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9월 시행되는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법(일명 김영란법)’의 구체적인 시행 기준이 나오면서 농축수산업계는 물론 유통·외식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지난해 5월 28일 시행령 제정을 위한 공개토론회를 거쳐 근 1년 동안 의견수렴을 한 후 내놓았다는 최종 결과물이 전혀 달라진 것이 없기 때문이다.<본지 2015년 7월 19일 「가락골-김영란법, 그대로 시행되면」 참조>

공직자와 사립학교 교직원, 언론인 등이 받을 수 있는 사교·의례용 비용이 식사 3만원, 선물 5만원, 경조사비(화환, 조화 포함) 10만원으로 제한된 것도 그렇지만 적용 대상자가 공무원 뿐만 아니라 민간인까지 무려 300여만 명에 달할 정도로 광범위하고 기준이 모호하다.

 

국민 설득 쉽지 않아

 

지난해 3월 국회를 통과한 일명 ‘김영란법’은 그동안 공무원 사회의 뿌리 깊은 부정과 부패를 근절하자는 것이 목적이다. 국가 전 방위적으로 저질러지고 있는 공무원들의 부정과 비리로 국민의 혈세가 낭비되고 있는 작금의 현실에서 함께 울분을 토하는 차원에서 생각하면 김영란법은 왜 진작부터 나오지 않았는가가 더 의문스럽다. 따라서 그 어떤 이유를 대던지 전 국민을 설득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러니 “김영란법의 개정이 필요하다”고 글을 쓰면 ‘속속들이 썩어빠진 족속’이니, 평상시에 뇌물을 받아 먹는 ‘얻어먹는 거지족속’이니 입에 담기도 힘든 욕설이 쏟아진다. 한우협회장이 중앙지와의 인터뷰에서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축산농가가 파탄난다. 빈대 잡으려다가 초가삼간 다 태울 판”이라고 했다가 “한우가 뇌물로 살았냐”느니 “한우를 팔려면 정상적으로 팔라”느니 “뇌물로 유지되는 축산농가라면 없느니만 못하다”느니 200여 개의 댓글 몰매를 맞았다.

이것이 공무원에 대한 신뢰가 어느 정도로 땅에 떨어졌는지를 알 수 있는 2016년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미국의 공화당 대선 후보로 우리가 수준이하라고 여기는 트럼프가 확정되고, 그와 성향이 비슷한 이들이 필리핀이나 브라질, 오스트리아에서 대세로 떠오르는 것을 두고 ‘분노의 정치’라고 한다. 당장 우리도 총선을 치르면서 선거 혁명이라는 걸 겪었다.

사회가 불평등해지고 갈수록 부의 편중이 가진 자에게로 쏠리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되면서 그 속에 내재된 부정과 부패를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는 국민들의 분노에 대해 어떤 설명이 필요하겠는가.

 

정작 자신들은 빠져

 

하지만 농수축산인들도 억울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일단 ‘뇌물’로 규정되는 것부터 그렇다. 때에 맞춰 선물하는 것은 대가성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선물은 고마움과 감사하는 정의 표현이다. 모르는 걸 가르쳐 줘서, 웃는 얼굴로 친절해 대해줘서, 사소한 것부터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감정의 표현이다. 하지만 그걸 액수로 환산한다면 고급스러움을 추구하는 농수축산물 생산자는 억울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현실을 반영해 달라는 호소다.

정작 각종 혜택과 향응에, 일반 기업이나 공기업, 공공기관에 온갖 압력을 가하면서 부당한 짓을 해오던 국회의원들 자신들은 빠져 나갔다. 어버이 연합과 같은 시민단체는 물론이고 선출직 공무원들에겐 광범위한 예외조항을 만들어 면죄부를 주고, 국회 논의 과정에서 여야 담합으로 물타기 하고 여론에 밀리 듯 부실한 법을 만들었다. 그리고 자신들이 통과시킨 법을 잘못된 것 같다고 다시 논의하겠다는 것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그 분노의 화살이 애꿎은 농수축산업계나 소상인에게 돌려져서는 안된다.

특히 한우의 경우 국내 쇠고기 시장의 빗장이 풀리면서 10여년 간 외국산과의 경쟁 대응방안으로 품질 고급화를 추진해 온 결과, 안전과 위생을 보장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 과정에서 많은 한우농가들이 생업을 포기하고 폐업을 했고 폐업을 준비 중이다. 그러면서 일궈낸 결과다. 한우고기가 신뢰할 수 있는 고급품이라는 인식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김영란법에서 농수축산물의 액수를 현실화해 달라는 요구를 산업 이기주의로 몰아서는 안되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억울한 피해 막아야

 

특히 한우산업에 대한 중장기적 육성방안조차 마련되지 않는 상황에서 번식의욕마저 회복세를 보이지 않고 사육마릿수의 감소로 가격이 급상승하자 소비 침체로 이어져 농가들도 죽을 맛이다. 가격이 오른다고 오른 만큼 농가가 혜택을 누리는 것도 아니다. 여기에 FTA에 따른 외국산 쇠고기의 관세 인하가 현실화되면서 국내 쇠고기 시장도 외국산에 급속히 잠식당하고 있다.

전국한우협회가 “김영란법은 수입 쇠고기 권장법이다”고 주장하는 이유이다. 결과적으로 한우에게 족쇄를 채우고 값싼 외국산 쇠고기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격이니 말이다.

국민권익위원장이 “입법예고 기간 동안 관계부처와 의견을 조율하고, 단체들의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밝힌 것에 관해 생산자단체들은 “공청회를 거치는 등 의견 수렴을 하고도 1년이 지났는데 앵무새처럼 똑같은 말을 반복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지 않는다. 목적이 좋다고 아무런 수단을 동원해도 된다는 말이 아니다. 김영란법은 그 누가 뭐라고 해도 실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농수축산인들이 선의의 피해를 입어 억울함을 호소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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