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만난 지인이 “그렇지 않아도 전화하려고 했다”며 팔을 끌어당긴다. 숨도 고르기 전에 던지는 말들이 한참을 고민했던 모양이다. 그가 하고 싶었던 말은 이렇다. “한우 1++ 도매시장 경락가격이 kg당 2만6000원을 넘는 등 한우고기 값은 천정부지로 올랐는데, 등심·안심·채끝은 적체되고, 한쪽에선 소비촉진이다 할인 행사다 하고 또 한쪽에선 수출 확대에 몰빵을 하네요.”

그의 말은 쉼 없이 또 이어졌다. “사육 마리수는 늘지 않는데 암소 브랜드 사업은 뭐고 저능력 암소 도태사업 지원은 또 뭐냐? 농가는 줄면서 대군 농가들의 기업화는 되고, 대기업의 진출 저지는 또 뭐냐?”

 

나아갈 방향틀 없어

 

잠시 말을 끊더니 다시 쏟아 붇는다. “농협 경제지주 이관문제는 당사자들은 물론이고 협동조합 전문가나 여타 학자들 사이에서도 잘못됐으니 재논의가 필요하다는데, 농축산부가 지도·감독을 이유로 밀어붙이고 있는 것은 뭐고, 만일 이관 후 문제가 발생하면 그때 수정하자는 것은 또 뭔가?”

지인의 말은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었지만 듣고 있다 보니 생각이 복잡해졌다. 그러고 보니 지금 축산업은 말 그대로 어수선하기 그지 없다. 하지만 그가 던진 수많은 질문에 뭐라 답할 수가 없다. 그도 답답하기에 하소연식으로 던진 말들이지만 답답하기는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지금 축산업은 방향틀이 없다. 굳이 말하자면 장단기 목표를 설정하고, 전략을 짜내고 실행방법을 찾아야 하는 정부 정책의 부재가 원인이다. 축산 전반에 걸친 전체적 상황을 꿰지 못하니 ‘헛힘’을 쓰거나 농가에 끌려갈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상황이 이정도면 정부와 축산농가 사이의 신뢰는 존재하기 힘들다.

검역본부의 한 관계자가 FMD 용어와 관련 “이전에는 표기를 자제해 달라던 ‘구제역’을 이제는 반대로 정부가 나서서 쓰느냐”는 질문에 “농가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해서”라고 답하는 것은 정부도 축산 농가를 믿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이제는 용어가 중요하지 않다. 생각과 감정이 실린 행간의 의미가 중요하다.

한쪽에서는 FMD·AI 방역에 쉴 새가 없고, 다른 한쪽은 신고조차 하지 않는다. 링백신 정책에서 후퇴해 발생지역만 솎아내는 식이 올바른 방역이라고 방역당국도 생각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진행되고 있는 것은 낭비다.

 

수출 노력 인정할 만

 

홍콩에 이어 마카오 시장까지 한우고기 수출 길이 열렸다. 정부의 노력은 인정할만하다. 하지만 정부의 발표대로 장밋빛은 아니다. FMD가 발생하면 도루아미타불이기에 그렇다. 삼계탕과 계란이라고 다르지 않다. 자유무역의 길이 터졌으니 우리도 우리의 축산물을 해외로 수출함으로써 그 혜택을 누리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국내 상황을 한 번 되돌아 봐라. 몰입해야 할 것이 과연 어떤 것인가를 알게 될 것이다.

산발적으로 터뜨리는 성과는 대책이 아니다. 대통령의 행태를 좇으면서 내달리는 정책은 이미 정책이 아니다. 아양(?)이고, 간살스러움이다. 불통의 대통령이 무소불위식으로 끌고 가는 정부를 그래서 무능한 정부라고 한다. 할랄 시장을 겨냥해 할랄 전용 도축장을 짓겠다는 계획은 정지상태다. 수출에 대한 노력은 지속적이어야지 한탕이어선 안된다.

더욱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은 농협 경제지주 이관에 대한 농림축산식품부의 집착이다. 김병원 농협중앙회장의 ‘경제지주 폐지’가 장관과의 면담에서 단칼에 날라 갔다. 김 회장은 전국축협조합장 회의에서 이동필 장관의 강한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고 했다. 그런데 그 강한 의지가 뭔지 알 수가 없다.

일부에서는 “농협 경제지주는 협동조합이 아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힘이 실려가는 모습이다. 지주회사는 다른 회사의 주식을 보유함으로써 그 회사의 사업 활동을 지배하는 것을 주된 사업으로 하는 회사이다.

지주회사는 피라미드형의 지배를 가능케 할 뿐만 아니라 소자본을 가지고도 거대한 생산과 자본에 대한 독점 지배망을 넓힐 수 있다는 점에서 오래 전부터 제한되어 오다 금융 자본의 자유화 물결에 따라 풀렸다. 이 때문에 협동조합이 지주회사 형태를 취하면 협동조합이 아니라는 것이다.

 

명확한 이유도 없어

 

또 농축산부가 굳건히 지키고 있는 ‘1지주 1대표의 농협 경제지주안’은 축산에 대한 전문성과 독립성을 크게 훼손한다는 우려도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축산부가 기존안을 행정입법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명확한 이유도 제시한 바 없다.

아마도 농축산부는 ‘농협중앙회는 하나의 구조 내에 두 개의 조직이 존재함으로써 중복되고 비대함을 초래해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전부터 제기되던 ‘화학적 통합’을 고려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시너지 효과는 조직의 통합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는 교훈을 농축협 통합에서 배웠다. 전문성이 크게 훼손됐기 때문이다. 상호 조직이 전문성과 독립성을 가지고 유기적으로 연대할 때 시너지 효과는 극대화된다.

지금 축산업은 높은 파고 위의 돗단배 신세와 같다. 선장이 방향을 제대로 정하지 못하면 곧바로 가라앉는다. 어려울수록 원칙과 기본에 충실하라고 한다. 지금이 바로 그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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