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 경비대에 한우고기 전달식

‘독도 사랑·한우 사랑’ 한우자조금관리위원회와 전국한우협회 임원 50여명은 지난달 25일 ‘독도의 날’을 맞아 독도바르게알기운동본부와 손잡고 ‘독도 바르게 알고 사랑하기’ 캠페인에 동참하는 한편 독도를 방문해 독도 경비대가 1년 치 먹을 수 있는 한우고기 전달식을 가졌다.  김홍길 한우협회장은 “일본이 한국 재침탈의 구실을 삼아 지속적으로 자신의 땅이라고 우기는 독도는, 대한민국 영토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거센 파도를 홀로 온 몸으로 받으며 외롭지만 끈질기게 자신을 지키고 있다”면서 “이는 마치 한우산업의 처지와 비슷한 동질감을 느끼게 한다”며 이번 행사의 배경을 설명했다. 사진은 독도 접안 실패로 울릉도 독도경비대에서 전달식을 갖고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한우자조금관리위원회와 전국한우협회는 지난달 25일 ‘독도의 날’을 맞아 독도 바르게 알기 운동본부와 손잡고 ‘독도 바르게 알고 사랑하기’ 캠페인에 동참하는 한편 그 일환으로 독도경비대에게 1년 간 한우고기를 무상으로 지원키로 했다.

독도의 날은 고종 황제가 1900년 10월 25일 칙령으로 독도 주권을 선포한 날을 기념하기 위한 날이며, ‘독도 바르게 알고 사랑하기’ 캠페인은 일본의 치밀한 독도 침탈 전략에 맞서 독도에 관련된 역사적 사실을 제대로 알고 효과적으로 대처하자는 취지로 시작한 범 국민적인 운동이다.

이날을 위해 24일 한우자조금관리위원회와 전국한우협회 임원 50여명은 해병전우회, 학생, 미스코리아 대구·경북·독도 당선자 등 50여 명과 함께 포항에서 울릉도로 향했다.

 

하루에 한 번 운행되는 정원 920명의 울릉도행 여객선이 요란하다. ‘마음대로 들어와도 나갈 때는 마음대로 못 간다’는 섬으로의 출발이다. 대한민국의 끝자락, 일본의 끊임없는 도발 속에서 ‘나를 버리지 말라’는 무언의 울음을 안고 거친 파도에 떠 있는 독도를 찾아가려면 반드시 거치는 곳이 울릉도다. 울릉도보다 독도를 찾아 간다는 마음에 일행은 사뭇 들떠 있다. 일반 여행과는 또 다른 울렁거림이다.

배에 오르기까지 “독도에 대해서 얼마나 아세요?”라는 질문을 받을까봐 두려웠던 것도 사실이다. 정말 얼마나 알고 있을까? 스스로에게 물어봐도 별로 아는 것이 없다. 국민들의 애창곡 「독도는 우리땅」의 가사보다도 못한 지식을 가지고 “독도가 우리땅”이라고 주장해 온 자신도 부끄럽다. 「홀로아리랑」을 부를 때마다 갖게 되는 왠지 모를 애잔함의 실체를 한 번도 파고 들어가 보지도 못했다. “우리 껀데 그렇게까지 몰…”이라는 핑계였다.

하지만 알면 알수록 불행한 우리의 근현대사가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게 하고, 도피케 함으로써 미래를 우리 손으로 쓸 수 없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최근의 일본 아베 정권의 역사 왜곡과 역사교과서 국정화로 인해 근현대사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졌다.

황엽 한우협회 전무의 말처럼 우리나라의 역사를 한국사라고 부르는 것 자체가 왜곡이라고. 자신의 역사를 ‘국사’로 부르지 않고 제3자의 입장에서처럼 ‘한국사’로 부르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한다.

 

김홍길 한우협회장은 ‘독도 사랑 한우 사랑’ 행사를 하게 된 배경이 뭐냐는 질문에 한마디로 정의한다. ‘독도의 신세나 한우산업의 신세가 같기 때문’이라고. 묘한 울림이다. 그리고 한 번 더 생각하게 하고, 생각할수록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동질감이다. 애잔한 그 무엇이 가슴을 때린다.

