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9년 5월5일 프랑스 왕 루이 16세는 ‘왕이 돈이 필요할 때 세금을 걷어도 좋다’는 성직자·귀족·평민 세 신분 대표들의 동의를 얻기 위해 175년 만에 ‘전국 신분회’를 소집했다. 당시 프랑스는 루이 14세 때부터 툭 하면 벌렸던 전쟁의 패배와 미국 독립혁명에 관여함으로써 막대한 재정 손실을 입어 국고가 바닥나 엄청난 부채에 시달리고 있는 상태였다.

당시 성직자와 귀족은 제1·2신분으로, 농민·노동자·장인을 비롯한 전 국민의 98%를 차지한 제3신분인 평민의 고혈을 빨아먹으며 호의호식하고 있었다. 평민의 삶은 그야말로 처참 그 자체였다. 나라 전체는 전보다 부유해졌지만 부가 소수에 편중됐고, 곡식을 생산하는 농민조차 굶주림에 허덕였고, 부잣집 쓰레기통에서 나온 음식을 모아 파는 사람까지 있었다.

 

국회의원 목숨 걸고

 

옷도 한 벌 뿐인 사람들이 많아서 여름날 새벽에 강가에 나가 옷을 빨고 오들오들 떨다가 적당히 마르면 입고 하루를 지냈다. 오물 속에서 영양실조에 걸린 사람들이 생활을 하다 보니 죽어나가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

그 해 신분회에 소집된 제3신분은, 세 신분의 대표가 투표를 해 봐야 결과가 2대1로 나올 것이 뻔하기 때문에 대표수를 늘려달라고 주장했다. 예전 같으면 반역죄에 해당했다. 끝내 주장을 굽히지 않으면서 일부 귀족과 성직자들이 평민 쪽으로 넘어왔다. 6월 17일 전국 신분회는 ‘국민의회’로 명칭을 바꾸기로 결의했다. 제3신분, 평민들이 주축이 돼 국회를 구성한 것이다.

루이 16세는 이들의 회의를 방해하려고 회의장을 봉쇄했지만 이들은 죄드폼이라는 실내 체육관으로 가서 ‘죄드폼의 맹세’를 한다.

“아무도 국회를 방해하지 못한다. 설사 강제로 대표를 쫓아낸다 해도 그들이 모이면 그곳이 어디건 국회임을 밝힌다. 국회의 모든 구성원은 일치단결해 왕국의 헌법을 제정하고 튼튼한 기반 위에 확립될 때까지 결코 헤어지지 않는다. 필요하다면 어디서나 모일 것이다. 우리는 맹세하고 서명해 이 확고한 결심을 밝힌다.”

루이 16세는 베르사유에 군대를 불러들였다. 그리고 비공개 회의를 열어 국회를 다시 전국신분회로 되돌리려고 했다. “왕은 모든 백성의 아버지로서 모든 행위를 단호히 응징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제3신분 대표들은 반박했다.

 

국민 대표하는 사람

 

“…우리는 어떤 권한을 행사하고 어떤 임무를 수행하려고 여기 모였다. 우리는 단지 명령을 받는 사람인가? 또는 왕의 관리란 말인가? 그렇다면 우리는 복종하고 물러서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국민이 보낸 사람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용기를 내서 자유롭게 우리의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우리는 맹세했다. 우리는 프랑스 인민의 권리를 되찾아 주겠다고 맹세했다. 인민은 헌법을 요구한다. 우리가 없으면 누가 헌법을 만들겠는가? 선거인들을 대표할 권리를 그 어떤 힘으로 빼앗을 수 있단 말인가? 국회의원은 정당한 의정활동을 하면서 자유롭게 발언하고 투표할 수 있도록 면책특권을 가져야 한다. 국회의원은 신성한 존재임을 선언한다. 그 누구라도 국회의원을 해친다면 국회는 필요한 수단을 모두 동원해 그렇게 하도록 시키거나 그렇게 한 자를 철저히 조사·추적·처벌할 것이다.”

목숨을 걸고 국민들을 위한 법을 만들고 그것을 지켜나가겠다는 국회의원들의 결연한 의지다. 이것이 진정한 시민혁명인 「프랑스 대혁명」의 서막이다. 200년도 더 지난 당시의 일이 왜 21세기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사람에게 더욱 선명하게 새겨지는가?

전 세계적으로 3500만부가 팔린 초대형 베스트셀러 30쪽 짜리의 소책자 「분노하라」의 저자 스테판 에셀은 1917년 태어나 제2차대전 당시 프랑스 레지스탕스 투사로 활동하다가 전쟁 말기 1944년 체포돼 악명높은 부헨발트 수용소에 수감됐다 세 곳의 수용소를 거친 끝에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유엔주재 프랑스 대사와 유엔 인권위원회 프랑스 대표를 지냈고 100세에 가까운 나이에도 세계 인권운동의 현장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다는 꼬락서니가

 

그가 ‘분노하라’고 하는 것은 인간은 분노할 줄 알아야 비로소 인간이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분노는 참여의 시작이기에 그렇다. 우리는 용인할 수 없는 세계에 살고 있고 그것은 우리가 원하는 세계가 아니다. 따라서 새로운 세계를 함께 만들어 가는 데 분노가 기여한다는 것이다. 그는 무턱대고 행동하는 것이 아닌, 비폭력적이고 사려 깊은 행동을 옹호한다. 인류가 이미 이룬 것들 중 ‘민주적 수단’이 분노를 표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확신한다.

지금까지 항상 ‘국민’을 가장 잘 이해하고 위한다는 세 부류가 있다. 대통령과 여당과 야당이 그렇다. 선거 때만 되면 또는 뭔 정책 결정을 하고자 할 땐 항상 앞에 붙는 수식어가 바로 국민이다. 모든 행동과 결정이 국민을 위한다는 것이다. 어제는 ‘경제를 살려야 하는 골든타임이 지나간다’며 위기 의식을 고조시키다 오늘은 ‘그래도 가만히 보니 좋은 점도 있다’는 말은 뭐라고 해석하기 힘들다.

여당이고 야당이고 4·13 총선을 앞두고 공천 잡음이 끊이지 않는다. ‘배신’의 여운이 가시지 않는다. 조폭세계와 정치판이 비교된다. 그걸 비교라고 한다. 그렇다면 국민은 조폭 밑에서 생활하는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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