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한 사회’ 좋지만 농축산업은 뿌리째 흔들

 

부정청탁금지법(일명 김영란법, 이하 김영란법)이 시행된 지 100일(1월 5일)이 지났다. 김영란법은 우리 사회를 공정하고 깨끗하게 바꿀 것이라는 기대를 모았다. 실제로 최근 한국행정연구원이 일반인과 기업인, 공직자 등 356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85.1%가 시행에 찬성하고 82.5%는 부조리 관행·부패문제 개선에 도움이 된다고 답했다.

하지만 시행 이후 예견된 부작용은 현실화되고 있다. 소비심리 위축·경제 악영향과 함께 일부 업종이 타격을 받고, 그 파급효과가 소외계층까지 번지고 있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특히 농축수산업, 화훼업, 요식업 등 일부 업종의 타격은 심각한 수준이다. 이 같은 상황에 대해 법을 발의한 김영란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전 국민권익위원장) 역시 최근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늘 죄송한 마음이다. 이분들(농축수산업·화훼업·요식업 종사자)이 갑자기 받게 된 타격을 시간적으로 완충해줄 수 있는 대책을 정부가 모색해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영란법 시행 후 100일, 우리 사회에는 어떠한 변화가 있었는지 조명해 본다.

 

# ‘김영란법’ 누구를 위한 법인가?

김영란법은 우리 사회에서 정당하지 못한 청탁이나 뇌물 수수 등으로 부정이 저질러지는 것을 막자는 취지로 시행됐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법 자체에 대한 회의론도 발생하고 있다.

대통령까지 연루된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 법의 취지는 퇴색했고, 집행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탄식도 나온다.

국민들이 삼삼오오 모인 자리에서는 “대통령도 지키지 않는 김영란법을 우리가 왜 지켜야 하냐”는 불만 섞인 목소리가 심심찮게 들린다.

시행 100일이 지났지만 김영란법에 대한 논란과 혼란은 여전하다. 직무관련성을 국민권익위원회에서 조차 아직까지 명확한 개념을 정립하지 못하고 있다. 사회 통념상 용납될 수 있는 부분까지도 법 위반으로 처벌을 받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으며, 식사 3만원, 선물 5만원, 경조사비 10만원 이하라는 금액 상한 역시 현실과 괴리가 크다는 지적이 쏟아져 나온다. 당초 공직자들을 대상으로 했던 적용 대상도 사실상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모양새라 법 취지도 변질됐다는 비판이 거세다.

한국경제연구원은 김영란법 시행으로 예상되는 경제적 손실 규모가 연간 약 11조6000억원에 달할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김영란법 시행에 경기 침체 여파까지 더해져 음식점과 주점들도 종업원을 대폭 줄이고 있다. 지난달 4일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16년 10월 사업체 노동력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음식점·주점업 종사자는 93만879명으로 전년 10월(96만946명)보다 3만67명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2010년 10월에 전년 같은 기간보다 3만921명이 줄어든 이후 6년 만에 가장 큰 규모로 줄어든 것이다.

음식점·주점업 종사자는 2011년 이후 2014년까지 늘었다가 2015년 2만655명 가량 줄었는데 지난해 들어 감소폭을 키우는 양상이었다. 그러나 감소 폭이 지난해 10월 들어 급격히 커진 것은 지난해 9월 28일 시행된 김영란법 영향이 컸다는 분석이다.

식품접객원, 유통업, 농수축산화훼업 3개 업종 사업체 10곳 중 4곳 이상이 김영란법 시행 후 매출이 감소했다는 설문 결과도 나왔다.

한국행정연구원 경제인문사회연구회가 지난해 11월 9일~11일까지 이들 3개 업종 612명을 대상으로 김영란법 시행이 사업체 매출에 연관성이 있는지를 조사한 결과 ‘있다’는 응답은 43.6%였으며, ‘없다’는 응답이 56.4%로 조사됐다.

‘연관성이 있다’는 응답자를 상대로 매출 감소 폭을 물은 결과 ‘조금 감소했다’는 답변이 57.7%로 가장 많았으며 ‘크게 감소했다’는 답변이 35.6%로 감소했다는 응답이 93.3%에 달했다. 반면 매출이 증가했다는 답변은 3.7%에 불과했다.

특히 농수축산화훼업이 직격탄을 맞은 것으로 조사됐다. 김영란법 시행 이후 ‘허용금액 이상의 고가제품 매출이 감소했다’는 응답은 농수축산화훼업이 55%로 가장 높았고 식품접객업 39.3%, 유통업 28.2% 순이었다.

