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낙농현대화목장 사업과 관련 중국 산둥성 웨이하이 시를 찾았을 때의 일이다.

웨이하이 시 소재 지방자치단체인 문등 시에서는 낙농사업을 활성화시켜 부족한 우유를 생산하고, 지역 경제 활성화를 도모한다는 차원에서 지리적으로 가까운 한국 낙농가들의 투자 유치를 원했다.

당시 한국의 낙농은 현재와 마찬가지로 과잉 공급으로 몸살을 앓고 있을 때였다. 자신들의 투자 여건을 견학시켜준다며 부 시장이 앞장서고 버스를 대절해 이곳저곳을 보여줬다. 일행을 태운 버스 앞에 선도차가 서고 그 뒤를 부시장 관용차 그리고 대절버스가 뒤를 따랐다.

 

예산 마치 내돈처럼

 

대부분의 신호등은 파란불이 켜졌고, 우리는 마치 국가의 중요한 손님처럼 대접을 받으며 4차선의 도로를 막힘없이 내달렸다. 차선을 변경하지 않거나 중간에 끼어든 택시나 승용차가 있을 경우 쩌렁쩌렁한 경고음과 차폭등이 켜졌고 그 운전자는 황급히 길을 비켜줬다.

시의 축목국장(우리의 축산국장과 동급)은 인근의 조사료 공장을 설명하고, 상하수도는 물론이고 목장을 경영하는 데 필요한 모든 기간 산업을 설치하게 될 것이므로 여기에 목장을 세우면 한국에서 낙농가들의 희망인 ‘저 푸른 초원 위’를 영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 축목국장의 성(性)이 왕(王) 씨였는데 조사료 공장의 대표 역시 왕 씨여서, 농담반 진담반 조용히 물었다. ‘무슨 관계냐’고. 돌아오는 대답이 황당했다. 축목국장의 여동생이란다. 통역의 설명은 이랬다. 여기서 공무원은 자신들이 운용할 수 있는 국가의 예산을 마치 자신의 돈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이다.

낙농현대화목장 사업이 활발하게 추진될 것을 염두 해 두고 여동생을 내세워 조사료 공장을 설립하고 거기서 발생하는 수익을 통해 자신과 일가친척의 부를 축적하는 이러한 행태는 전국 어디에서나 비일비재하다고 설명했다.

시 고위 간부들과 견학 농가들의 대표자들이 구체적인 협력사업을 논의하기 위해 저녁에 모였다. 간부 중 한 명이 웃으며 흡연자들에게 펴 보라고 담배를 한 갑씩 돌렸다. 붉은 색 계통에 오성기가 그려진 담배였는데, 별로 좋아보이질 않아서 한 개피를 꺼내고 돌려주려 하자 웃으며 손가락으로 그 담배를 가리키며 엄지를 치켜든다.

중국에서 제일 비싸고 좋은 담배란다. 한 갑에 원화로 5~6만원 정도란다. 당시 중국의 목부 월급이 500~600위안(당시 원화 대 위안화의 환율이 150원 정도였다)로 원화로 따지면 9만원 정도였으니 목부의 20일치 급여와 맞먹는 높은 가격이다.

 

심각한 빈부의 격차

 

베이징이나 상하이의 ‘야타족(한국이 강남 등에서 외제차를 타고 유흥가를 돌면서 여성에게 ’야타‘라고 하면서 생긴 유행어)’의 필수품이 삼성의 핸드폰과 이 담배란다. 그래서 물었다. ‘도대체 한 달 급여가 얼마냐?’고. 웃으며 말한다. 이런 값 비싼 것들은 업자들이 정기적으로 대주는 것이라고. 누가 옆에서 말한다. 한국의 1970년대와 같단다.

중국에서 농민으로 사는 일은 참으로 힘겹다. 2004년 농촌의 실상을 폭로한 「중국농민 르포」는 출간되자마자 ‘금지도서’로 지정됐다. 20세기말 중국 농촌과 그 속에서 사는 사람들의 고통이 얼마나 심한지를 한눈에 보여준다.

그렇다면 2016년 21세기를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실제는 말 그대로 좀 나아졌는가? 청년 실업률 12.5%, 자살률 OECD 1위, 행복감 최하위권으로 삶은 팍팍해지고, 사회 복지가 안정되지 못해 은퇴하는 동시에 빈민층으로 전락하는 수많은 사람들, 젊은층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라며 퇴출되는 고령층, 기업이 살아야 경제가 산다며 노동의 유연성을 강조하면서 해고를 쉽게 할 수 있게 노동법을 개정하고, 알게 모르게 국민들의 체감으로는 세금이 올랐는데 그렇지 않다고 우기는 정부, 수출지향정책으로 부가 쌓이는 대기업과 무차별 규제 완화로 그들에게 더 많은 부를 안겨주면서 늘어나는 빈부의 격차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태도.

 

이분법 논리 더 견고

 

적절한 대책 없이 전 세계를 대상으로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면서 국가의 부(富)를 생각한다지만, 1980년대 말부터 시작된 세계화의 결과가 어떻게 전개됐는지 정말 심사숙고한 결과인지 묻고 싶을 정도이다. ‘창조’와 ‘혁신’을 부르짖으면서 그동안은 말을 안 해서 안 된 것인 양 몰아붙이기에 여념이 없다.

국민은 아랑 곳 없고 대통령을 중심으로 파당을 조성하고, 세대 간·업종 간 갈등을 조장하고, 위기의식을 고조시킨다. 혼자만이 애국이고 그를 따르지 않는 이는 비애국으로 몰아가는 이분법적 논리가 더 공고해졌다. 국무총리는 플랫폼까지 관용차로 밀고 들어가고, 방산업체들의 대형 비리들은 끝나지 않고 있다.

왜 항상 당신은 비관적으로 국정을 보느냐며 ‘삐딱이’ 자세를 지적하기도 하고, 농축산이라는 분야에서 왜 일반 사회적 문제를 언급하며 갈등을 조장하느냐고 탓(?)하기도 한다. 그러한 농민들에게 묻는다. “당신은 거지냐”고. 항상 “도와 달라”고, “관심 가져 달라”고 하지 당신은 다른 산업 다른 이들에게 관심 가져 본 적이 있느냐고. 진정한 창조와 혁신의 대열에 설 각오가 되어 있느냐고 말이다. 1970년대의 향수를 가지고 그때로 돌아갈 생각이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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