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에서 종돈을 키우던 한 종돈업자는 골프장이 들어서면서 종돈장을 비롯 여유분의 땅에 대한 보상을 받았다. 가뜩이나 어려운 축산환경 때문에 접고 싶었는 데 생각 이상의 보상금을 제시해 수십 년 동안 해 오던 축산업을 포기했다.

“나이도 있고 몇 명의 자식들 중에서 이 일을 이어 하겠다는 놈도 없으니 아쉬움은 많이 남지만 그래도 참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남들은 그만두고 싶어도 이런 기회를 얻지 못할 뿐만 아니라 떠밀리다시피 정리를 하더라도 그동안의 대출금 등을 갚고 나면 아무 것도 남는 것이 없으니까 말입니다.”

 

입장 바뀌니 생각도…

 

그런데 그는 묘한 말을 했다. 축산을 정리하고 그곳에서 조금 떨어진 물 맑고 공기 깨끗한 곳에 전원주택을 짓고 1년 여를 지내면서 인근에서 나는 냄새에 신경이 쓰이더란다. 손주들이 내려올 때마다 한마디씩 던지는 짜증섞인 말에 처음에는 ‘이것이 시골냄새다’고 설명했지만 익숙지 못한 손주들이나, 농촌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자식들까지 도시물을 먹어서 그런지 좋은 표정은 아니란다.

가끔씩 놀러오는 손주들 때문에 적적한 시간을 떼우기는 했는 데, 그네들의 나이가 들면서 오는 횟수도 줄어 ‘냄새 때문에 안오는 것은 아닐까’하는 의문도 들었다고 한다. 자신에겐 그 냄새가 고향의 냄새요, 삶의 냄새여서 ‘다시 축산을 해 볼까’ 하는 동기를 부여하지만 누군가에겐 거부감으로 여겨진다는 것을 이제사 알게 됐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그 애착이 가는 냄새가 어느 순간부터 싫어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냄새에 관해서는 양축농가들은 억울한 면이 더 많다. 주변의 경종농가들의 거름냄새는 차치하고 악취의 근원을 양축농가에게서 찾는 것도 그렇고, 냄새를 덜 피우기 위해 주변을 정리하고, 청소하고 심지어 측백나무까지 심고 있지만 민원은 사그러 들지 않는다. 그 민원인 속에서 경종농가를 발견하게 될 때는 그 배신감에 끓는 화를 삭히지도 못하고 헛웃음만 지을 수밖에 없다.

여기에 이제는 민가 근처에선 양축을 할 수도 없게 법이 정해졌다. 귀농과 귀촌인들이 붐을 이루면서 지자체는 그들을 한 명이라도 더 유치하기 위해 환경 규제를 더욱 강화하거나, 이미 관내로 들어온 그들의 생활을 윤택하게 한다는 명목으로 자리잡고 있는 양축가를 더 밖으로 내몬다.

 

저항해 보지만 허사

 

그렇게 정해진 법규를 이행할만한 자금의 여력이 없는 영세 농가들의 잇따른 폐업은 그 자리를 대기업들이 메우고 있고, 더 깊숙이 침투하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만 노리고 있다. 생산자단체들을 중심으로 ‘대기업의 축산 진출은 자영농가를 노동자로 전락시킨다’며 강력하게 저항해 보지만 이도 저들에게는 발악(?)이요, 떼법(?)으로 보일지 모른다.

축산업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긍정적으로 바로 잡겠다고 생산자단체들을 중심으로 ‘나눔축산운동’을 본격적으로 전개해 온 지도 5년 째에 접어들지만 자체 내의 연구용역 결과 ‘많이 개선됐다’고 하는 것도 어쩌면 자의적 해석일 가능성이 크다. 주변을 통해 전해 듣는 경험적 수치는 훨씬 미미하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나눔축산운동본부가 사단법인으로 출범했지만 농협중앙회 사업부서의 기부금이나 중앙회 직원들의 급여 중 일부를 떼어내거나 일선조합과 그 직원들의 참여로 유지되거나, 생산자단체 직원들의 몫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개인 농가들과 관련단체들이 적다는 것은 뭔가 아귀가 맞지 않는다. 아직 농가들은 심각성을 모르거나 그들을 향한 단체들의 적극인 계도가 미비했다는 것의 반증이기도 하다. 때만 되면 해 오는 형식적인 나눔은 받아들이는 입장이나 전하는 입장이나 보는 관객에게도 형식적일 뿐이다.

경제단체들의 입장이 달라졌다며 축산업계는 배신감으로 분노하지만 따지고 보면 협약이었을 뿐이다. 아무런 강제성도 없는 문구에 축산업계만 헛물을 켜고 있었을 뿐이다. 전경련이 FTA의 가장 큰 피해자인 농축산업과 무역이득공유의 일환으로 기업 급식 식자재의 수입농축산물을 국내산으로 교체한다는 데 원칙적으로 합의했다고 하지만 정작 농축산업계가 ‘무역이득공유제’를 들고 나오자 철회했을 뿐이다.

 

머리로 이길수 없어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거 봐라. 물에 빠진 사람 구해줬더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땡깡(?)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무역이득공유제를 내세우고 그것을 관철하기 위해서는 포기해야 할 것들도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일 뿐이다.

지금 축산업계가 요구하는 것들은 밖의 입장이나 그 반대의 입장에서 보면 한결같이 자신들만의 요구로 보인다. 무역이득공유제가 그렇고 김영란법의 농축산물 포함이 그렇고, 무허가축사와 연관된 것들이, 대기업의 축산업 진출 반대가 다 그렇다.

지금 축산업은 벼랑 끝으로 내몰려 까치발을 들고 서 있는 형국이다. 떨어져야 할 것이냐 아니면 죽을 힘을 다해 앞으로 내달려야 할 것이냐를 고민만 할 것이 아니다. 내 편도 입장이 바뀌면서 생각도 바뀌고 있다. 정부를, 대기업을, 국회의원을 대상으로 어설픈 머리를 써가며 전략을 짜내 봐야 뻔한 결과다. 지금은 결정할 때이다. 생산자단체를 중심으로 결집해 정부에게 자급률을 설정해 기본틀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농촌을 대변하지 않으면 표를 주지 않겠다고 국회의원을 몰아부쳐야 한다. 지금은 결정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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