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당초 국민권익위원회의 안대로 9월 28일부터 시행된다. 기획재정부는 지난달 29일 ‘2016년 하반기부터 이렇게 달라집니다’ 책자를 발간했다. 그 내용 중 일명 ‘김영란법’을 보면 수차례의 공청회 등을 통해 농축수산업계가 간절히 요구한 어떤 항목도 첨가되지도 수정되지도 않았다.

이에 따라 9월 28일 이후부터 공직자 등은 직무 관련 여부와 명목에 상관없이 같은 사람으로부터 1회 100만원, 매 회기연도 300만원을 넘는 금품 등을 받게 되면 형사처벌을 받는다. 또 시행령을 통해 사회 상규상 허용되는 금품 상한선도 식사대접은 3만원, 선물은 5만원, 경조사비는 10만원으로 한정된다.

 

“이사람들 장난하나”

 

적용 대상은 국가·지방공무원, 공직 유관단체·공공기관의 장과 임직원, 학교장과 교직원, 학교법인 임직원, 언론사 대표와 임직원 등이다. 농축수산업계의 그 어떤 요구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동안의 공청회는 왜 필요했던 걸까?

화가 난 농가나 업계의 관계자가 지금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은 “이 사람들이 정말 장난하나?”다. 전날인 28일까지만 해도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우리 경제성장률을 제약하는 요인 중 하나로 ‘부정청탁금지법(김영란법)’을 지적했다. 이 법이 시행되면 연간 11조6000억원의 경제적 손실이 예상되고 이는 국내 GDP의 0.1%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그런데 그것이 어쨌단 말인가?

한우농가 등 특정 업종에 대해 영향이 매우 커 피해업종에 대해서는 정부가 서민대책 차원에서 따져봐야 한다면서 고민 중이라고 했다. 도대체 뭘 고민했다는 말인지 이해가 되질 않는다. 그 다음날 발간된 ‘2016년 하반기부터 이렇게 달라집니다’ 의 책자는 시간 상으로 볼 때 유 장관이 고민 중이라고 하던 그 때 이미 제본이 끝난 시점이다. 결론은 이미 내놓고 고민하는 척(?)하는 건 기만이다.

정부의 경제전망을 총괄하는 기재부의 한 과장도 김영란법으로 경제성장률에 어느 정도 하방 영향이 있을 것으로 봤다며 영향이 광범위하게 나타날 것이고 4분기부터 나타날 것이라고 했다. 문제점은 보이는데 뭘 어떻게 하겠다고 뒤따르는 말이 없다.

가장 큰 타격을 받게 될 농축수산업을 대변해야 할 농림축산식품부의 행태를 보면 더 가관이 아니다. 27일 20대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이동필 농축산부 장관은 “김영란법 시행으로 선물용 농축수산물 판매 손실액이 연간 8000억~9000억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면서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법 개정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책임이 뭔지도 몰라

 

이를 위해 농축산부는 22일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에서 정한 수수금지 대상 품목 중 농축수산물은 제외해 달라는 업계 입장을 반영한 의견서를 국민권익위원회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그동안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던 농축산부가 “법 시행으로 인한 국산 농축수산물 수요 감소 등 부작용을 최소화하려면 농축수산물을 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할 필요가 있고, 다만 현실적으로 제외하기 어려울 경우 산업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금액기준 상향, 대상 차등 적용 및 시행시기 조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 자체가 뒷북치기의 전형이다.

권익위의 원안대로 시행될 경우 농축수산업의 피해가 어느 정도인지, 김영란법의 파괴력이 어떤 수준인지를 농가와 생산자단체들이 스스로 조사하고 분석하는 것 자체도 아이러니하지만 의견서 제출도 업계의 입장을 반영해서였다고 미리 꼬리를 내리는 것은, 농축산부가 대한민국 농축수산업의 미래를 설계하고 지도·관리·감독하는 담당 행정부서의 책임이 뭔지를 모르는 처사다.

국민권익위원회는 29일 최종 결정안을 내리겠다고 이미 언급한 바 있는데, 일주일을 남겨둔 시점에서 부랴부랴 의견서를 제출한 것은 그러한 과정조차 거치지 않으면 그 후에 몰아닥칠 비난을 감당하기 어려웠던 것은 아닐까. 아니면 자신들도 이렇게 노력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겠지만 다 속이 환히 보이는 짓이다.

 

‘의원 포함’으로 대체

 

28일엔 새누리당의 한 국회의원은 ‘김영란법에서 농축수산물을 제외하는 법률안 대표 발의’를 했다. 김영란법의 목적이 공직자의 공정한 직무수행을 보장하고, 공공기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제정됐지만 입법예고된 시행령을 놓고 본래 취지보다는 애꿎은 농어민들만 곤경에 빠뜨릴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정말 농축수산인들의 고충이 뭔지 모르는 말씀이다. 게다가 국민들의 요구조차 이해하질 못한다. 애초 이 법을 누더기로 만들고 향후 어떤 효과와 반향이 일어날지 계산도 하지 않은 채 서둘러 만든 장본인이 국회의원들이다. 국민의 불신은 공무원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정작 농축수산업계의 아픔을 공유한다면 의원으로서 할 일은 간단하다. 농축수산물을 제외하는 대신 국회의원들 스스로 자신들도 포함시키는 일이야말로 국민들도 환영할만한 대안이다. 명절 때마다 산더미로 쌓인 선물을 국민들은 다 알고 있다. 정작 김영란법이 필요한 것은 의원들 자신이기에 그렇다. 20대 국회 제1호 법안이라고 자랑할 거리가 못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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