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적법화’ 발표 후 현장에선 오히려 혼란
축산업은 2015년 총생산액 19조 1257억 원으로, 농업 총생산액인 46조 8909억 원의 40.8%의 비중을 기록했다. 생산액 5위권 내에는 1위 미곡을 제외하면 모두가 축산물(돼지·한우·우유·닭)이다. 축산업은 무시할 수 없는 규모로 커지며, 농촌을 지키는 버팀목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축산농가들은 2018년 3월 24일까지 무허가축사 적법화를 완료하지 않으면 한순간에 삶의 터전을 잃을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지난 5월부터 9월까지 무허가축사 보유 현황 파악을 위해 전국 축산농가에 대한 전수 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절반이 넘는 농가가 무허가축사 적법화가 필요한 것으로 확인됐다. 소·돼지·닭·오리 사육농가(11만 5212호)의 52.2%인 6만 190호가 무허가축사를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축종별로는 한우·젖소 농가가 대부분(87.2%, 5만 2469호) 무허가 축사를 보유하고 있는 반면, 닭·오리 농가는 7.6%(4563호), 한돈농가는 5.3%(3158호)가 무허가 축사를 보유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지역별로는 경북이 무허가축사 적법화 대상농가가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무허가축사를 보유한 6만 190호 중 △경북은 1만 4924호(24.8%) △전남 7929호(13.2%) △경기 6997호(11.6%) △충북 6342호(10.5%) △충남 6008호(10.1%) △경남 5558호(9.2%) △강원 5794호(9.6%) △전북 4041호(6.7%) △광역시 및 특별자치도 2597호(4.3%) 순으로 조사됐다.
# 혼란스런 내용들
농축산부는 이 같은 자료를 바탕으로 지난 10월 18일 무허가축사 적법화를 규모별로 2024년까지 3단계로 구분해 연차적으로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1단계 적법화 대상농가는 2만 384호로 사육규모 별로는 △소 500㎡ 이상(71마리) △돼지 600㎡ 이상(760마리) △닭·오리 1000㎡ 이상(2만마리)이다. 2018년 3월 24일까지 적법화를 완료해야 한다.
2단계는 △소 400이상(57마리)~500㎡까지(71마리) △돼지 400(506마리)~600㎡까지(760마리) △닭·오리는 600(1만 2000마리)~1000㎡(2만 마리)까지로 2019년 3월 24일까지 적법화를 완료하면 된다. 완료대상 농가수는 4312호다.
3단계는 △소·돼지 400㎡ 미만(57마리/506마리) △닭·오리 600㎡ 미만(1만 2000마리) 등 소규모 농가로, 2024년 3월 24일까지 적법화를 완료하면 된다. 완료대상이 3만 5494호에 이른다.
농축산부는 발표 이후 “오히려 축산현장에 혼란을 가중 시킨 것은 물론 적법화 사기를 떨어뜨렸다”는 비판을 받았다. 생산자단체에는 “적법화 기간이 연장된 것이냐”는 질문이 쇄도했다.
한우 등 일부 축종을 제외하면 대부분 무허가축사는 1단계인 2018년 3월 24일까지 적법화를 마쳐야 한다. 3단계 대책까지 갈 농가는 찾기 힘들다.
특히 유념해야 할 사항은 적법화를 위해 시행되는 가축사육제한거리 지방조례 비적용, 이행강제금 감면 규정이 2018년 3월 24일 종료된다는 사실이다. 3단계에 해당하는 소규모 농가도 2018년 3월까지 적법화를 이행하지 못하면 이행강제금 감면 등의 해택을 볼 수 없다는 뜻이다.
# 천지가 걸림돌
무허가축사 적법화는 필요한 일이지만 이를 현실화 하는 데는 곳곳에 걸림돌이 산재해 있다. 현재 규정 위반에 따른 이행강제금과 적법화를 위한 각종 비용 부담, 까다로운 행정절차 등이 문제가 되고 있다.
적법화 인허가 절차를 살펴보면 ‘불법건축물 현황 측량→불법건축물 자신 신고→이행강제금 부과납부→가설건축물 축조 신고 →건축신고 또는 허가 →가축분뇨처리 시설 설치신고 →축산업허가(등록) 변경신고(허가)’ 순이다.
농가는 불법 건축물 현황 측량 후 건축사의 컨설팅을 받아 건축물, 가축방역시설, 가축분뇨처리시설 배치도와 평면도를 교부받고 자진신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이후 이행강제금 부과 등 행정절차를 거쳐 가축분뇨처리부서와 협의 한다. 가축사육시설 면적 변경이 있을 때는 농업기술센터에 축산업허가 변경 절차를 거치면 적법화가 완료된다.
