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를 앞에 놓고 뭔가를 써야 할 때는 신중에 신중을 기한다. 지우개로 지울 수 있는 연필로 써도 원래의 상태로는 되돌릴 수 없기에 한 번 더 생각하게 된다. 첫 한자, 첫 줄, 첫 마디가 잘못 쓰이게 되면 그 다음부터는 ‘될대로 되라’다.

순백 앞에서의 고뇌란 그런 것이다. 백지에서 그럴진대 하물며 삶의 마디마디 신년을 맞이해서는 더욱 그렇다. 인생은 연습이 아니라는. 때문에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희망을 놓지 않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 그래서 우린 새해를 맞아 희망을 노래하고, 행복하기를 기원하고, 건강하기를 소망한다.

 

행복하기를 기원

 

2016년 丙申年 ‘붉은 원숭이의 해’를 맞으면서 희망을 노래하고 싶다. 하지만 새해 문을 열기도 전부터 ‘눈물 바람’이다. 2014년은 ‘세월호 참사’로 수백의 학부모들이 눈물을 흘렸다. 2015년에는 ‘메르스 사태’로 부모와 자식이, 부부가 생이별하며 또 눈물을 흘렸다. 연말엔 ‘한·일 위안부 협상’ 타결로 무자비한 일본군에게 끌려 다니며 성노예 생활을 하며 갖은 모욕과 학대를 당한 ‘어르신’들의 가슴에 대못질을 했다.

선대책은 고사하고 피해보전 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농축산 강국들과 FTA를 체결하면서 농축산인들의 눈물을 쏟게 했다. 신년 벽두부터 눈물바람이다. 일은 자기들이 저질러 놓고 이해하란다. 당사자는 뭘 이해하라는 지 말하지 않으니 알 수도 없다. 노력했다고 하는 데 무슨 노력을 했는지 말해주지도 않는다. 이러니 신년 덕담 자체가 마치 조롱(?)같다.

지난해 말 미국 금리 인상으로 그 여파에 대한 결과가 어떻게 나타날지 경제전문가들의 의견이 분분한 사이 새해가 시작되면서 중국으로부터의 충격파가 한국 경제를 뒤흔들고 있다. 중국 증시가 4일 개장하자마자 7% 이상 폭락하면서 올해 첫 도입한 서킷브레이커(circuit breakers)를 발동했다. 아시아에 미칠 영향을 고려할 시간도 없이 7일 또 다시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되면서 아시아 증시도 패닉상태에 빠졌다.

서킷브레이커란 전기회로에서 서킷브레이커가 과열된 회로를 차단하는 장치를 일컫는 말로, 주식시장에서 주가가 갑자기 급락하는 경우, 시장에 미치는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주식매매를 일시적으로 중단하는 ‘주식거래 중단제도’를 말한다. 그만큼 급하다는 점이다.

 

곳곳에서 경고등

 

경제전문가들은 중국 증시의 대폭락을 ‘중국 경제 위기’로 보고 있다. 중국 제조업 1번지로 꼽히는 광둥성 둥관시의 지난해 도산 기업이 2014년 428개사를 크게 웃도는 등 심각한 제조업의 경영난이 원인으로, 중국 정부가 강력한 안정대책을 내놓았지만 그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폭락으로 이어졌다고 판단한다. 중국의 경제 성장률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한국 경제의 앞날도 당초의 예상을 다시 수정해야 할 판국이다.

가뜩이나 수 조원을 쏟아부으며 부동산 경기 활성화를 통해 한국 경제 전반의 회생을 꾀했던 정부의 정책들이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면서 암울함을 드리운 가운데 서민들의 팍팍한 삶은 더 어렵게 됐다. 앞날이 투명하지 못한데다 암울하기까지 하니 소비는 더 위축된다. 여기에 수출이 저조해지면 국가 재정도 넉넉할 리가 없다.

상황이 이러니 축산업도 나아진다는 보장이 없다. 4일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조사한 ‘농업·농촌에 대한 2015년 국민의식 조사결과’를 보면 소비에 이 같은 상황이 고스란히 적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전과 같이 축산물을 선택하는 데 국적을 따질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2010년만 하더라도 가격에 상관없이 국산농축산물을 구입하겠다는 소비자가 응답자의 45.1%였지만 5년이 지난 2015년엔 그 절반도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외국산을 구매하거나 원산지에 상관없이 구매하겠다는 응답자의 비율은 농경연이 조사를 시작한 이래 가장 높은 비율을 나타냈다. 이는 시장 개방으로 급증한 수입 농축산물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높은 비용을 지불하고 굳이 국내산을 구매할 여유가 없다는 점이다. 국내산에 대한 충성도가 이처럼 낮아지면서 국내 농축산업계는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다.

 

불안 책임져 달라

 

지난해 한우산업은 3년여의 긴 불황을 탈피하면서 호황을 누리고 있고, 한돈의 경우에도 자조금의 활발한 소비촉진 활동으로, 공식적으로 1000만마리를 넘는 사상 최대의 사육 마리수를 기록하고도 비교적 좋은 가격대를 유지했다. 그러나 현재 한우·한돈의 높은 가격 유지가 결과적으로 득이 될지 독이 될지는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이번 조사에서 도시민 1500명 중 40%에 가까운 응답자가 ‘외국산 농축산물에 별다른 거부감이 없다’거나, 25.7%가 ‘인식은 좋지 않지만 가격이 저렴해 구입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어 잇따른 수입 개방과 경제 상황의 악화가 농축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 지 잘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지난 6일엔 북한의 ‘수소탄 실험’까지 있었다. 정부는 지진파 규모를 들어 ‘증폭핵분열탄’ 실험일 가능성이 높다고 했지만 지금 한반도를 둘러싼 상황은 우리가 생각한 이상으로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지금까지의 정부를 생각하면 불안하기 짝이 없다. 제발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지 않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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