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제일의 유업체인 서울우유가 지난 7월부터 직원 월급의 일부분을 우유와 치즈 등 유제품으로 지급하고 있다. 직급별로 월급의 10~40%까지, 액수로 환산하면 임원의 경우 최고 250만 원 선이다. 타 기업들도 이와 비슷한 상황이다.

우유 공급량은 넘치는 데 소비가 이를 따라가지 못하면 가격을 내려야 하는 게 시장 경제의 논리인데 낙농의 경우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그 주범이 바로 ‘원유가격 연동제’라는 것이다.

 

농가입장에선 억울

 

아무리 시장의 상황이 어려워도 농가들의 생산비를 보장해 주는 제도 때문에 원유가 남아돌아도 우유 제품 값을 내릴 수 없어 소비자들은 비싼 우유를 사 먹을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얼핏 낙농가들이 제 밥그릇만 생각해 어거지를 써서 정부는 하는 수 없이 국민들의 세금으로 그들의 이기심을 채워주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원유가격 연동제’는 2013년 유업계와 낙농가들의 극한 대립을 절충하기 위해 시행된 제도이다. 원유는 생산성이 들쭉날쭉하고 쉽게 변질되어 저장성이 낮고, 젖소라는 생명체에서 생산돼, 인위적으로 유량을 조절하기 어려운 점 때문에 생산자들에게 안정적인 소득을 확보해 줘 생산을 지속할 수 있도록 가격을 일정하게 보장해 주기 위한 것이었다. 절충은 유업계와 낙농가들이 했지만 이를 중재한 정부는 이를 국내낙농산업 안정대책의 일환으로 삼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유가 공급과잉으로 낙농·유업계 전체가 힘들어지자 시도 3년차의 ‘연동제’의 불합리성을 부각시키면서, 마치 낙농가의 부도덕성이 원인인 것처럼 소비자단체까지 연계해 몰아붙이니 농가의 입장으로선 억울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다.

이는 생산자 측 이사들의 보이콧으로 10분여 만에 끝이 난 지난달 16일 열린 2015년 3차 임시이사회에서 잘 나타나 있다. 생산자 측이 빠지자 나머지 정부·학계·소비자·수요자 측 이사진은 이사회를 조기에 재소집하고 그때도 생산자 측이 거부하면 강도 높은 생산 조절안을 상정키로 결정했다.

 

왜 농가와 논의 않나

 

하지만 그 다음날인 17일 낙농육우협회가 “이사회를 개최하면서 ‘원유생산 감축안’을 그날 시행하겠다는 것은 이미 짜여진 안에 생산자들을 들러리로 세워 모두의 의견이 반영된 것처럼 포장하려던 의도 아니냐”는 성명을 발표한 것을 보면 그들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가 가는 일이다.

현재 ‘연동제’는 생산자들을 제외하곤 아무도 찬성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낙농가들은 지금 사면초가에 몰려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연동제는 낙농가가 막무가내로 떼를 써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지금의 공급과잉도 그 때문에 낙농가가 원유를 더 생산하려고 혈안(?)이 된 결과도 아니다. 엄연히 쿼터제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 생산한다고 그만큼의 돈을 더 벌 수 있는 구조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쿼터를 사야 한다.

농가들도 낙농산업의 어려움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 서울우유조합이 농가당 3마리의 젖소를 도태해야 한다고 할 때도 순순히 응했다. 낙농진흥회가 납유농가들의 젖소 3633마리를 처분한다고 할 때도 전체는 아니지만 많은 농가들이 따랐다.

잉여 원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조합의 ‘3마리 도태’ 방침에 3마리를 더해 6마리를 도축했다는 서울우유의 한 조합원은 “병든 젖소도 포기하지 않고 열과 성을 다해 키웠는 데 그 소들을 도축시키는 일은 감당하기가 참으로 어려웠다”고 심정을 토로했다.

농협중앙회 축산경제도 지난 16일 수급 불균형을 해소하고자 전국 16개 낙농 관련 조합을 대상으로 무이자 젖소 도태장려금 400억 원을 지원한다고 밝혔다. 이참에 착유소 중 원유 생산 절정기인 30개월령 이상 62개월령 이하 젖소를 50% 이상 의무적으로 포함시킨다는 것이다. 농가들은 하는 수 없이 제 자식처럼 키운 젖소를 또 도태시켜야 하는 입장이다. 낙농가들이 억울한 것은 ‘과잉’이 마치 농가들의 잘못인 양 호도하는 점이다. 올 6월 현재 쓰고 남은 원유의 보관목적으로 말린 분유 재고량이 26만4744톤이다. 작년보다 38%나 증가했다. 평년보다 기온이 높아 젖소 집유량이 많아진데다 사료 가격이 내렸고, 여기에 젖소 개량의 성과로 생산량까지 늘어난 영향이다.

 

가격 핑계로 압박만

 

소비는 2012년 가구당 월평균 구매액 1만4447원에서 1만2088원으로, 구매량도 5.79kg에서 4.92kg으로 줄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과, 호주·뉴질랜드와의 잇따른 FTA 체결에 따라 유제품 수입은 꾸준히 늘고 있는 상황이다. 백색시유 소비가 줄어든 대신 치즈와 탈지분유 등의 수요가 늘어나서이다. 유제품 중국 수출도 백색시유가 아닌 가공유나 탈지분유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낙농가들이 ‘연동제’에 손을 대려는 움직임에 거부반응을 일으키고 있는 이유도 이 같은 여건을 함께 고려해 정부가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절박함에 있다. 지금 ‘연동제’를 손봐야 한다는 정부의 무언의 움직임은 당장의 과잉을 해소키 위해 소비자를 끌어들여 낙농가를 압박하는 것으로 보인다. “왜 항상 정부는 제3자적 입장에서 비겁하게 농가에게 책임을 떠넘기는가?” 농가들의 항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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