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약처 ‘규격’ 신설…내년부터 본격 시행

 

최근 양봉업계의 화두는 ‘사양벌꿀’이다.

식약처가 고시한 ‘식품의 기준 및 규격’에 사양벌꿀과 사양벌집꿀에 대한 식품유형 및 탄소동위원소비율 규격이 신설돼 내년 1월 1일 본격 시행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사양벌꿀은 우리나라 양봉환경에서 겨울철, 장마철 등 채밀기가 아닌 시기에 벌의 생존을 위해 일부 설탕을 먹여 키워 생산한 꿀을 말한다.

식약처는 소비자의 알 권리를 확보하고 선택의 폭을 넓히고자 사양벌꿀에 대한 식품유형과 함께 탄소동위원소비율 규격을 신설했다. 신설된 사양벌꿀과 사양벌집꿀의 탄소동위원소비율은 ‘-22.5‰(퍼밀) 초과 -15.0‰ 이하’가 기준이다.

식약처는 이에 따른 후속조치로 사양벌꿀 제품에 꿀벌이 설탕을 먹고 생산한 것임을 표시토록 하는 ‘식품등의 표시기준’ 일부개정안을 지난 4일 행정 예고했다.

이에 따라 내년부터는 사양벌꿀 제품 주 표시면에 12포인트 이상의 활자로 ‘이 제품은 꿀벌을 기르는 과정에서 꿀벌이 설탕을 먹고 저장해 생산한 사양벌꿀입니다’를 반드시 표시해야 한다.

그러나 이같은 사양벌꿀에 대한 식품유형 신설과 규격기준을 두고 양봉업계 사이에 찬반논란이 한창이다.

둔갑판매 등으로 잃은 벌꿀류에 대한 소비자 신뢰회복뿐 아니라 정보가 명확한 식품을 국민에게 제공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는 의견과 함께, 사양벌꿀이라는 새로운 규격이 만들어지면서 설탕으로 만든 꿀이 양성화돼 오히려 천연꿀시장이 축소 및 왜곡될 수 있다는 주장이 공존하고 있다.

 

#국내 사양벌꿀 시장은

국내 꿀시장은 크게 천연벌꿀과 사양벌꿀시장으로 대별된다.

천연벌꿀은 아카시, 밤꽃 등 자연 그대로의 꽃이나 수액 등에서 얻는 꿀을, 사양벌꿀은 꿀벌을 기르는 과정에서 꿀벌이 설탕을 먹고 저장해 생산한 꿀을 말한다.

미국과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아르헨티나, 베트남 등 주요 수출국의 경우 사계절 내내 꽃이 피는 등 밀원이 풍부하고 꿀벌의 밀도가 적어 사양벌꿀이란 유형이 없다.

반면, 우리나라는 꿀벌의 밀도가 높고 밀원의 종류와 시기도 5~6월에 편중돼있어 양봉산업에 녹록치 않은 것이 현실이다. 사계절이 존재하는 우리나라의 특수한 환경 탓에 꽃꿀 대신 설탕을 먹여 벌꿀을 생산하는 사양벌꿀산업이 생겨났다.

문제는 국내 꿀시장에서 값싼 사양벌꿀을 천연벌꿀로 표시해 둔갑해 판매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는 점이다.

도매가격 기준으로 아카시꿀의 경우 드럼당 약 300만원, 밤꿀의 경우 드럼당 약 240만원에 거래된다. 반면 사양벌꿀은 드럼당 약 70만원에 거래되다보니 사양벌꿀을 천연벌꿀인 것처럼 허위 과장광고해 판매하는 경우도 생겨났다.

이에 따라 소비자의 신뢰도가 저하됐고 양봉산업의 위축을 초래했다.

이같은 문제가 지속적으로 언론에 노출되자 관계당국은 지난 2009년 8월 ‘사양벌꿀 자율표시제’를 시행했다. 제품명의 활자크기를 22포인트 이상으로 하되 제품명과 동일한 크기로 주 표시면에 ‘사양벌꿀’임을 표시하고 그 정의 및 탄소동위원소비율을 표시토록 했다.

