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촌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6남매 중 막내인 나에겐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주어진 중요한 일이 있었습니다. 들에 나가 풀이며, 건초를 베다가 소에게 먹이로 주는 일이었습니다. 어떤 때는 힘에 부치기도 했지만 직접 소코뚜레에 연결된 끈을 잡고 나가기도 했습니다.

몇 마지기 되지도 않는 땅을 개간할 때나 씨를 뿌리기 위해 논을 갈 때도 그 누렁소는 힘차게 앞으로 나아가며 아버지의 어깨를 가볍게 해주는 정말 듬직한 가족이었습니다. 우리에서 풀을 주면 그 순한 눈망울로 나를 반기면서 긴 혀로 받아 우물거리는 그 모습에서 난 언제나 평화로움을 찾았습니다.

 

추억 되살리는 ‘무엇’

 

하지만 언제나 그 친구는 주어진 생을 다 살아본 적이 없었습니다. 어느날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우리로 뛰어갔더니 송아지들만이 우리에서 서성이고…그 녀석을 찾으러 논으로 뛰어 갔더니 비탈진 논둑에서 거나하게 취한 아버지만 담배를 피우고 계셨습니다. 무슨 일인지 대뜸 알아챈 나의 투정을 아버지는 쓴 웃음으로만 대했습니다. 아버지의 마음도 아프긴 마찬가지였을 테니까요.

정말 아낌없이 모든 것을 주고 가는 녀석이었습니다. 형님의 대학 등록금으로, 누님의 병원비로, 또 나의 대학등록금으로, 그렇게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우리 가족의 행복을 지켜주었으니, 한우라고 하면 전기에라도 감전된 듯 언제나 가슴 한 편이 찌릿해집니다. 한우가 우리 민족의 애환과 함께 한다는 것은 아마도 그래서 일 것입니다.”

그는 한우를 키우는 농가도 아니고, 어린 시절엔 농촌에서 살았지만 오래전 모든 가족들이 대도시로 이전해 농촌과는 전혀 다른 생활을 하고 있는 도시의 셀러리맨이다. 어쩌다 한 번 식당에서 한우고기를 먹을 때면 아직도 그 때의 아련함이 느껴진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그러한 감상은 자신만이 아니고, 대한민국 사람이면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한 과거의 추억으로 이끌리는 먹거리 이상의 ‘그 무엇’이라고 덧붙인다.

한우고기의 값이 비싸 태우기가 아까워 조금씩 불 위에 얹어 놓고, 우리가 한 점씩 집으면서 이야기 꽃을 피웠던 것은 모두가 어렵게 살아온 시절과 얽혀진 것들에 관한 일들이었다. 그래서 그는 한우고기를 먹는 행위가 시절을 되돌아 음미하는 일종의 ‘의식’같은 것이라고 했다.

그는 한우가 한민족과 함께 해온 ‘씨’의 종주국이라거나, 세계 유일의 유전형질이기에 다른 나라에서 모방할 수 없다거나, 올레인산이 월등히 많아 한우만의 고유한 풍미가 있다거나, 불포화지방산이 외국산 소고기보다 약 50% 높고 포화지방산이 낮다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고 했다.

 

왜곡·확대 보도 자제

 

한 달에 한 번 월급날이거나, 집안의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면 아버지가 사 오신 신문지로 말려 있는 한두 근의 한우고기에 무를 왕창 넣어 밥을 말아먹던 그 맛은 외국산 소고기로는 도저히 낼 수 없는 추억과 맛이 섞인 것이라고 했다. 그것만으로도 비싸다고 인식되는 한우고기 가격은 비싼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일소이면서 농촌 가정의 비상금 역할을 해 오던 한우가, 하나의 산업으로 자리잡아오면서 일종의 ‘돈벌이’로 전락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농가들은 아직도 빗질해 주고, 닦아주고, 서로 살갑게 마주한다.

일부 언론에서 보도하는 것처럼 대다수의 한우농가들은 소의 근육 내 마블링을 늘리기 위해 억지로 가둬놓고, 살찌우고, 영양을 제한해 눈이 멀게 하는 짓거리(?)는 하지 않는다. 한우농가들이 한우 사육으로 돈을 벌고 있지만 동물을 학대하면서까지 이익을 탐할 정도로 잔인하지도 않다.

한민족과 정서를 함께 해온 한우는, 상류층과 귀족층의 유별난 입맛을 겨냥해 처음부터 도축을 전제로 사육된 외국산 육우와 본질적으로 틀리다. 게다가 미국의 대형도축장처럼 ‘4D 가축’-dead-죽은 가축·dying-죽어가는 가축·diseased-병든 가축·disabled-불구가 된 가축-을 포크레인이나 지게차로 질질 끌며 비용 절감이라는 차원에서 해서는 안될 도축·유통을 하지도 않는다. 외국의 육우산업과 한우산업을 오버랩하면서 평가하는 것 자체가 ‘사고의 오류’이다.

 

제도적 장치가 우선

 

극히 일부의 사례를 보도하면서 품질 좋은 한우고기를 보다 싸게 더 많은 사람들이 먹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한다. 언 듯 들으면 일리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극히 잘못된 일부의 예를 전체로 확산한다고 가격이 내려가지도 않을뿐더러 오히려 고품질을 유지하려는 전체의 노력을 오도해 마치 ‘한우농가는 부도덕’하다고 하는 것과 다름이 아니다.

동물 복지의 차원에서 접근하면 친환경 사육을 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돼야 하고, 그에 합당한 여러 조건들이 충족돼야 한다. 인위적으로 가격을 인하하려고 악의적으로 사육 방식의 오류를 책잡는 것은 정부나 언론이나 할 짓은 아니다.

게다가 고급육·고가의 축산물로 이미 자리 잡은 한우고기를 대중화한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다. 그럴 양이면 간단하다. 사육마리수를 300만, 400만으로 늘리면 된다.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면 가격은 하락할테니 말이다. 그러나 그것이 가능할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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