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이 난다고 거짓말도 못하겠더라구요. 요즘은 의료기술이 발달돼 그 자리에서 내 몸에 열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이 되니 말입니다. 엄살이 들통 나자 타미플루 한 갑을 쥐어주고 작업 전 한 알을 먼저 먹으라고 합디다. 작업이 끝난 후에도 6일 동안 매일 먹으라고 당부합니다. 만일의 인체 감염을 우려해서였습니다.

6명이 비닐하우스 한 동에 사육되고 있는 산란계 종계 3000여 마리를 할당받고 살처분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일반 닭과 크기와 무게가 다르고, 원래 닭이 가만히 있지를 못하니 처음엔 어쩔줄 몰라 땀만 뻘뻘 흘렸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파렛트 등으로 종계들을 한 곳으로 몰았습니다.

 

인간들 벌 받아도 싸

 

그렇게 몰아넣고 검은 천을 씌우고 비닐을 2겹으로 다시 씌우고 한 쪽을 벌려 가스를 주입합니다. 그리고 밀봉을 하면 몇 초 지나지 않아 천 안에 있는 종계들은 난리가 납니다. 부리로 천을 찢고…살기 위한 발버둥이, 작은 미물이라고는 하지만 참으로 보고 있기가 민망합디다.“

최근 농협중앙회는 김병원 회장의 ‘악성가축질병 방제는 농협이 앞장서야 한다’는 강력한 지시로 중앙회 본부와 지역본부 그리고 시군지부가 지역 농·축협과 연계해 ‘살처분’ 작업에 동원됐다.

현장을 다녀온 축산경제 한 직원은 당시의 경험을 이야기 하면서 ‘히틀러의 유대인말살작전’ 아우슈비츠 유대인수용소 내 독가스실이 연상됐다고 한다. 또 그 안에서 시체처리를 담당하던 한 유대인이 독가스실에서 죽임을 당한 아들의 시신을 찾아 고이 묻어주려는 끔찍한 과정을 그린 영화 「사울의 아들」이 생각났다고 한다.

그는 살려고 바둥거리며 서로 부리로 천을 찢는 모습들을 보면서 왜 매년 이 같은 ‘도살’이 되풀이 돼야 하는 지 화가 난다면서 아마도 이런 아수라를 만드는 인간들은 벌을 받아도 싸다고 말을 맺었다.

정부의 초동방역 실패는 자명하다. 아무리 원인을 철새 그리고 쥐의 탓으로 돌린다고 해도 한 번도 아니고 기온만 떨어지면 발생하는 이 상황에서는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민생을 살핀다고 임대아파트 단지에서 ‘주차 갑질’로 구설수에 오른 황교안 대통령권한대행이 범국가적 차원의 컨트롤타워를 구성한 것도 늦었다.

하물며 “일주일 안에 AI 발생추세를 반드시 진정시켜라”고 AI점검회의에서 주문했다는 사실을 놓고 보면 무지(無知)도 이런 무지가 없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재빠르게 확산되는 바이러스를 시간을 두고 잡으라니, 아직도 우리 사회가 군의 통치로 지배되고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전형적인 탁상 행정

 

바로 그 다음날 천안의 한 오리농가로부터 ‘천안시청에서 가축전염병과 긴급방역요령(SOP)에도 없는 일을 실행하려고 한다’는 제보가 들어왔다. ‘일주일 내 AI를 끝내라’는 지시에 따라 시청직원과 경찰들이 농장을 방문해 무조건 예방적 살처분을 하라고 강제했다는 것이다.

유입을 방지하기 위해 24시간 차단방역과 소독을 실시하고 있는 가운데 7개 농장 밖에 없으니 아예 다 죽여 천안시의 청정화를 하자는 것이다. 무지의 결정이 현장에서는 무지막지하게 실행되고 있는 것이다. 양계·육계·토종닭·오리협회 등 가금생산자단체는 탁상행정을 비판하는 성명을 즉각적으로 발표했다.

그런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황교안 권한대행은 “24시간 내 살처분 완료 체계가 정립됐고, 선제적 방역활동 강화 등으로 AI 의심신고 건수가 하루 1~2건으로 줄어드는 등 확산추세가 거의 잡혀가고 있다”고 말했다. 과연 그럴까?

3일 현재까지 48일 동안 살처분된 가금류 마리수는 3000만 마리가 넘는다. 이는 국내 전체 가금류 사육마릿수 1억6000여만 마리의 20%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미 살처분될 만한 마릿수는 다 처분됐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기온이 본격적으로 내려가는 시기와 AI 발생원인으로 지적됐던 철새인 ‘가창오리’도 아직 다 온 것이 아니라고 덧붙인다.

게다가 살처분 현장에 동원된 작업자들은 성능이 좋지 않은 방역용품 때문에 AI 바이러스에 그대로 노출되고 있어 가장 두려운 인체 감염 우려까지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현장 상황 먼저 이해

 

정부는 타미플루에 의존하고 있지만 변형을 좋아하는 바이러스가 또 다시 변형되면 그때는 걷잡을 수 없는 사태로 발전할 수 있다.

정부가 내놓는 대책마다 미봉책 일색이다. 계란값 파동이 벌어지자 ‘수급안정화 방안’을 발표하면서 현실성도 없는 긴급할당관세를 시행하겠다고 한다. 계란과 계란가공품의 관세율을 0%로 낮춘다는 것이다. 6월까지 한시적으로 해보고, 차후 시장의 수급 동향을 감안해 연장하는 것을 검토하겠다고 한다. 그렇다면 검역과 위생조건도 무시되는 건가? 서두르다가 또 다른 질병이 전파될 위험성이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다. 가격은 적정하게 책정될까? 항공비를 포함한 운송비용도 책정되지 않은 상황이다.

무차별 살처분이라는 명목으로 계란 공급망이 깨지면서 가격이 천차만별이니 농가는 계란을 풀지 않고, 도매상은 창고만 있으면 계란을 쌓아놓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정부는 합동점검을 진행하고 있지만 별무효과다. 대책은 현실성이 있을 때 대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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