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토종벌의 씨가 마르게 생겼다. 2010년 전국 98%의 토종벌을 궤멸시키며 ‘토종벌의 에이즈’로 불리운 낭충봉아부패병이 지난 여름 다시 창궐한 데다, 꿀벌의 천적 해충인 ‘작은벌집딱정벌레’마저 출현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지금 양봉농가들은 아우성이다.

낭충봉아부패병은 서양벌의 경우엔 바이러스에 감염되더라도 증상이 발현되지 않아 크게 문제되지 않지만 토종벌이 감염될 경우 치명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09년 38만여 통에 달하던 토종벌의 98% 이상이 이 질병으로 폐사했다.

 

대책 마련은 했지만

 

농림축산식품부가 양봉산업을 녹색성장 생명산업으로 육성한다며 생산자단체·농협·농촌진흥청·산림청 등으로 구성된 대책반을 구성하고 「양봉산업 육성 종합대책」을 마련한 것도 이 시기였다.

양봉농가의 경영안정을 위해 경영안정자금 상환기간을 1년 간 연장하고, 농축산경영자금 240억원을 신규로 지원했고, 관련 기관별로 역할을 분담하고 상호 협조체계를 구축해 양봉산업을 회생시킨다는 목적으로 마련된 종합대책은, 이후 농가의 노력이 더해져 3만여 통까지 복원됐다. 그러나 지난 여름 다시 확산되면서 9월 현재 1만여 통으로 줄어든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난달 경남도 밀양시에서 서양벌에게도 치명적인 천적 해충 ‘작은벌집딱정벌레’까지 대거 출현했다는 점이다. 8월 말부터 보이기 시작한 이 벌레는 추석 전후로 늘어나기 시작해 이후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는 실정이다.

남아프리카가 원산지인 이 ‘작은벌집딱정벌레’는 1998년 미국 플로리다 주에서 처음 발견된 외래 해충이다. 이 딱정벌레의 애벌레는 벌집에 저장된 꿀과 화분, 꿀벌의 알과 유충을 먹고 자란다. 다 자란 애벌레는 땅속에 들어가 번데기를 거친 후 성충이 돼 날아가 다른 벌통에 침입한다.

천적임에도 불구하고 희한하게 꿀벌은 이 딱정벌레에 대한 적대감이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오히려 굶은 딱정벌레에겐 직접 꿀을 먹여줄 정도로 친화적이란다. 딱정벌레 수가 증가하면 벌집이 파손되고 꿀이 변질된다.

감염이 심각해 벌집이 회복하기 어려운 상태가 되면 여왕벌이 벌집을 포기하고 이탈해 양봉농가는 심각한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뚜렷한 치료법 없어

 

더 심각한 문제는 아직까지 낭충봉아부패병이나 작은벌집딱정벌레에 대한 뚜렷한 방제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때문에 농업기술센터에서조차 작은벌집딱정벌레에 대처하는 방식으로 △70% 희석 알코올 분사 △화염살균, 토양 소독 등 방역 조치를 권하고, 1차 방역 작업을 마치면 읍·면·동 주민센터나 방역기관에 서둘러 신고해야 한다고 권할 뿐이다.

그나마 낭충봉아부패병은 가축전염병으로 지정돼 가축전염병예방법의 관리를 받기는 하지만 둘 다 예방책이나 치료법이 없는 상황인 것은 마찬가지다. 벌통을 소각하는 방법이 유일하지만 보상대책이 마련되어 있지 않아 농가의 신속한 대처를 기대하기도 힘들다. 이에 대해 정부 당국은 “딱정벌레의 경우 가축전염병예방법의 관리대상이 아닌데다 벌통이 사유재산이라 소각을 강제할 수 있는 법적 요건이 없고, 피해보상을 해줄 근거도 없다”는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는 상황이다. 경제적 손실이 더 커지기 전에 스스로 소각하라는 뜻이다.

아무런 보상도 조건도 없이 50~60만원 상당의 벌통을 소각하는 것은 농가의 입장에선 손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한봉협회 충북도지회와 100여 토종벌 사육농가는 지난달 20일 충북 충주시 신니면 일원에서 낭충봉아부패병에 감염된 벌집과 벌통 800여개를 소각하고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했다.

2010년에 수립한 5개년의 「양봉산업 육성 종합대책」의 골자인 ‘감염원 제거 방역대책과 2015년까지 복원하기로 했던 31만7000군의 토종벌 복원 약속’을 이행해 달라는 것이다. 여기에 국내에서 가축전염병으로 지정한 2종 전염병인 ‘낭충봉아부패병’과 3종 전염병인 ‘부저병’ 외에 꿀벌응애·작은벌집딱정벌레 등 6개의 질병도 포함해 적극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공익가치는 수십 배

 

농림축산식품부의 통계에 따르면 2015년 국내양봉산업의 규모는 3567억원이다. 소·돼지·우유·닭·오리 등과 비교하면 규모면에서는 아주 미미하다. 때문에 양봉산업은 크게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공익적 가치를 따지면 어떤 축종보다 단연 앞선다.

농협경제연구소의 자료에 따르면 양봉산업이 농업에 기여하는 가치는 2010년 기준으로 총 6조7021억원으로 추정했다. 벌꿀 생산액의 수십 배다. 그러나 손에 잡히는 규모만으로 평가절하 되면서 관심 밖으로 밀려난 것이 사실이다.

상대성 이론으로 유명한 알버트 아인슈타인 “벌이 사라지면 인류는 4년 이상 살 수 없다”고 말했다지만, 곤충 등에 관심이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는 상황에서 그도 누군가의 말을 인용한 것으로 판단되지만, 곤충학자의 말을 빌리면 그 말은 정확하다고 한다.

벌이 사라지면 농작물의 수정이 불가능해지고, 열매와 씨앗을 먹고사는 새 종류나 동물들이 사라지면서 먹이사슬의 원칙에 의해 인류도 식량 고갈로 멸망하는 것이다. 이 섬뜩한 경고를 우리는 잊고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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