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새 아침을 맞으면 지난 한 해를 돌아보고 새로운 마음으로 새 인생을 설계하면서, 부정보다는 긍정을, 절망보다는 희망을 노래하는 것이 평범한 사람들의 새해맞이다. 그래서 친지들이나 지인들에게 “새해 복 많이 받아라” 또는 “하는 일들 모두 잘되길 빈다”는 등 웃으며 덕담을 나눈다.

하지만 특히 올 정유년 새해, ‘붉은 닭의 해’에는 희망을 노래하고 싶지만 그렇게 할 수가 없다. 병신년 한 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국민 대다수가 심한 스트레스로 우울증과 울화병에 시달린 데다, 공교롭게도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의 전국 확산으로 가금산업이 핵폭탄을 맞았기 때문이다.

 

‘계란의 반란’ 목격

 

3000만 마리의 산란계와 오리가 땅에 묻혔고, 지금도 대기 중이다. 아무리 작은 미물이라지만 그 많은 닭과 오리를 땅에 묻는 살처분 작업에 참여한 사람들도 심각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PTSD)를 겪게 마련이다.

PTSD란 사람이 충격적인 사건을 경험한 후 발생할 수 있는 정신 신체 증상들로 이루어진 증후군으로, 사람이 전쟁, 고문, 자연재해, 사고 등의 심각한 사건을 경험한 후 그 사건에 공포감을 느끼고 사건 후에도 계속적인 재경험을 통해 고통을 느끼며 거기서 벗어나기 위해 에너지를 소비하게 되는 질환이다.

이것을 겪은 사람들은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어려워진다. 애지중지 키웠던 사육농가들의 심정이야 오죽할까. 전 재산을 땅에 묻고 그에 합당한 보상도 받지 못할 처지에선 무슨 말로 그 심정을 대신할까.

국방부가 AI 발생 초기 살처분 작업에 군 장병을 동원하게 해 달라는 요구를 거절한 것도, 굳이 변명하자면 이전 FMD 발생 시 살처분에 동원된 후 군 장병들이 영내에서 겪는 PTSD가 심각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번 AI 확산은 살처분 인력의 태부족도 한몫했다는 지적도 있다.

오리와 육계에서의 AI 피해와 달리 이번 AI는 오리·산란계를 중심으로 발생하면서 우리는 그동안 하찮게 여기던 ‘계란의 반란’을 목격하고 있다. 수십 년을 타 축종과 달리 크게 인상되지도 않은 채 그 가격 그대로를 유지해 온 덕분에 손쉽게 구입하면서 무시해 왔던 값싸고 저렴한 단백질 공급원이라는 고마움도 잊고 있었다.

마치 숨 쉬는 공기의 중요함을 잊고 있듯 하찮게 여겨 왔던 것이 사실이다. 대체제가 없는 상품의 값어치를, 언제 어디서든 싸게 구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평가 절하된 계란이 마침내 제목소리를 내고 있다고나 할까.

 

서민들 먼저 직격탄

 

계란 대란이 일어나자 가격이 단기간에 50%이상 폭등했다. 서민들부터 아우성이다. 계란을 주로 사용하는 계란빵·토스트의 포장마차 영세 상인들이 먼저 직격탄을 맞았다. 공급량이 줄고, 가격은 ‘금값’이니 채산이 맞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분식집도 마찬가지다. 서민들이 즐겨 찾는 김밥의 재료로도 줄었고, 라면에서도 계란을 빼야 할 판이다. 쫄면에는 계란 반쪽 대신 메추리알이 들어가고, 고깃집 체인점에서도 냉면에 메추리알을 한 개도 아니고 반으로 잘라 넣기 시작했다. 계란말이를 무한 제공하던 식당도 1회로 제한했다. 마트에선 1인당 계란 한 판으로 한정했다. 높은 가격을 감당하고라도 구입하고 싶어도 물량이 달리기 때문이다.

2차 제조업체들도 마찬가지다. SPC그룹이 운영하는 베이커리 전문점 파리바게뜨는 카스테라와 머핀, 롤케익 등 계란 재료가 많이 들어가는 19개 품목의 생산을 당분간 중단한다고 지난달 25일 밝혔다. AI 발생 후 제품 생산을 중단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인에게 닭과 계란은 값싸게 먹히는 단백질 공급원이자 핵심 식품원이다. 특히 국민 1인당 연간 289개를 먹는 계란은 식품 그 이상의 의미다. 공급물량의 급감은 빵과 과자, 가공식품 등의 가격인상으로 연결된다. 가뜩이나 경기침체로 장바구니가 엷어진 가계의 식료품 지출 비용이 증가하면 소비심리는 더욱 위축된다.

 

내놓는 대책 한숨만

 

가계 소비의 감소와 영세 자영업체들의 경영난은 내수를 위축시키고, 결과적으로 국가 경제의 침체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것이 끝이 아니다. AI가 끝난 후에도 입식 후 닭이 계란을 생산해 내려면 6개월 정도가 걸릴 것으로 예상하면 계란 가격은 더 뛸 것이라는 전망이다.

방역에 실패해 이 지경에 이르게 한 정부는 품귀 현상을 해소하겠다며 계란 가루와 액상란 등 계란 가공품 관세를 면제해 수입량을 늘리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현장의 반응은 싸늘하다. 품귀 현상을 겪는 품목은 신선란인데 가공품을 늘리겠다는 대책만 내놨다는 것이다.

게다가 AI 청정국가인 캐나다나 미국, 뉴질랜드 등에서 들여온다고 하는데, 미국을 제외하곤 모두 가격이 국내보다 높고, 미국산을 항공으로 수입하겠다는 것이 과연 실효성이 있느냐는 지적도 받고 있다.

그래서 정부 방침을 두고 현장의 전문가들이 “산란계나 식용계 병아리를 수입하는 것이 중장기 대책으로 맞는데 계란 자체를 수입하겠다는 것은 또 발등의 불만 꺼보겠다는 근시안적 방법”이라고 질타하는 것이다.

연초 희망을 이야기해야 하는 데, 지금 정부를 보면 도저히 희망을 이야기할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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