한국을 침략하려는 일본 야욕의 시발점이 독도이다. 노구교 사건을 일으켜 중국 침략을 본격화했던 일본의 전략은, 조선침략을 위해 측량을 구실로 운요호사건을 발발시킨 재판에 불과하다. 재무장이 가능한 일본이 지속적으로 독도를 자국령이라고 우기는 것도 향후 재침략의 구실일 뿐이다.

일본은 광복 이후 한국전쟁 당시 1952년 독도를 미 공군의 폭격연습지로 빌려주려 했다가 후에 이를 알게 된 우리 정부의 반발로 백지화됐고, 1953년엔 일본인들이 독도에 상륙해 위령비를 파괴하자 울릉도 주민들은 스스로 ‘독도의용수비대’를 결성한 후 일본인들을 격퇴했다. 그러고도 일본은 줄기차게 도발해 오고 그때마다 우리는 울분에 휩싸였다.

한우산업도 마찬가지이다. 5000년 민족과 함께 해 온 한우가 산업으로 자리매김하기까지 숱한 고비를 넘겨온 데다 근래 30여년 동안 외국산 쇠고기의 수입과 축산 강국과의 잇따른 FTA 체결로 관세철폐라는 무장해제까지 당하면서 많은 영세 농가들이 생업을 접었다. 농축산업에 대한 정부의 무관심 혹은 홀대가 깊어지면서 현재의 한우산업은 물론 축산업의 신세도 거친 파도에 홀로 서 있는 독도와 똑 같은 신세다.

일본이 침탈한 36년 동안 울릉도 촛대바위 인근의 ‘강치’를 모조리 잡아 죽인 저들의 만행이 어찌 그것 하나 뿐이랴. 가는 곳곳 아직도 상흔이 남아 우리는 불끈불끈 화가 치솟는데, 국내 일부 학자들은 ‘평화를 훼손하면서까지 지킬 가치가 있는 영토란 없다’는 대한제국 시절 합방을 주장했던 일진회의 논리를 따르고 있는 것을 보면 억장이 무너질 뿐이다.

울릉도에서 독도행 여객선을 갈아타고 1시간여를 깊은 바다로 달려 갔지만 높은 파도는 독도로의 접안을 허락하지 않았다. 독도에서 직접 한우고기 1200만원 어치를 전달하고자 했지만, 그 척박한 땅위에 발을 딛고 ‘독도 사랑 한우 사랑’을 목청껏 외치고 싶었지만 희망은 이뤄지지 않았다.

한우인들과 독도탐방단은 그 아쉬움을 달래며 선상에서 퍼포먼스와 독도사랑 티셔츠 입기 행사에 동참하면서 독도수호를 외쳐보지만, 그 거센 파도 위에 홀로 선 독도의 모습을 보면서 조금의 힘도 보태지 못했다는 허탈에 선상을 돌며 조금이라도 더 얼굴을 내밀어 본다. “내가 왔다. 아니 나도 왔다. 우리가 지켜줄게”

독도를 대신해 울릉도 경비대를 찾아 전달식을 가졌다. 30~40명이 50일에 한 번씩 교대로 지킨다는 경비대원들과 연병장에서 전달식을 갖고 독도 사랑과 한우 사랑을 교대로 소리쳐 본다. 그 동질감에 서로를 위로하면서….

높은 파도로 왔던 포항으로 되돌아가지 못하고 묵호로 오면서 독도의 잔상이 남아 몇 일이 지나고도 독도는 내게 말하는 듯 하다. “나를 버리지 말라”는 그 애절함이 표현하기 힘든 울림으로 한꺼번에 밀려와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우리가 우리의 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힘이 있어야 한다”는 극히 일상적인 상식이 그곳에선 일상적으로 들리지 않았다.

동학혁명을 주제로 한 제5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나라없는 나라」에서 전봉준이 양반과 관리들을 표현한 말이다.

“저들은 후안무치한 자들이오. 의리를 이야기하고 선치(善治)를 입에 달고 살지만 모두 탐욕을 치장하는 말일 뿐 진심은 없었습니다. 이(利)가 난다면 진흙탕에 뛰어들고 똥구덩이라고 마다할 자들이 아니지요. 그들이 나라의 안위를 따져 가진 것을 내려놓기라도 바라는 거요? 제 가진 것을 빼앗기지 않으면 외방의 군사를 끌어오든 나라의 반토막을 내주든 상관하는 자들이 아니올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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