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육가공관련업체와 축산관련업체들이 동시에 발칵 뒤집혀졌다. 햄·소시지 등 가공육과 붉은 고기가 암을 유발할 수 있다고 강력히 경고했기 때문이다.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가 지난달 26일(현지 시각) 육류 섭취와 암의 상관관계에 대한 800여 건의 연구조사를 재검토한 결과 소시지나 햄, 일정한 공정을 거친 육류, 붉은 고기를 섭취하는 것이 직장암과 대장암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붉은고기가 암 유발?

 

소시지의 나라 독일과 가공육을 즐기고 있는 호주에서는 농업장관 등이 기자회견을 열고 즉각적으로 반발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햄의 경우 저장기간을 늘리기 위해 첨가되는 아질산나트륨 등이 암을 유발한다는 점은 익히 알려져 있지만 이번 경우에는 소·돼지·염소 고기 같은 붉은 고기가 포함되면서 의학관계자들까지 너무 성급한 결론이 아니냐는 지적도 받고 있다.

가공육의 경우엔 소시지와 햄만 있는 것이 아니다. 베이컨, 핫도그, 육포는 물론 햄버거 속에 들어 있는 고기패트 등 대부분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선호하는 식품들이다. 이것들이 모두 담배·술·석면과 같은 1급 발암물질로 지정됐다.

가공육 제조 과정에는 질산염이나 보존제, 향미증진료, 발색제 등이 들어감으로 인해 건강에 유해할 수도 있다는 점이 지적돼 오고 있었지만 이것들은 모두 각 나라에서 허용되는 양만을 넣은 것이니 육가공업계가 반발하고 있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이번엔 아질산나트륨과 같은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아예 통째로 ‘가공육’이라고 규정한 것은 이전과는 색다른 모습이다.

특히 이번에 발암물질 2A군에 등재된 붉은 고기의 경우에는 이전엔 조리방법 등이 암을 유발할 수 있다는 지적은 다소 있었지만 모두가 암을 유발한다는 IARC의 발표는, 때문에 가공육보다 더 거센 반발을 받고 있다.

이 소식을 접한 농가는 어이없는 상태이다. “뭐시라 그럼 내가 여지껏 발암물질을 생산하고 있었단 말이여?”부터 “축산업을 하라는 말이냐 말라는 말이냐. 소·돼지가 암을 유발하는 식품이라면 정부가 나서서 축산업을 없애는 것 아냐?”까지 다양한 반응이다.

 

생산·소비자 모두 충격

 

심지어 누군가는 ‘음모론’을 제기하기도 한다. IARC의 ‘가공육의 DNA에서 아주 소량이지만 인간DNA까지 포함돼 있었다’는 발표에는 “아니 그럼 인간 고기도 포함됐다는 거냐?”며 충격적으로 받아들이는 소비자도 있다. 바로 그 점이 소비자들에게 또 다른 혐오감을 안겨줬다. 여기에 붉은 고기가 포함된 2A군 발암물질에 ‘다이옥신’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면 까무라칠 일이다.

물론 가공육이나 붉은 고기가 모든 암을 유발하는 것은 아니다. 직장암이나 대장암, 췌장암, 전립선암이 대상이다. 그것도 하루 50g을 1년 내내 먹을 경우에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암 유발이 18% 더 높다는 말이다.

정부의 통계에 따르면 한국인의 경우 2014년 기준 1인당 가공육 소비량이 4kg 이하이다. 이는 하루 10g에 불과하다. 이는 일본의 10.6kg보다 낮고 미국의 42kg에 비하면 턱없는 수준이다. 그러니 미국의 축산업계가 이번 발표를 두고 가공육 등이 인간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간단히 규명될 수 없음에도 이를 이론적으로 단순화했다고 노발대발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

그러나 이쯤에서 IARC의 발표에 궁금증이 인다. 육류부터 가공육까지 OECD 국가들 중 가장 적게 소비하는 부류에 속하는 한국인이 직장암과 대장암 발병률은 선두그룹에 왜 속하느냐는 것이다. 육류와 가공육이 이들 암을 유발하는 주요한 원인이라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연구 결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IARC의 발표는 바로 국내 육가공 소비에 직격탄을 날렸다. 몇 일 새 20%에 가까운 소비 감소를 보였다. 대형유통매장의 정육코너마다 발 길이 끊겼다.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 보기보다 헤드라인만으로 ‘아 가공육과 붉은 고기를 먹으면 암에 걸린다’는 공포감이 쫘악 퍼졌다.

 

조속히 기준 정해야

 

어린이들의 간식 걱정에, 당장 급식에서 햄·소시지와 돼지고기, 소고기를 빼라는 압박을 가한다. 소비자들만 어리둥절한 것이 아니다. 정작 국민에게 건강한 먹거리를 제공하려고 안전과 위생을 스스로 강화해 나가고, 그것을 자부하던 축산농가들은 더 혼란스럽다. 아무리 안전과 위생에 신경을 쓴다고 해도 그 자체가 발암물질이라니 말이다. 이건 동물복지나 친환경이나 무항생제 축산이 다 소용없는 짓이 돼 버리기 때문이다.

지금껏 악취나 거리제한에 대한 문제는 문제도 아니다. 축산업 자체가 완전히 오염산업이라는 ‘0바가지’를 뒤집어 쓴 꼴이다. 미국의 경우 햄버거에 들어가는 소고기 패트의 DNA를 조사하면 수 십여 마리의 각기 다른 DNA가 포함되어 있다. 게다가 비만과의 전쟁 선포 이후 패스트푸드를 포함한 가공육에 대한 규제도 강화됐다. 육류 과잉섭취도 문제가 되고 있다.

이러한 나라들의 경우와 우리의 경우를 같은 레벨에 놓고 판단하는 것은 어쩌면 섣부른 판단일지도 모른다. 때문에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조속히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 그래야 소비자나 생산자나 모두 판단이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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