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축산물품질평가원이 주최한 「소도체 등급기준 보완(안) 마련을 위한 토론회」를 보면 등급제를 바꿔야 하는 것인지, 소고기를 보는 인식을 바꿔야 하는 것인지, 사회적 계층의 불평등을 만족시켜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 정작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원칙이 배제됐기에 그렇다.

추진배경부터 그렇다. 동물성 지방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높아지고, 마블링은 건강에 해롭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소비패턴이 웰빙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 등급제 기준을 보완해야 하는 것과 무슨 상관일까?

 

‘보이지 않는 손’ 실종

 

소비자들의 그 같은 욕구가 심각하다면 분명히 시장에서 표출돼 한우고기에 대한 수요가 냉각됐을 테고, 수요가 감소하면 가격은 하락할 것이고 공급자인 한우농가들의 생산방식은 바뀌지 않았을까? 상황이 이렇다면 한우농가에서 먼저 등급제를 바꾸자고 했어야 할 텐데 어째서 한우농가는 반대하는 데도 불구하고 농림축산식품부가 나서고 축산물품질평가원이 마지못해 따라가는 모습을 보이는 걸까?

하나 더, 좋은 등급을 받기 위해 곡물위주의 사양과 장기간 비육을 하는 구조적 비판이 높고, 공중파·지상파를 중심으로 무차별적 보도가 현 등급 기준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형성하기 때문이라는 이유는, 정부가 개입해 등급제를 인위적으로 보완함으로써 한우산업 생산 구조 전체를 바꾸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왜냐하면 등급제의 변화는 한우농가 수익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동물성 지방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라는 것은 너무 작위적인 해석이 아닌가 싶다. 축산물을 구입하는 소비자들의 입장을 들어보면 더욱 그렇다. 그들이 동물성 지방에 대한 거부감이 그렇게 높았다면 채식을 할 일이지 왜 고기를 구입하겠느냐는 반문에서 그렇다.

외국의 축산물엔 ‘삼겹살’이라는 명칭이 없다. 굳이 ‘밸리belly’라고 하는 데 이는 베이컨으로 사용된다. 우리는 ‘서민의 육류’로 지방이 붙어 있는 삼겹살을 좋아한다. 그렇게 지방에 대한 거부감이 높다면 삼겹살은 당연히 사라졌어야 하지 않았을까?

대형 유통매장의 정육 매대나 일반 정육점에서 한우고기를 구입했던 소비자들의 한결같은 불만의 요지는 “비싸게 산 한우고기에 붙어 있는 ‘떡심’이나 지방을 떼고 나면 마치 그램 수를 속아 산 것 같아 화가 난다”는 것이다. 이것이 등급제를 바꾼다고 달라질 리도 없다. 지방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고기에 붙어 있는 ‘지방덩어리’가 문제라고 한다.

 

끼워 맞추기식 보완

 

이번에 축평원의 보완내용을 보면 근내 지방 외에 조직감도 우수해야 하고, 육색과 지방색은 소비자가 소고기 구매 시 품질을 판단하는 주요 요인이기 때문에 평가 기준을 높인다고 했다. 대뜸 주선태 경상대 교수가 “육색이나 조직감은 도축장에서 결정되기 때문에 도축장의 관리 소홀로 입는 피해는 농가에게 돌아갈 것이 아니냐”고 반론을 제기했다. 그는 지방도 다같은 지방이 아니라면서 무조건 지방이 나쁘다는 식의 보완은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축평원의 보완 내용은 한우농가는 물론 소비자의 입장에서도 너무 복잡하고,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았다. 또 굵고 뭉친 근내지방은 등급을 하향하고, 섬세한 근내지방은 상향 조정함으로써 향후 전체적인 지방함량 감축과 사료비를 절감할 수 있다는 내용에 대해서는 즉각적으로 “그 근거가 무엇이냐”는 반론이 제기됐다.

등급 명칭의 보완에서 ‘현재의 1등급, 1+, 1++ 등으로 구별되는 것과 병행해 비서열식 명칭을 도입함으로써 식육 소비의 사회·경제적 위화감을 완화한다’며 저지방·웰빙육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는 것과 관련 소비자단체에선 “2등급이나 3등급을 지방이 없으니 웰빙육으로 부르게 한다는 것은 자칫 소비자를 혼란에 빠뜨리게 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그런 식으로 할 바에는 차라리 그냥 두라는 것이다.

아마도 소비자들이 매장에서 1등급 이상과 2·3등급의 한우고기를 구입할 때 위화감을 느끼게 된다는 일부 소비자들의 이야기를 기준으로 한 듯 하다. 이러한 발상들 때문에 등급제 보완 문제는 더 꼬이는 것이다. 등급제 보완으로 ‘위화감’을 해소한다? 소가 웃을 일이다.

 

사육방식 고려했나?

 

육류 소비는 미국과 유럽의 육우산업은 시작부터 계층이 구별됐다. 이들 나라에서 소고기 소비는 부와 지위를 드러내주는 특권의 한 가지 형태였다. 축산물 소비가 증가한 시점을 보면 그 나라의 GDP가 일정의 수준을 넘어서는 순간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실례를 봐도 그렇다.

지금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등급제 보완 내용의 발표를 들으면서, 한우농가들이 ‘등급제 보완은 한우가격을 인위적으로 내리겠다’는 정부의 의도라고 ‘확신(?)’하는 이유를 알 듯 하다. 게다가 올 상반기 보안 기본안을 마련하고, 내년까지 객관적 검증과 시범 적용을 통해 2018년 최종안 확정과 시행하겠다는 로드맵은 탁상행정의 표본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2000년 초부터 변화해온 등급제에 맞춰 개량도 10여년 진행됐다. 이러한 과정들을 염두에 두지 않으면 정말 등급제는 한우고기 가격을 내리기 위한 것이라는 오명을 쓸 수밖에 없다. 등급제가 달라지면 그에 맞는 사육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당장 한우농가는 큰 손실을 보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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