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FTA 비준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지난달 30일 정부 3개부처 관계자들이 합동 브리핑을 했다.

중국은 우리 전체 수출의 25%를 차지할 정도로 넓은 시장을 자랑한다. 따라서 자유무역협정 발효에 따른 관세철폐 효과는 우리나라의 중국 수입시장 점유율 1위 유지에 도움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한·중FTA가 발효되면 높은 성장이 예상되는 건설, 환경, 엔터테인먼트, 법률 등 중국 내 유망 서비스 시장의 진출도 현실화될 전망이며, 우리 농수산업의 성장산업화에 기반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는 것이다.

 

눈에 거슬리는 문구

 

정부는 여야정협의체에서 합의한 농수산 분야 추가 보완대책이 충실히 이행될 수 있도록 예산과 세제 관련 사항 등 필요한 조치를 이행해 나갈 계획이며, 한·중FTA에 따른 ‘혹시 모를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여야정 협의체를 구성해 지난달 30일 피해 농어민 지원 등을 위한 1조원의 상생기금 조성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 기금은 민간기업, 공기업, 농수협 등의 ‘자발적인’ 기부금을 재원으로 매년 1000억원 씩 10년간 1조원을 조성한다.

이 대목에서 몇 가지 궁금한 점이 있다. ‘혹시 모를 피해’란 것이 무엇인지 묻고 싶다. 정부가 오랫동안 그리고 여러 위탁 연구들의 예상이 빗나갈 경우를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홍보용으로 만든 그 연구들이 당연히 틀릴 것을 예상한 것인지 말이다.

또 ‘자발적’인 기부란 무엇인가? 자발적이란 비강제성이다. 외부로부터 강제되지 않는 상태를 말하는 데, 마음이 내키지 않으면 기부하지 않아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왜 유독 ‘자발적’에 힘을 싣고 있는 지도 궁금하다. 게다가 피해를 입게 될 농축수산업을 지지하고 있는 협동조합이 왜 기부를 해야 하느냐도 그렇다.

일부 언론들은 ‘준조세’요, ‘공산주의체제에서나 가능한 발상’이요, ‘시장 경제의 건전한 발전을 해치는 암적 존재’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그들은 여기에 한층 더 한국 농축산업에 대한 우산을 이제는 걷어야 한다고까지 주장한다.

 

이념의 목적은 민생

 

준조세의 경우는 그렇다고 쳐도 왜 상생기금을 공산주의체제와 비교를 하고, 시장 경제가 마치 성장의 모델이나 되는 양 끼워넣는지 궁금하다. 공산주의의 경제체계를 도입했다고 해서 ‘빨갱이’가 되는가? 정부나 대기업 그리고 그 많은 재산가들의 불법과 탈법, 부조리와 부패가 만연되어 있는 대한민국은 진정한 민주국가인가? 민생에 무슨 이데올로기가 중요한가. 상생기금이 공산주의적 발상이고 시장 경제를 훼손한다면 왜 국가가 개입해 경제를 살려야 한다고 주장하는가.

세상의 모든 이데올로기는 어떻게 생존하느냐의 목적을 가지고 태어났다. 이념은 조직을 구성하고 있는 개인의 행복을 만족시키는 데 적합한가에 따라 채택된다. 민생 우선이라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공산주의나 민주주의는 별 차이가 없다. 그 이데올로기를 이용해 권력을 유지하고, 사욕을 채우려는 이들로 인해 변질된 것이 문제일 뿐이다.

엄격한 의미에서 북한이 공산주의인가? 거긴 왕조체제의 독재국가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단의 현실과 한국전쟁을 겪은 우리들의 유전자는 ‘공산주의’에 대한 강렬한 거부감이 존재해 있다. 우리의 현실이 지금 진정한 민주주의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누군가 묻는다. ‘당신은 진보요, 보수요’ 도대체 진보와 보수는 어떻게 구별하는 것일까? 왜 대통령부터 나서서 “네 정체성을 뚜렷하게 밝히라”고 강요하는가. 그 그어진 선의 오른쪽에 서라고 여당은 강요하고, 왜 그래야 하는 지 일부 언론들은 논리를 제공한다. 그러면 그 논리는 또 대통령의 마음을 사로잡는 되풀이가 되는 것이다.

생존권 박탈로 “살려 달라”고 집단으로 아우성치는 이들에게 법을 거스르는 불경죄를 뒤짚어 씌우고, 비애국자로서 ‘국가’라는 추상적인 단어 앞에 무릎을 꿇린다. 물대포에 맞아 사경을 헤매이는 농부를 두고, 일부 언론은 신상털이를 해 그 사람의 이력을 두고 ‘선동가’요, ‘운동권자’로 낙인을 찍고, 정부의 폭력을 정당화하려 한다.

 

농민이란 이유로 무시

 

그동안 농축산인들의 주장은 ‘어거지’나 ‘떼법’으로 폄하하면서 농축산물의 빗장이 열리면 다 죽겠다고 아우성쳤던 농축산업이 지금 다 죽었느냐고 오히려 따진다. 경쟁력이 더욱 강화됐다는 것이다. 말은 그럴싸 하다. 그동안 부지기수로 삶의 터전에서 쫓겨난 농가들에 대해서는 애써 외면한 채 남의 일이라고, ‘국가 이익’이라고 참으로 쉽게들 말한다.

다시 11월 14일 광화문 거리로 시간을 되돌려 보자. 상여를 맨 농부에게 물었다. 당신은 왜 집회에 참여했느냐고. 그는 국민으로서 존중받고 싶다고 했다. 자신이 대통령이 말하는 국민이 아니라면 개인으로서 존중받고 싶다고 덧붙였다.

그날 앞쪽에 서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물대포에 맞아 카메라며 취재수첩 모두 적시고, 흠뻑 젖은 몸으로 오들오들 떨면서 집으로 오는 지하철 안에서 승객들의 의아한 눈길을 받으며 나는 물었다. “나는 존중받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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