체 어떻게 나타난 것일까?

좀 더 깊이 방역당국의 발표를 따져보면 통계 자체가 전혀 믿을만한 것이 아니었다. 표본조사부터 항체 형성 인정까지 구멍이 숭숭 뚫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화자찬이었다. 축산농가의 부도덕이 아니라 방역당국의 관리 소홀이 먼저 지적당해야 하는 이유다.

 

소 울음 떠올려 보라

 

또 있다. 충북도는 지난달 농림축산검역본부의 ‘FMD 방역관리 평가’에서 광역시도 우수기관으로 선정됐다. 지난해 상반기 국민안전처가 실시한 FMD 대응실태 감찰에서도 모범사례로 뽑히기도 했다. 그리고도 발생했고, 발생하자 부도덕으로 몰고 간다. 도무지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지 혼란스러움을 벗어날 수가 없다. 들춰내 따지면 정부가 책임져야 할 일은 차고 넘친다. 그러니 정부의 대책도 믿기 어렵게 됐다.

2월 12일 FMD 방역상황 일일보고에는 현재 17개 농장의 1203마리(예방적 살처분 11농장 694마리 포함)가 살처분 됐다고 쓰여 있다. 수치상의 이야기다. 17개 농장주의 슬픔과 소·돼지를 사육하는 10여만 농가의 불안감은 그 안에 담겨 있지도 않다.

수치상의 행간을 읽을 수 있는 것은 관심과 애정이 담길 때 뿐이다. 생명을 수치로 가볍게 넘기지 않는 마음과 자세가 정말로 필요한 때다. 소의 울음소리를 한 번이라도 떠올려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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