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한 사람만 선택해 달라”고 박근혜 대통령이 11월 11일 국무회의에서 발언하자, “내가 그 진실한 사람”이라고 여당을 비롯 내년 총선에 나설 ‘뜨내기들’이 머리를 내밀고 있다. 그래서 ‘진박’이라는 조어가 또 나왔다. 친박이니, 탈박이니, 짤박이니, 복박이니, 신친박이니…그 많은 조어들에 진박과 박근혜를 지킨다는 ‘수박(守朴)’까지 등장했다.

국무회의에서 적절치 못한 발언을 한 대통령도 그렇지만 ‘진실한 사람’이 뜻하는 바를 박근혜 대통령의 은혜에 보답하는 사람, 또는 오로지 충성하는 사람으로 해석되는 현실이 국민들을 또 한 번 절망케 한다.

 

세상은 왜 조용한가

 

야당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선거와 관련된 발언을 했다가 탄핵 받은 예를 들면서 현정부가, 그것도 대통령이 선거에 적극적으로 개입했다고 강력히 반발하면서 ‘선거법 위반’을 들고 나온 것도 당연한 일이다.

11월 14일 광화문 집회를 두고 국무회의에서의 발언은 점입가경이다.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복면시위’를 못하게 해야 한다면서, 프랑스 파리에서 테러로 100여명을 살해한 IS에 빗대 국민을 어이없게 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이 발언은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의 앨러스터 게일 서울지국장의 논평을 통해 전세계로 타전돼 국제적 망신까지 샀다. 24일 그의 트위터에는 아주 짤막하게 “한국 대통령이 자국 시위대를 IS에 비교했다. 정말이다.(South Korea's president compares local protestors in makes to ISIS. Really.)” 라고 쓰여 있었다. 대통령의 발언에 놀라움을 느꼈다고 강조하는 동시에 내용 자체를 도무지 믿기 힘들다는 뜻이다.

거침없이 던지는 박 대통령의 이런 발언은 콘크리트 지지층으로 둘러싸인 상황을 전체로 오인하면서 자신을 따르지 않는 이들이 소수라는 착각과 그에 기인한 이분법적인 논리에서 비롯됐다. 그의 실언이나 실책에 대한 조언은커녕 추임새 넣기에 바쁜 주변 인물들을 보면서 국민들은 자괴감에 빠진다.

도대체 왜? 대통령 스스로 공약을 뒤집고, 앞 뒤가 맞지 않는 유치한 말을 국민 앞에서 서슴없이 던지며 우롱하고 있는데 세상은 조용한가. 도대체 왜? 부끄럽고, 퍽퍽한 삶에 지쳐 힘 겨운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아프다는 말, 못 견디겠다는 말을 큰소리로 외치지 못하는가.

 

타인의 희생 단물만

 

국민의 지지를 받은 최상위 공약 중 하나인 경제 민주화를 뭉개고, 상위 10%를 지향하며 권력의 영속을 꾀하는 이들에 대항해 국민을 대변해 줄 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절망감. 또 그 역할을 해 줄 것이라고 기대했던 부류들의 이전투구에서 오는 좌절감. 지금 대한민국의 현주소이다.

노무현 전대통령은 취임 전이나 이후나 제대로 갖춰진 조직이 없었다. 때문에 사회 곳곳에 뿌리 깊은 비민주적이고 비자발적이고, 상명하달식이고, 권위주의적인 요소들를 타파하기 위해, ‘386’, 특히 학창시절에 이어 끊임없이 개혁을 기치로 사회 전분야에 걸쳐 나아간 이들 세대를 대거 등용했다.

그러나 노 전대통령은 ‘386’세대의 본질을 간과했다. ‘386’세대는 본질적으로 4가지 부류로 나뉘는 데, 정치적으로 접근했던 부류와 순수한 감정으로 참여했던 부류, 그리고 항상 시위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미안한 감정을 가지고 있는 부류, 아예 눈을 감고 다니면서 자신을 합리화시켰던 부류이다. 우리가 개혁과 맞물려 386이라고 부르는 세대는 앞의 3부류이다.

군사 독재정권과 줄곧 싸워온 첫 번째 부류는 상호 간 노선 투쟁이랍시고 또 쪼개지고 그가 추구해 온 개혁과는 너무 거리가 멀었다. 개혁의 기치를 앞세웠지만 소위 개혁을 위한 개혁일 뿐 자신들이 그토록 거부해 온 반개혁과 반민주를 타파할 수 있는 실행력이 없었다. 머리로는 결국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을 일깨웠을 뿐이다. 때문에 노무현 전대통령은 함께할 동지를 바랬지만, 습관처럼 ‘386’은 그를 활용하거나 그의 품 안에서 자유롭기를 원했을 뿐이다.

 

다시 처음으로 가라

 

아이러니 하게도 그토록 반대하며 싸웠던 시절의 분위기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강력한 리더를 원하는 수동적 자세를 갖게 했고, 김영삼 또는 김대중 전대통령과 같은 리더 뒤에 숨었던 ‘386’은 본질적으로 국민을 이끌 리더쉽이 부족했다. 그 원인은 정치로 뛰어든 대부분의 386은, 자신들은 부정하겠지만 누군가의 희생 위에서 결과물을 얻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 결과 노무현 전대통령의 386은 같은 386으로부터 등 돌림을 받으면서 몰락했다. 그러고도 아직도 비노니, 친노니 노선 싸움이 끊이질 않는다.

국민들이 절망하는 것은 국민을 무시하는 행태들이 아니라, 그에 저항해야 하는 구심체가 없다는 것 때문이다. 반민주와 비도덕, 부조리, 반독재가 살아가는 이유였던 대부분의 386이, 노무현이 지향했던 목표로의 동지적 발걸음에는 관심이 없고, 그를 팔아 자기 안위만을 챙기려는 타도의 대상이 됐다.

“「386」, 세상 좀 바뀌었니?”. 가진 것 놓치지 않으려 애쓰지 말고, 이젠 책임을 져야 할 때이다. 째째하게 굴지 말고 가슴을 쭉 펴라. 그리고 다시 거리로 나가라. 내일의 해를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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