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다. 수출만이 살 길이라는 슬로건 아래 미국·유럽은 물론 농업강국들과의 잇따른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면서 미약한 대책으로 느닷없이 한국 농업을 위기에 몰아넣고, 위기가 기회라고 자기 위주식 해석을 받아들이라고 강요한다.

김영란법에 농축산물의 선물을 황당한 뇌물(?)로 규정해 또 한 번 농축산인의 가슴을 쥐어 박더니 무역이득공유제를 도입해 피해 입는 산업을 보호하자니까 이익을 계산할 수 없다거나 자유시장논리에 맞지 않는다며 농축산인들의 주장을 ‘어거지’로 폄하해 버린다.

 

분란엔 항상 청와대

 

급격히 얼어붙은 소비 심리는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중국 시장의 침체로 대중국 수출량이 3분의 1로 줄어드는 판국에 정부는 별다른 고민이 없어 보인다. 전세 값 폭등으로 서민들은 울며 겨자를 먹으며 월세로 전락하고, 도시를 떠나 변방으로 쫓겨나는 신세다.

현금을 쌓아 놓고 있는 대기업에게 투자를 하고, 청년들을 고용하라고 설득하면서 각종 혜택을 주지만 하반기 오히려 구조조정을 하는 상황이다. 써야 할 돈은 늘어나는 데 가진 자에게 더 걷고 덜 가진 자에게 덜 걷어야 하는 형평성을 잃은 조세정책은 빈부의 격차를 더 벌린다.

건건히 문제만 생기면 낄 때 안낄 때 따지지 않고 청와대가 나서서 갈등을 조장하고, 그것을 ‘통합’이라며 또 아전인수식 해석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부터 깊어진 계층 간의, 세대 간의 골이 박근혜정부에서 더 깊어졌다.

이번엔 ‘역사교과서 국정화’다. 미국 방문에 오르는 날 예정에도 없던 수석 비서관회의를 긴급 소집하고 자신이 꺼낸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지침을 확실하게 내렸다. “역사 교육은 결코 정쟁이나 이념대립에 의해 국민을 가르고 학생들을 나누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올바른 역사관을 갖고 가치관을 확립해 나라의 미래를 열어가도록 하는 것은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우리가 필연적으로 해줘야 할 사명”이라고 못을 박았지만 그 ‘올바른 역사관’이 무엇인지는 알지 못하는 듯 하다.

정치를 비롯해 국가 경제·사회·교육 모든 부문의 중요한 과제들이 한 번에 빨려 들어갔다. 진보와 보수가, 보수와 보수가 또 나뉘었다. ‘친일과 독재 미화’가 화두로 떠올랐다. 시행 시기를 2017년으로 한 것에 대해서도 ‘박정희 대통령’ 탄생 100주년이기 때문이라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것도 박근혜 대통령이 지핀 불씨에서 비롯됐다.

 

‘올바른 역사관’ 궁금

 

국정의 모든 과제를 다 팽겨치고 이 시점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들고 나온 것을 아버지 박정희에 대한 ‘오마주(존경)’를 넘어 ‘맹신’이라고 지적하는 것도 많은 역사학자들의 반대에도 왜 국정화가 필요하느냐는 배경 때문이다. 여기에 아버지 친일의 화인(火印)을 지울 수 없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까지 합세하고 나서면서 의혹을 사실로 여기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최근 영화 「암살」과 「베테랑」이 10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암살은 친일파를, 베테랑은 재벌 2세의 삐뚤어진 행태에 대한 단죄이다. 1000만 관객이 두 영화를 봤다는 것은 그만큼 관심이 있다는 말이다. 특히 암살의 경우 친일의 문제를 부각시킴으로 인해 최근의 역사 문제를 더욱 관심있게 만들었다.

“가족을 위해서, 민족을 위해서, 어리석은 백성을 위해서…”라고 적극적 친일파 강인국은 말한다. 독립운동가에서 변절해 독립운동가를 색출하는 염석진은 “독립될 줄 알았으면 누가 그랬겠느냐”고 반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옥윤은 “왜 싸우느냐”는 질문에 “알려줘야지. 아직도 우리가 싸우고 있다는 사실을…”이라고 간단하게 대답한다. 친일의 변명과 독립운동의 이유가 아주 극명하게 나타나는 대목이다.

역사는 흐르는 물과 같다. 아무리 거대한 바위가 앞을 막고 있어도 물은 아래로 흐르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단지 옆으로 가거나 그 바위를 밀고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역사의 물줄기를 막으려는 행동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일이다. 시간은 지나면 되돌릴 수 없고 지나간 시간은 그대로 과거가 되고 역사가 된다. 잘못된 과거는 앞으로의 교훈으로 삼을 수 있지만 돌이킬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

 

교훈 삼으면 될 일을

 

고등학교 2학년 때 급훈으로 ‘역사의 주인공은 승자이다’라는 액자가 칠판 옆 위 쪽에 걸려 있었다. 무언가 잘못된 것 같았는 데 도무지 반박할 지식이 없었다. 아마도 당시 담당교사는 너희도 승자가 되려면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가라는 뜻으로 걸어놨겠지만 그 급훈은 아직도 뇌리에 남아서 생각을 방해해 왔다. 그러다 당시의 기억이 떠오른 건 박근혜 대통령의 역사관에서였다. 고맙다고 해야 할지 아님 획일화 악몽의 되살아남을 비난을 해야 할지 감이 오질 않는다. 대통령의 역사 인식에 혀가 찰 뿐이다.

다까끼 마사오(高木正雄). 아버지 박정희의 창씨개명이다. 조선민족의 냄새가 난다고 다시 작명한 이름이 오카모토 미노루(岡木實)이다. 한편에서는 근대화를 이룩한 분으로, 한편에서는 독재자로 극명하게 평가받는다. 누구나 평가는 갈린다. 어느 평이나 틀리지 않는다. 그것을 한쪽으로 몰고 가려는 시도는 오히려 그의 친일 행각만 더 들춰낼 뿐이다. 하늘은 손바닥으로 가려지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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