또한 중규모 사업체보다는 영세사업체에서 매출에 부정적인 영향이 높다는 응답률이 높았다. 5인 미만 사업장에서 김영란법의 영향을 받았다는 응답은 50~60%에 달한데 비해 30~99인 사업장에선 20%대 수준인 것으로 조사됐다.

전삼현 숭실대학교 법학과 교수(바른사회 사무총장)는 최근 한국경제연구원 칼럼을 통해 “공직자 등과 아무런 연고가 없는 일반인들은 김영란법으로 인해 의사결정권자와 소통할 수 있는 길이 사전에 차단된 것”이라면서 “혈연과 학연, 지연 등으로 광범위하게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는 기득권층에게는 더욱 견고한 유리천장을 만들어준 결과를 가져왔다”고 지적했다.

결국 기득권층의 부정·부패를 막을 목적으로 시행된 법이 역설적이게도 서민들의 삶을 고달프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 시행 후 축산업에 미친 여파는?

김영란법 시행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본 업종은 한우 산업이다. 한우소비가 위축됐고 그 여파는 한우 도매가격과 송아지 가격 하락으로 이어졌다.

축산물품질평가원의 자료를 분석해 보면 김영란법 시행 주였던 9월26일~30일까지 전국 평균 한우경락가격은 kg당 1만8518원이었다.

그러나 김영란법 시행 후 13주가 지난 12월26~30일까지 전국 평균한우경락가격은 평균 1만5609원으로 15.7%가 하락했다.

이와 함께 9월 6만4478두였던 등급판정두수도 11월 5만7115두로, 동기간 경락두수도 3만2854두에서 3만1521마리로 감소했다는 점은 한우고기 소비가 부진했다는 것을 반증한다.

농협 축산정보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한우 산지 가격(600㎏ 기준)은 암수 모두 552만2000원으로, 사상 최고가격을 찍은 지난해 7월 암소 599만6000원과 수소 571만5000원에 비해 각각 7.9%, 3.4% 떨어졌다.

지난해 11월 기준 생후 6∼7개월 된 송아지 가격도 암송아지 256만7000원, 수송아지 315만6000원으로 4개월 전 322만5000원과 401만8000원에 비해 각각 8.9%와 4.2% 가격이 내렸다. 농가들 사이에서는 송아지 입식을 자제하는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김영란법 시행 이후 음식점 소비가 20%가량 줄었고, 경기 침체에 따른 소비 둔화가 겹쳐 이 같은 하락세를 기록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반면 소비자 가격은 소폭 내리는 데 그쳤다. 축산유통종합정보센터가 집계한 지난해 12월 7일 한우 등심 1등급(1㎏) 평균 가격은 7만8313원으로, 전달 7만9469원보다 1.5%, 두 달 전 7만9803원에 비해 1.9% 내린 게 전부다.

이처럼 소고기 도·소매 가격의 연동성이 떨어지는 것은 복잡한 유통과정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양평에서 한우를 사육하는 심우석 씨(51)는 “농가들은 소고기 값이 오를 때는 조금 이익을 보고, 떨어질 때는 큰 손해를 본다”면서 “유통구조를 개선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축산물에 대해서는 김영란법 예외 적용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양평 우시장을 총괄하고 있는 양평축협 이희승 대리(53)는 “한우사육두수가 감소함에 따라 한우 큰 소나 송아지 가격이 상승세여야 하지만 김영란법 시행 등에 따른 한우소비 위축으로 그 반대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면서 “축산물에 있어서는 더 완화된 법 개정이 시급하다”고 전했다.

또 다른 농가는 “유예는 안 된다. 유예 효과는 미미할 것이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김영란법의 대상에서 축산물을 제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명절을 앞두고 일정 기간 선물 5만원의 제한을 받지 않도록 하는 한시 예외로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여론도 높아지고 있다.

축산단체 한 관계자는 “최소한 설이나 추석 연휴 등 대목에 농가들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대책이라도 정부에서 마련해 추진해야 한다”고 전했다.

부정청탁과 그와 관련한 금품수수 등 부정부패는 반드시 뿌리 뽑아야 할 우리 사회 최대의 적폐로 강력한 규제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 규제가 현실과 괴리가 있고 그로 인해 서민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너무 크다는 것이 곳곳에서 입증되고 있는 만큼 손봐야 할 여지는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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