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소비자시민모임이 소비자 11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53%가 ‘마블링이 건강에 좋지 않다’고 답했다. ‘마블링 중심의 등급제를 바꿀 필요가 있다’는 답변도 64.3%에 달했다. 이런 마블링 중심의 등급제가 한우고기 가격을 상향 지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방의 양을 늘리기 위해 소를 장기 비육하다보니 사료 값은 더 들어가고 못 먹고 버리는 지방의 양도 많아지기 때문이다. 최근 등급제와 관련 간간이 나오는 주장들은 대부분 소비자 쪽이다.

여기에 일부 의학 관련 교수는 학술적인 의미를 부여한다. 한우고기가 미국산 쇠고기에 비해 올레인산 등 불포화지방산이 높은 건 사실이지만, 기본적으로 육류의 포화지방은 체내 콜레스테롤 합성을 촉진시켜 동맥경화, 심장병, 뇌졸중 등의 위험을 높인다는 주장이다.

 

‘상대적 박탈’이 원인

 

그런데 소비자들이 주장하는 「등급제 논란」의 본질은 등급제 자체의 문제성이 아니다. 소비자단체의 한 관계자는 ‘상대적 박탈감’으로 딱 잘라 말한다. 한우고기에 대한 소비심리는 높지만 현실적으로 소비할 수 없는 또는 소비하기 어려운 ‘값 비싼’ 축산물이라는 것 때문에 한우고기를 쉽게 구입할 수 있는 층과 비교해 느끼는 박탈감이라는 뜻이다.

등급제는 축산물 개방에 따라 외국산 축산물과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단계별로 보완됐다. 그 결과 한우고기는 외국산과의 가격 경쟁에서는 열세를 보이지만 품질 경쟁에서는 우위를 점할 수 있게 됐다. 축산물의 품질 고급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이 등급제이다. 소비자가 제기하는 등급제 개선과 축산 전문가들의 주장은 성격부터가 다르다.

축산전문가들은 마블링 중심의 등급제가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다. 현행 등급제를 유지할 경우 여전히 30개월 이상을 사육하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사료비용의 상승 등 생산비의 증가로 자칫 농가들의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으므로 이를 개선하려면 등급제를 보완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친환경 무항생제 등 사육 방식 등이 다양화해짐에 따라 ‘청정육’ 생산체계를 갖추기 위해서는 ‘가격 지불 방식’을 다양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소비자들의 ‘건강에 해로운 마블링 침착도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는 등급제는 잘못’이라는 주장은 ‘맛이 있는’ 한우고기를 보다 저렴하게 먹을 수 있는 체계를 갖춰야 한다는 주장과 다름이 없다. 한우 농가들은 “마블링이야말로 한우의 맛”이라고 등급제 개편에 반대하고 있다. 마블링은 고기의 풍미를 더해주고 육즙이 덜 빠지게 하는 역할을 한다. 마블링이 없는 부위를 구워 먹을 때 퍽퍽한 맛을 느끼는 이유다.

 

장기적 대책이 우선

 

소비자들의 요구가 지속적으로 제기됨에 따라 축산물품질평가원은 새로운 명칭 도입을 골자로 등급제 개선안 초안을 6월쯤 내놓을 예정이다. 하지만 그 내용에서도 ‘지방’이 포기되지 않은 이유는 마블링을 중심으로 한 등급제의 문제점을 발견할 수 없어서가 아닐까? ‘과도한(거친) 근내지방’은 하향 조정하고 ‘섬세한 근내지방’은 상향 조정한다니 말이다.

한우고기 가격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닌 것은 등급제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적정선의 가격으로 하향 조정돼 소비자들이 언제든지 부담 없이 맛 볼 수 있다면, ‘마블링이 건강에 좋지 않다’는 주장을 할 수 있을까? 장기적인 한우산업의 안정화 대책을 통해 한우 자급률을 높이는 것이 우선이다. 2~3년의 앞을 내다보고 사육해야 하는 한우산업의 특성상 장기적 대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한우고기에 대한 소비자들의 ‘안티’는 계속될 것이 자명하다. 등급제를 보완한다고 ‘높은 가격’에 대한 소비자의 만족도가 높아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다.

농가는 소비자에게 말한다. 한우고기 가격이 높은 것은 마리수가 적고, 장기 비육하고,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우리의 입장을 이해해 달라고 한다. 그리고 우리의 한우를 사랑하고 소비해 달라고 한다. 좀 섭섭한 말이지만 소비자가 왜 이해해야 하는지 묻고 싶다. 값 비싼 한우고기를 선택하면 여타 다른 선택을 포기해야 하는데 굳이 한우를 골라야 하느냐고.

 

소비자 심정은 아나?

 

왜 항상 농가들은 이해받기를 원하느냐고. 그렇다면 지금 소비자들의 상황은 이해하고 있느냐고. 경제는 침체되고, 일자리는 없고, 주머니는 가벼워져 오늘은 무엇을 먹어야 할지, 내일은 또 어떻게 하루를 살아가야 할지 우울한 소비자의 심정은 누가 이해해야 할까. 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14년만 해도 국내산 농축산물에 대한 소비심리는 40%대를 넘었지만 지난해는 30%대로 10%P나 하락했다. 반면 외국산 축산물에 대한 부정적 시각은 크게 줄어들었고, 줄고 있다.

소비자의 입장은 똑 같다. 농가도 물건을 구입할 땐 소비자다. 인터넷을 활용하기 위해 노트북을 1대 샀다고 치자. 기능에 대해서는 관심이 많겠지만 노트북 1대를 만드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쓰레기 양이 노트북 무게의 4000배에 이른다는 것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유해 폐기물은 물론이고, 이를 생산하는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현실을 떠올리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등급제가 뭔 잘못인가? 소비자의 입장을 생각하면 문제는 어떻게 ‘가격의 적정선’을 만들어 내느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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