그러나 법적인 강제조치가 아니고 업체가 이행여부를 자율적으로 결정함에 따라 제도의 신뢰도가 저하돼왔던 것이 사실이다.

또한 소비자는 ‘사양벌꿀’의 정확한 의미를 알 수 없어 저가의 사양벌꿀과 고가의 천연벌꿀을 구분하기 어려워 식품선택에 제한을 받게 된다는 문제도 제기됐다.

이에따라 식약처는 소비자의 알권리 및 선택권 보장을 위해 자율표시가 아닌 사양벌꿀의 정의 표시 의무화가 필요하다고 판단, ‘식품의 기준 및 규격’에 사양벌꿀을 식품유형에 추가하고 규격기준을 신설해 제도권 안에서 관리한다는 방침이다.

식약처는 이를 통해 벌꿀류에 대한 소비자 신뢰도 상승으로 소비 증가 등의 효과가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또한 일각에선 FTA가 발효돼 값싼 수입꿀이 밀려들어올 경우 사양벌꿀이 가격경쟁력을 앞세워 국내 꿀시장을 보호하는 방패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사양벌꿀 식품유형 신설…역효과 우려도

그러나 이같은 사양벌꿀 및 사양벌집꿀이라는 식품유형 신설이 음지에 있던 사양벌꿀 시장을 오히려 양지로 끌어내는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사양벌꿀 생산기술이 발달해 마음만 먹으면 대량생산이 가능하다는 것. 또한 한 드럼을 생산하는데 15kg 설탕 25포 정도가 필요한데, 원가는 대략 30~40만원이라 드럼당 20~30만원의 이윤이 남아 오히려 사양벌꿀 시장이 더 확대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식약처가 신설한 사양벌꿀의 규격기준은 사양벌꿀농가가 맞출 수 없는 비현실적인 기준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식약처가 내놓은 사양벌꿀의 탄소동위원소비율은 ‘-22.5‰(퍼밀) 초과 -15.0‰ 이하’가 기준이다.

그러나 설탕을 먹여 생산한 사양벌꿀의 탄소동위원소비율은 ‘평균 -11‰(퍼밀)~-12‰’이기 때문에 식약처가 말한 -15‰(퍼밀)을 맞추기 위해선 천연벌꿀과 사양벌꿀을 1:3 비율로 섞어야 가능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이에따라 사탕무우(Beet sugar) 설탕으로 사양한 벌꿀을 천연벌꿀로 속여 팔 수 있는 개연성도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한 양봉 관계자는 “설탕은 사탕수수로 만든 설탕과 사탕무우로 만든 설탕 두 종류가 있는데, 이중 사탕무우로 만든 설탕을 벌에게 먹일 경우 -23.5‰(퍼밀) 이하의 탄소동위원소비율이 나온다”며 “이는 천연벌꿀과 동일한 값이기 때문에 사탕무우로 만든 설탕으로 생산한 사양벌꿀을 천연꿀로 속여 팔아도 구분할 방법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이에 관계부처는 사탕무우 설탕을 유통이력 관리대상 품목으로 지정한 바 있지만, 코드를 바꿔서 수입할 경우 걸러낼 수 없다”며 “이같은 허점을 노리고 사탕무우 설탕이 암암리에 유통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또 “현재 농축산부에서 벌꿀의 사탕무우 설탕 혼입여부 검출에 대한 연구가 진행중이지만 아직까진 탄소비만으론 천연꿀과 사탕무우 설탕을 먹인 벌꿀을 구분할 수 없다”며 “진위판별 기술이 개발될 때까지 ‘-22.5‰(퍼밀) 초과 -15.0‰ 이하’로 규정한 사양벌꿀의 탄소동위원소비율 규격고시를 연기해야 한다”고 덧붙여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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