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날씨도 미쳤다. 온도차가 널뛰듯 한다. 현 정부의 입장에선 북쪽에서의 미친 듯이 추운 강추위가 한반도로 상륙해 각종 집회를 망쳤으면 싶겠지만, 열화가 치미는 국민들의 감정은 이제 추위도 두렵지 않다. 전국농민회 등에선 토요일 광화문 집회 참여를 위해 2000여대의 트렉터를 몰고 상경 중이란다. 농민이 화나면 반드시 그 정권은 무너지게 되어 있다. 역사가 일깨워준 자명한 교훈이다.

22일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도 여의도 국회의사당 근처에 1만5000여명의 축산농가와 생산자단체 관계자들이 모였다. 인파가 산업은행 측면을 돌아 수출입은행 정문 앞까지 길게 이어졌다. 그들이 차가운 돌 바닥에 앉은 이유는 간단하다.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농협법 개정안」 때문이다.

 

“무식하다” 무시한 격

 

지난 9월 농축산부는 “당초 5월에 발표했던 개정안 상당부분이 축산인들의 요구에 맞게 수정됐다”고 밝혔지만 그것은 ‘자기 기준’에서였을 뿐이다. 대부분의 축산인들이 “아니다”라는 데 본인들은 “그렇다”고 우긴다. 유체이탈 화법도 아니고…그렇다면 무식하다고 무시하는 짓이다.

중앙회장 선거방식도 그렇다. 투표가 과열돼 선거 후유증이 심각하다고 호선제를 하자고 하다가 기존의 대의원 간선제를 유지하겠단다. 그렇게 자신들의 소신이 올바르다면 그건 왜 원래대로 하는 건지 그 기준을 알 수가 없다. 차제에 민주주의에 입각한 직선제로의 전환이 옳다.

중앙회장을 간선제로 유지시켜놓고, “회장이 간선젠데 축산경제대표가 직선제가 왠 말이냐”고 둘러친다. “이게 지금 21세기 벌건 대낮에 무슨 귀신 씨 나락 까먹는 소리냐”는 소릴 들을만도 하다. 중앙회장 선거도 직선제로 하자는 요구가 빗발치는데 말이다. 밀실정치니 협잡이니 야합이 아주 일상화돼 있다.

축산특례 존치는 온전히 기존처럼 축협조합장에 의한 선출방식의 틀을 유지할 때 지켜지는 것이다. 전문 지식을 가진 외부인사가 포함된 인사추천위원회에서 대표를 선출하는 방식이 얼핏 보기에 객관성을 지니고 있는 듯 하지만 이는 결코 그렇지 않다.

협동조합 사업의 전문 지식을 가진 이는 ‘협동조합 맨’이다. 일반 기업의 CEO를 경험한 이가 협동조합 사업체에 영입돼 성공한 예가 거의 없는 것이 이를 입증한다. 때문에 농축산부의 안을 겉으로는 축산특례를 존중한다고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부정하고 있는 것이라고 반발하는 것이다.

 

전문가는 ‘협동조합 맨’

 

농협중앙회 내에서 축산경제 위치를 잘 모르는 사람은 묻는다. “인사추천위원회의 인사들이 축협조합장들의 대표조직인 축산발전협의회에서 추천하는 사람들로 구성되면 이전과 마찬가지 아니냐”고. 같은 논리대로 질문하면 “어차피 마찬가지인데 왜 외부인사를 영입해야 하느냐”고 말이다.

하지만 정작 축산인들이 축산특례 존치와 축산경제대표 직접 선출을 굳이 법으로 정해 달라고 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정관에서 정하는 ‘인사추천위원회’ 구성이 정부 또는 다수자의 의견에 따라 언제든지 쉽게 변경될 수 있기 때문이다.

“왜 그렇게 의심이 많냐고?” 여의도 총궐기대회의 찬 돌바닥에 앉은 많은 농가들은 그날, 16년 전 농축협 통합 당시의 여의도 고수부지에서 개최했던 ‘10만 축협인 총궐기대회’를 기억한다. 통합의 효율성을 강조하며 강제적으로 축협중앙회를 합병시키려는 정부의 방침에 맞서, 조직 수호를 외치던 그 때를 말이다.

2000년 7월 1일 통합농협이 출범한 이후 정부의 예상대로 통합의 시너지 효과가 발생했느냐 물으면 대다수가 고개를 흔든다. 구축협중앙회 직원들은 완전히 무장해제된 채 누구는 스스로, 누구는 보직을 받지 못하다 마지못해 떠나고, 남아 있는 직원들은 직제 개편으로 앉은 자리에서 직급을 강등 당했다.

운이 없어 동료들과 떨어져 농업 계통으로, 은행으로 이동된 직원 중 일부는 업무 스트레스와 집단 따돌림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부적’처럼 지켜줬던 것이 바로 축산특례 조항이었다. 축협조합장들이 직접 뽑은 대표가 있었기에, 축산특례 조항에 따라 축산경제 부문에서 그나마 자율성과 독립성 그리고 전문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때의 상처는 그대로

 

그렇게 조직이 재편성되는 동안 축산업의 축도 흔들렸다. 수입 축산물의 통제력도 잃었다. 영세한 축산농가들도 생업을 접었다. 3년여가 지나 국내 축산업이 경쟁력을 확보해 가면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것도 축산특례 조항이 있었기 때문이다. 생산자단체·축산학회들이 정부의 농협법 개정안 반대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통합에 대한 축산인들의 트라우마는 이렇게 생겼다. 축산업의 규모가 커져가는 데, 아직도 농업이라는 나무의 한 가지로 인식하는 20세기의 사고방식은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농협의 단면이다.

때문에 이사회의 결정으로 쉽게 변경이 가능한 경제지주의 정관은, 농협중앙회 내에서 축협조합장의 비중이 단 12%에 불과한 상태에선, 축산인들의 입장에선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통합의 상처가 다 아물지 않은 상태이고, 아직도 그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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