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5시30분. 아직 밝아오지 않는 어스름한 들녘에 잔설이 소리없이 그리고 줄기차게 내린다. 토론토에서 벤쿠버까지 거의 일직선으로 뚫린 하이웨이 1번 도로는, 왕복 2차선이어서 굳이 고속도로라고까지 말할 수 없지만 ‘물류의 젖줄’이라 대형 트럭이 수시로 지나간다. 건조한 탓인지 눈이 뭉쳐지질 않아 마주 오는 트럭의 스치는 바람에도 잠자던 눈들이 모두 일어나 날리면 순간 시야는 그냥 하얗다. 일직선이면서도 그래서 겨울엔 특히 위험하다.

 

나다니지 말라 경고

 

주변의 마을도, 지나가는 차들도 거의 없고, 도로와 옆에 그냥 놓여 있는 눈만 지나는 바람에 흔들릴 뿐. 그래서 그 길을 지나는 사람들은 마치 지옥행 길과 같다고도 한다. 바람에 따라 눈들이 춤을 추고, 짙은 안개 속으로 빠져드는 착각까지 갖는다. 눈이 조금이라도 많이 온다 싶으면 길 위엔 어김없이 주황색 차단막이 설치된다. 여기서부터는 눈 때문에 위험하니 지나갈 수 없다는 것이다. 돌아가던지 아니면 그 위험이 사라질 때까지 기다리던지 알아서 하라는 표시다. 덩그런히 놓여 있는 차단막은 “오늘은 공휴일이예요”라고 말하는 듯 하다. 물론 대한민국 사람이면 누구나 한 번은 이를 무시하고 지나가지만 그 대가는 상상 이상이다.

최근 미국 멕시코만에서부터 뉴잉글랜드(미국 북동부 6개 주의 총칭)까지 거대한 눈보라가 밀려와 최소 눈 때문에 17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한다. 특히 뉴욕과 워싱턴DC의 눈보라는 더 엄청났다고 한다. 뉴욕 시에는 여행금지는 물론 모든 차량의 도로통행이 금지됐다. 운전하는 사람은 체포될 수 있다는 강력한 경고 조치도 있었다. 버스와 통근열차와 지하철의 지상구간도 폐쇄됐다. 링컨터널 등 허드슨 강을 건너 뉴욕 시로 들어오는 4개 터널과 다리도 마찬가지로 폐쇄됐다. 아예 움직이지 말라는 뜻이다.

뉴욕 시에서 몇 년을 거주했다는 한 방송기자는 자신이 체험했던 눈 폭풍에 대처하는 시 당국과 시민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전해줬다. 눈 폭풍에 대한 일기예보가 뉴스를 장식하기 시작하면 당국은 일단 예고와 경고를 보낸다. 수시로 기자 간담회를 연다. 핵심은 “괜히 나다니지 말라”는 것이다. 차로 돌아다니다 안에 갇히거나, 걸어 다니다 쓰러지면 생명의 위협이 뒤따르고, 구조하기 위해 공공의 자원이 투여돼야 할 뿐만 아니라 효율적인 제설작업에 방해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제설 작업만도 벅찬데 구조할 일을 만들지 말라는 강력한 메시지이다.

 

‘사회적 합의’ 때문

 

이러한 시의 무시무시한 경고가 시민들에게 겁박으로 들리지 않는 것에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내가 나의 편리와 권리를 일부 양보하면, 당국이 효과적으로 눈을 치워 도시 기능을 빠르게 회복시켜줄 것’이라는 사회적 합의가 있기 때문이다.

제설차량은 시 소유 뿐만 아니라 민간 소유의 트럭들도 대거 투입된다. 지역의 건설업자, 조경업자들은 대부분 겨울에 일감이 별로 없는데, 시 당국과의 사전 계약에 따라 눈을 치우고 돈도 벌 수 있는 윈윈계약이다. 재해방송도 우리가 사후적으로 피해지역을 뒤 쫓는 형식이라면, 미국의 경우에는 폭풍이 어디에서 오는지, 경로에 위치한 주민들이 어떻게 대비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데 집중한다.

32년만의 기록적인 폭설로 지난달 23일부터 25일까지 제주지역 항공 대란과 고립 사태로 제주공항 대합실은 말 그대로 전쟁터를 연상시켰다. 항공기 운항이 전면 중단되면서 제주를 빠져나가려던 승객 9만명의 발이 묶이면서 ‘공항 노숙’사태가 빚어졌고, 티켓을 구하려는 승객과 대기 행렬은 아수라장을 방불케 했다. 인근 지역 숙소 부족과 교통 수송대책 미흡, 제설작업 부실 등 총체적 난국이었다. 먹다 버린 음식, 옷가지, 휴지 등등 정말 난민수용소였다. 공항에서 노숙을 하던 한 중년 남자는 “상황이 어땠느냐”는 한 방송기자의 질문에 “여기가 정말 대한민국이냐?”고 되물었다. 세월호에, 메르스에 재난만 발생되면 항상 총체적 난국이다. 아무런 대비책도 없고, 있다고 해도 발동이 되질 않는다. 그러니 도통 믿음이 가지도 않는다. 때문에 “여기가 과연 경제대국 10위 안에 드는 대한민국이 맞느냐”는 자괴감 어린 질문으로 되돌아 오는 것이다.

 

선제적 대응은 준비

 

이제 축산업으로 눈을 돌려 보자. 최근 GSnJ의 「시선집중」에서 최원목 이화여대 교수는 ‘검역장벽’이 무너지고 있다면서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에 가입하려는 대한민국은 이에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수출을 주도하고 있는 축산 강국들을 중심으로 ‘동식물 위생 및 검역조치(SPS)협정’으로 수입을 억제하는 나라들의 장벽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작년 10월 타결된 SPS의 ‘동등성’과 ‘지역화’ 등 관련 규정을 강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무소불위의 현정부가 TPP 가입을 공식화하고 박차를 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FTA처럼 누구도 말리지 못할 행보를 거듭하게 될 것이 자명하다. TPP에 가입하게 되면 SPS 규율 변화로 그 영향은 관세감축보다 더 큰 경우가 많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준비는 서두를수록 시행착오를 덜하게 되고, ‘사회적 합의’도 가능하고, 평온하다. 늦을수록 고통스럽다. 일이 터지고 나서 ‘선제적 대응’이라고 한 들 이미 때늦은 후다. ‘선제적’이란 미리 준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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