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초 일본 프롤레타리아 문학운동의 대표적 작가로 알려진 고바야시 타키지(小林多喜二)가 1929년 출간한 「게 가공선(蟹工船)」은 1937년 중일전쟁부터 1945년 패전까지 소지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검거 대상이었다.

한국전쟁 특수에 힘입어 고도성장에 취한 일본 사회는 그를 잊었고, 그의 책은 들고 다니거나 언급하기에 부끄러운, 촌스러운 시대의 유물로 여겨졌다. 그러던 그의 「게 가공선(蟹工船)」이 2008년 재출간됐을 때, 젊은이들로부터 선풍적인 인기를 얻으며 한 해에만 50만 부가 팔리는 기록을 세웠고 지금까지도 ‘스터디 셀러’에 이름이 올라있다.

 

현실이 바로 ‘지옥도’

 

1868년 메이지 유신 이후 겉으로 보기엔 1894년 청일전쟁, 1904년 러일전쟁 등 두 번의 국제적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거침없이 제국주의의 길을 내달리던 일본은, 내부에서는 이에 반발하는 사회적 혼란을 겪었다. 진보적·민주적 문학이 싹 터왔는데 물론 형식은 공산주의였다. 그로부터 80년의 시간이 흘러 현대의 일본에서 특히 젊은층들에게 왜 「게 가공선(蟹工船)」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가?

그것은 「게 가공선(蟹工船)」의 첫 페이지를 열면 바로 알 수 있다. 첫 문장이 “어이, 지옥으로 가는 거야!”로 시작된다. 이 소설은 하코다테(凶館) 기지에서 소련의 캄차카 영해까지 출어해 ‘게’를 잡는 고물선 하쿠아이마루(博愛丸)에서 실제 일어났던 가혹한 선상 생활과 이를 못 이겨 어부들과 선원, 잡부들이 일으킨 두 번의 선상반란을 소재로 했다.

한 번은 구축함의 해병들에 의해 진압되면서 ‘우리들 편 인줄 알았던 국가의 집행기관이 완전히 선주의 편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좌절하고도, 그 한 번의 행동으로 시작된 자각은 다시 한 번의 반란을 일으키는 것으로 끝난다. 후기에는 회사의 수익만을 위해 행동한 감독과 선장이 육지에 도착한 후 회사로부터 가차 없이 내쳐졌고, 어부들은 경찰서를 나오면서 선상에서의 경험을 간직한 채 다른 공사 현장으로 뿔뿔히 흩어진다.

2008년 이후 젊은이들이 이 소설에 열광하는 것은 당시의 현실이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사실 때문이다. 10장으로 구성된 소설의 3장에는 토쿄의 학생 출신의 넋두리가 나온다. “학생은 열일고여덟명이 와 있었다. 60엔을 가불해서 기찻삯, 숙박비, 담요, 이불, 그리고 소개비를 물고 나니 배에 도착했을 때는 한 사람당 7~8엔의 빚을 지고 있었다”는.

 

노력해도 빚만 늘어

 

시급 몇천 원의 파트타임을 뛰면서 온종일 일해도 집세와 광열비, 식비 등을 감당하지 못하고, 불황의 한 가운데에서 ‘우리도 홈리스가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가까스로 취업을 해도 느닷없이 ‘나가라’는 해고 통지. 어쩌면 지금 젊은이들이 처한 현실과 그렇게 똑같은가. 현실이 바로 ‘게 가공선’이라는 말이다.

일본의 젊은층이나 지금 대한민국의 현실은 별반 다르지 않다. 우리나라 헌법 제119조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소수에게 부가 집중되지 않게 하며 중산층을 늘리고 빈곤층을 위한 보호막을 마련하고 빈부격차를 좁혀 평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는 ‘국가’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그러한 국가는 재벌과 유착해 빈곤의 원인을 개인의 능력 부족이나 게으름으로 믿게 만들어 뒤틀린 구조를 은폐하고 불평등을 당연한 것처럼 여기게 됐다. 농민 시위에 가담했다가 강화유리마저 ‘부셔’버리는 물대포에 맞아 숨진 이의 사망원인을 은폐하기 위해 주검을 다시 부검하겠다는 공권력은, 도대체 누구로부터 위임받은 것인지 본말이 전도된 세상이다.

대통령은 정부 관료들이나 공무원을 믿지 않아 비선 실세를 만들고, 전문성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강남 아줌마’에게 사사건건 지시를 받고, 그녀는 빨간펜 첨삭 지도하듯 국정의 방향을 펜대 하나로 지우고 첨가하고, 호가호위하려는 공무원들은 썩은 음식물찌꺼기에 파리 끼듯 청탁의 줄을 섰다니 이러고도 온전한 나라인가. 그러니 ‘대통령은 자신의 입에서 나오는 말의 의미가 뭔지도 모른다’는 말들이 나올 수밖에.

 

좌절만 해선 안된다

 

하지만 국민으로서 더욱 비참한 것은 공명정대하게 법을 집행해야 하는 검찰은 그 많은 의혹 앞에서도 꿈쩍하지 않고 ‘의혹’만으로는 수사할 수 없다는 태도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일부 언론에서 줄기차게 문제를 제기하고 하나하나 파헤쳐 나가면서 일반 국민들의 관심이 뜨거워지자 그제서야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정보들을 마지못해 풀어놓는다.

25일 박근혜 대통령이 “좀 더 꼼꼼하게 챙겨보자고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고 최순실 비선 실세 위법 행위를 인정하고 대국민 사과를 하자,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는 “자신도 연설문 등을 작성할 땐 많은 사람들에게 자문을 구한다”고 추임새를 넣는다. 아직 사안의 중요성이 뭔질 모른다. 이게 당 대표의 수준이다.

국민은 ‘탄핵’을 이야기 하는데 야당은 무엇이 무서운지 조심스럽다. 박 대통령 곁에 빌붙어 장관을 하고 차관을 하며 온갖 부정을 저지르는 이들은 아직도 부끄러운 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조롱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경기는 바닥을 치고, 북한은 위협하고, 국제 정세는 요동치고 있다. 서둘러 뭔가를 결정하지 않으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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