이런 과정을 농가 홀로 진행하기는 절차도 복잡하고 갖춰야 할 서류로 많다. 또 측량 수수료, 설계비, 감리비, 이행강제금, 허가신고 수수료 등도 농가에 큰 부담이 된다. 일부 영세 농가는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워 축산업 자체 포기를 고려하기도 한다. 2018년이 되기 전까지 가축을 사육하고 이후에는 폐업수순을 밟겠다는 농가들도 나온다.
소방법과 주민동의서도 적법화의 발목을 잡는다. 적법화를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지자체의 인·허가 있어야 한다. 소방법은 소방시설 설치와 유지 및 안전관리가 지역마다 달라 농가에 혼란을 준다. 주민동의서는 현장에서 농가가 부딪히는 적법화의 가장 큰 걸림돌이다. 인·허가를 위해 주민동의서를 받아야 하는 법적 근거는 없지만, 일부 시·군은 주민동의서를 반드시 첨부토록 하고 있다. 이는 농가의 의지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 지자체 모범 사례
무엇보다 적법화가 원활하게 이뤄지기 위해서는 지자체의 적극적인 협조가 절실하다. 적법화 권한을 가진 기초지방자치단체가 과도한 규제를 내세운다면, 축산인들은 범법자가 될 수밖에 없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적법화에 대해 지자체들의 관심이 하나둘 생겨나고 있다는 것이다. 지자체별 건축·환경·축산부서로 이뤄진 무허가축사 적법화 추진반(팀)을 구성·운영해 관련 업무를 일괄처리 하는 모범적인 사례들이 생겨나고 있다.
대표적으로 경북 구미시의 경우 적법화 추진 협의회(지자체, 축산단체, 건축사협회)를 구성하고 읍면동사무소에서 적법화 신청서를 일괄접수 받고 있다. 건축사 협회에서 건축물대장 등 관련 서류 검토 후 적법화 가능 및 불가능 농가를 구분한다. 측량단계 종료 후 건축사협회는 회원들에게 축사를 배정해 적법화를 실시하고 있다.
경북 영천시는 1일 다섯 농가씩 사전 상담을 통해 적법화 가능 여부를 판단한다. 사전상담 결과 적법화 가능 판정을 받은 농가를 대상으로 설계 사무사, 건축사를 소집해 설명회를 갖는다.
인천시 강화군은 적법화를 원스톱서비스로 지원하고 있다. 강원도 춘천시는 3개부서 합동 일괄처리를 위한 T/F를 구성했다. 경남 창녕군은 추진반 및 적법화 협의체를 구성해 운영 중이다.
무허가 축사 적법화를 위한 지자체 조례 개정도 이뤄졌다. 올해 충남 아산시와 천안시는 건축조례 내 대지안의 공지 기준을 완화해 건축선 및 대지 경계선의 벌어진 거리를 완화 했다.
경기도 고양시와 전북 정읍시는 이행강제금 경감을 위한 조례를 개정했다. 위반내용에 따른 비율(100분의 70~100분의 100)을 100분의 60으로 완화했다. 경북 영주시는 위반 내용별로 이행강제금 부과기준을 10% 추가 경감을 위한 조례를 개정했다.(100분의 60~100분의 90)
농축산부는 관계부처 및 생산자 단체 등이 참여하는 중앙부처 T/F를 구성해 2016년 9월부터 2018년 3월까지 운영한다. 중앙부처 T/F는 농축산부 축산정책과장이 팀장으로 팀원은 농축산부, 국토부, 환경부 등 중앙부처 담당자와 지방자치단체(경기, 충남, 전북), 축산관련생산자단체 등 15명 내외 분야별 전문가로 구성한다. 개최는 매월 1회가 원칙이지만 필요시에는 수시로 개최한다.
보유 자금이 넉넉하면 당장이라도 현대화시설을 갖추겠지만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때문에 일부에서는 유예기간을 2019년 3월까지로 1년 더 연장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지만 불가능한 상황이다.
또 적법화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부담 완화 정책의 필요성도 강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를 위해 농가들이 뭉쳐서 적법화를 함께 추진할 경우 비용이나 노동력 절감 면에서 매우 바람직하다고 말한다.
축산농가들이 무허가축사 적법화 과정에서 불이익을 받거나 업무가 지연되지 않도록 하는 정부의 정책적 배려가 요구된다. 실효성 있는 대책을 통해 보다 많은 농가들의 적법화가 가능하도록 지원해야 한다. 2018년 3월 24일이 코앞에 다가왔다. 축산농가도 “그때까진 어떻게 되겠지”라는 안일한 생각 보다는 적법화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