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출장을 다녀오는 자동차 안에서 창밖으로 화사한 햇살과 짙은 회색의 겨울을 뚫고 솟아오르는 만물의 생동이 지나갑니다. 차를 세우고 잠시 삶의 원기를 마시다가 불연 듯 ‘내가 뭐하는 짓이지?’하는 생각이 떠오릅니다. 작은 규모의 회사를 꾸려 가면서 계약을 따내기 위해 못하는 술도 마시고 피로에 쩔어, 너덜대는 몸을 이끌고 귀사하면 몇 안 되는 직원들이 희희낙락 하는 모습을 보면 정말 미치겠더라고요. 자신은 이번 달 월급 걱정, 지출해야 하는 자금 걱정으로 한 달을 시작하는데 그런 마음을 몰라주는 것 같아 확 그냥 뒤집어 엎고 싶은데 말은 못하겠고…”

 

차이 먼저 깨달아야

 

디자인 관련 회사를 경영하는 A 사장의 하소연이다.

“참 이상해요. 사장님은 어떤 땐 한없이 포용하다가도 또 어떤 땐 마치 화가 난 듯한 얼굴이예요. 비위 맞추기가 어렵더라구요. 회사 규모가 작아도 우린 참 열심히 일해요. 동료들끼리 항상 웃음을 잃지 않으려고 하고, 회사를 한 번 잘 만들어보자고 퇴근 후 술잔을 돌리며 각오를 다지기도 해요. 그런데 사장님의 변화무쌍한 감정 표현 때문에 불안해요. 친구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면 자기 회사로 오라고 하는 곳도 있어요. 하지만 처음부터 함께 한 다짐을 먼저 깨기가 싫더라구요.”

그 회사 직원들의 속마음이다.

사장은 직원들이 자신이 얼마나 힘들게 회사를 이끌고 있는지 다 알아줬으면 좋겠고, 좀 더 열심히 진지하고 업무에 임해줬으면 하는 마음을 토로한 것이다. 그러나 직원들의 입장에서는 사장의 행동과 표현이 수시로 달라지면서 어떤 땐 마치 자신들이 아무 일도 안하고 월급을 축내고 있다는 의심을 받게 되는 것 같아 불안하다는 것이다. 사장과 직원의 이 같은 생각의 차이는 누가 잘못이라고 지적할 수 없다. 왜냐하면 주어진 위치에 따라 생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사장이 자신의 위치에 맞는 경영마인드를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직원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직급이 있다.

사장은 직원들이 회사를 제 집처럼, 자신을 마치 아버지처럼 생각하고 군소리 없이 따라주었으면 바라지만, 직원에게 회사는 자신과 자신의 가족의 윤택한 삶을 영위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이다. 그러한 엄연한 차이를 깨닫지 못하면 회사는 갈등에 휩싸이고, 갈등이 커지면 항상 허덕일 수밖에 없다.

 

시간이 지나면 식상

 

이건 국가 운영도 마찬가지이고, 거대 조직도 마찬가지이다. 단지 그런 조직에서는 금방 눈에 띄게 발생되는 갈등을 해소하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거나, 중간자 역할을 하는 누군가가 존재한다는 점이 다르다.

지난 4일 농협중앙회 축산경제는 ‘축산경제 변화·혁신 추진대회’를 개최했다. 축산경제 올해 사업을 소개한 후 4급 및 현장 직원들과 대표의 토론회 형태로 좌석을 배치하고, 청중으로 상무·부장·3급 책임자들이 그 주위를 둘러 앉았다. 파격적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기존의 형식에서 벗어난 고심의 흔적이 역력히 보였다. 얽매인 기존의 사고를 깨고 새롭게 태어나자는 자유로운 토론이 이어졌다.

하지만 책임자 급들이 모여 그해 축산경제 사업을 설명하고, 목표 달성을 위해 화합하고 결의하는 ‘축산경제 사업보고회’에 언제부터인지 퍼포먼스가 끼여 들었다. 처음엔 신선하게 보였던 ‘퍼포먼스’는 시간이 지나면 식상하다. 그 언제부턴가 ‘당연시’되는 것은 개혁이나 혁신과는 거리가 멀다. 소리를 꽝꽝 울리고, 마음을 흔들어 저 밑바닥의 ‘초심’을 끌어올리는, ‘홍보의 나팔’이 일종의 계기는 될 수 있지만 ‘감동’은 주지 못한다. 오히려 “또야?”라던가 “뭐야?” 라는 당초 기대를 반감시키는 역효과만 낳을 뿐이다.

대표가 취임부터 ‘변화와 혁신’을 입에 달고 사는 것은, 그만큼 협동조합이 바뀌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는 절박감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움이라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호응이 없다면 그건 ‘나만의’ 절박감일 수밖에 없다. CEO로서 저 아래 직원부터 상무에 이르기까지 나와 같은 뜻을 가져달라는 말은 직책과 직무에 대한 차이를 이해하지 못한데서 나오는 당부이다.

 

불씨 키우는 일 중요

 

십수 년 전 시작된 통합농협 내 축산경제는 높은 파도 속을 헤쳐 나가는 역동성을 잃었고, 높으신 분들은 할 수만 있다면 되도록 평탄한 길을 택하면서 잔잔해졌다. 그래도 망하지 않는다는 자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협력업체들과의 관계에서, 조직의 누수를 찾아내면서 매년 수억, 수십 억의 이익을 올린 실무자에게는 아무런 혜택이 주어지지 않았다. 자신의 업적을 드러내지 않았다고 승진에서 누락되다 정년을 맞는다. 그렇게 형성된 분위기다.

이전과는 다른 토론회를 했다고, 이전의 대표와는 다르게 보이고 싶다고 어느날 갑자기 ‘변화와 혁신의 전도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집행부가 나서서 ‘이것 하자, 저것 하자’는 것은 직원의 입장에서는 설득이 아니고 강요일 가능성이 더 크다.

다행히 축산경제 내에 변화의 움직임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사업 부서인 농협사료가 그렇고, 목우촌이 그렇다. 안심축산사업부 역시 그렇다. ‘출장 제도’를 바꿔 보겠다고 이전과 다르게 출장을 가보고 자신의 변화가 과연 맞는 것인지 판단해 달라는 직원도 있다.

하고자 하는 의욕을 되살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직도 꺼지지 않는 불씨를 찾아 바람을 넣는 일은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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