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청와대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문재인 대표가 합의한 ‘안심번호 국민 공천제’를 강하게 비판했다. 민심을 왜곡하고, 조직으로 선거를 치루게 될 것이며, 국민의 피 같은 세금으로 공천을 받는 것이 우려된다는 이유이다.

여야 대표가 합의한 내년 4월 치룰 총선 공천룰을 청와대가 공개적으로 거부한 것이다. 이 대목에서 궁금증이 생긴다. ‘청와대가 공개적으로 저렇게 행동해도 되는가’다. 여당 공천에 개입하겠다는 의도인데 무슨 생각인지 자못 궁금하다. 대한민국은 삼권이 분리 독립된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는 여태껏 알아온 정상적인 상식이 ‘비정상적’으로 보이는 이러한 혼란스러움은 단지 개인의 생각일까. 그러나 그러한 ‘역발상’을 이해하고 나면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부터 내세운 ‘비정상의 정상화’를 이해 못할 것도 없다.

 

삶이 너무 버거워

 

그러나 “아 저 사람의 사고방식이 이렇구나” 이해했다 하더라도 그것을 모르쇠 하기엔 우리의 삶이 너무 힘에 겹다. 왕으로 모시기엔 울컥 거리며 속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울화를 참을 수 없고, 학창시절 전반을 정치군인과 싸움질해 왔던 386·486세대로선 많은 희생으로 비로소 일군 지금의 대한민국이 다시 옛날로 돌아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 없기에 더욱 그렇다.

대다수의 국민은 ‘안심번호 국민공천제’나 ‘오픈프라이머리’가 뭔지도 모른다. 왜 저네들이 정치적 생명을 건다고 하는 지에도 별 관심이 없다. 누군가는 강제와 획일적 사고방식을 강요하고, 물가를 힘으로 잡았던 과거가 좋았다고 하지만 시대의식은 강요와 권력으로 누르면 누를수록 반탄력이 더 커질 뿐이다. 결국 부작용을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는 의미이다.

일부 아시아와 아프리카 국가에서 ‘새마을운동’을 연구하고 국책사업으로 채택할 의욕을 보이자 박 대통령은 마침내 유엔개발정상회의에서 빈곤 퇴치와 지속가능한 세계발전의 패러다임으로 새마을운동을 제시했다. 새벽종이 울리면서 시작된 새마을운동은 가난을 이겨낼 근면과 성실을 국민들에게 강압적으로 심어주어 경제성장의 한 단편을 제공하기는 했지만 그 개발독재시대에서 많은 것들이 희생된 것도 사실이다.

구중심처에서 ‘모심’만 받았던 그가 그러한 속내를 알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주변엔 온통 아버지의 치적 모시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신하들 뿐이었을테니까 말이다. 그런 사고방식으로 세상을 보니 40년이 지났지만 그 당시에서 조금도 나아가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때문에 그를 둘러싼 40여년의 세월이 ‘비정상적’이었을 터이다.

 

주변은 박수 부대뿐

 

왕은 명령만 내리면 된다. 항명은 곧 반역이요, 반역은 3대가 멸족이다. 그러나 각 시대마다 올곧은 신하가 있어 바른 소리가 울렸고, 잘못된 정책엔 백성들의 저항이 있었다. 요즘엔 그것조차 보이지 않는다. 대통령의 눈빛에서 레이저가 쏘아진다며 머리 희끗한 노정치가나 행정가가 머리 조아리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보니 말이다.

그에게 머리 조아리는 것은 순간이지만 그것으로 얻어진 권력의 무게는 조아리는 그 이상으로 크기 때문일까. 그것을 보는 국민들은 창피함과 수치스러움을 넘어 억장이 무너진다. 대통령 한 마디가 법이다 보니 정부의 정책도 혼선에 혼선을 빚는다. 번뜩이며 떠오르는 생각을 즉석에서 내뱉으면 관료들이나 정치인들도 자신의 생각과 몰고 올 파장에 상관없이 온통 박수로 ‘창조적’이라고 추임새를 놓는다. 그러는 동안 국민들의 삶은 팍팍해 진다.

한 일간지가 2007년부터 2015년까지 세계경제포럼의 국가경쟁력 평가 9년치 114개 세부항목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관료부문 경쟁력이 크게 약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정책결정 투명성’에서 올해 140개국 중 123위에 그쳤다. 89계단이나 하락했다. 일본(12위), 대만(15위), 말레이시아(17위), 중국(36위), 인도(58위), 인도네시아(66위)에도 한참을 뒤진 결과이다. ‘의사결정 편파성’ 80위로 다른 아시아 관료들에 비해 관료의 공정성이 크게 뒤떨어졌다. ‘지출 낭비’ 70위, ‘공공자금의 전용’ 66위 등 공무원의 부조리와 부도덕이 심각하다는 점을 반증한다.

 

‘반발’엔 이유가 있다

 

이 결과 대한민국의 국가 경쟁력도 2007년 11위에서 올해 26위로 떨어졌다. 상황이 이런데도 철밥통을 깨는 공무원 혁신은 던져놓고, 이 모든 원인을 노동문제 탓으로 돌리고 임금피크제나 쉬운 해고 등 민간부문의 개혁을 강요하고 있는 꼴이다.

노동개혁에 있어서 노동자들이 반발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청년 실업 해소’라는 묘수(?)를 던져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한 발 물러서긴 했지만 먼저 제 살을 도려내지 않고 남의 살을 도려내려는 태도에는 결코 신뢰가 쌓이지 않는다. 어려울 때 일수록 상호 신뢰가 있어야 하고, 신뢰가 생길 때 희생과 화합이 뒤따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엔 ‘공무원 민간 근무 휴직제’ 대상에 대기업을 허용하면서 친재벌·친기업 정책에서 ‘민관유착’의 길까지 터 놨다. 민간 기업과의 교류를 통해 우수한 공직사회 자원을 적정하게 활용하겠다는 취지란다. 개혁을 하랬더니 딴 짓거리다. 무지를 지적하지 않고 무지인줄 알면서도 행하는 그 고리가 끊어지지 않으면 급변하는 국제시대에 우리만 뒤쳐질 뿐이다.

저작권자 © 축산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