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환경·도전에 직면한 한우산업 해법은?

최근 한우고기의 새로운 숙성법으로 인기를 모으고 있는 드라이에이징 한우의 숙성 모습.
 

‘그라스 랜드’ 소고기 할인점까지

국내 최대의 유통 할인판매점인 이마트의 정육 부문은 최근 새로운 아이템을 선보여 주목받고 있다. 호주의 목초 사육 소고기 ‘그라스랜드’가 그것이다.

포장육에는 ‘대자연이 키운 건강한 소’라는 설명에 풀(조사료)과 소의 그림을 넣었다. 매장에는 호주의 넓은 자연에 방목하며 ‘목초 사료’만으로 스트레스 없이 키운 건강한 소고기라는 홍보물을 부착하고 넓은 매대를 확보하는 등 본격적인 판매에 나섰다.

‘그라스랜드’ 소고기는 샤브샤브용과 우둔산적, 앞다리 불고기 등 다양한 부위를 저렴한 가격(100g당 평균 2280원)에 판매 중이다.

그동안 호주산이나 미국산 소고기는 고소한 맛을 선호하는 한국 소비자들의 입맛을 공략을 위해 수출 물량분에 대해서는 비육후기 일정 기간 이상 피드랏(Feed Lot)에서 사육해 수입해오던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최근 저지방·웰빙과 친환경 축산물에 대한 소비자들의 높은 요구에 따라 마블링이 전혀 없는 목초 사육 소고기를 병행 수입하고 있다.

이같은 배경에는 또 최근에 호주와 미국에서는 지방이 적은 소고기가 선호되고 있는 반면, 국내에서만 유독 근내지방이 침착된 소고기가 인기를 끌고 인정받고 있다는 보도가 지속되면서 국내 소비자들의 소고기 소비패턴과 구매 의향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분석된다.

목초로 키워진 ‘그라스 랜드’ 소고기는 지난해 신세계백화점의 프리미엄 식품관인 SSG마켓에서 한우고기를 통해 먼저 선을 보였다. 상위 소득 소비층을 타깃으로 공급됐던 목초 사육 소고기가 수입육을 통해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할인점으로 파고들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근내지방=고급화 정의 재고해야

저지방을 선호하는 소비패턴은 축산업계 전체에 걸쳐 나타나고 있다. 닭고기 부위 중 다리살이 최고 인기를 구가했던 것은 이제 옛말로, 가슴살이 소비를 주도하고 있다. 지방에 대한 기피현상으로 최근 삼겹살 소비가 크게 주춤하는 대신 앞·뒷다리살 소비가 삼겹살 소비의 감소된 소비를 지탱하고 있는 모양새다. 우유역시 시유와 요거트 부문에서 저지방·저열량 열풍이 거세게 확산되면서 업체마다 앞다투어 ‘저지방’‘무지방’ 제품 출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처럼 국내 축산업계 전체가 변화하는 소비패턴에 긴밀히 대응하고 있는 반면 한우산업은 현재의 고열랑 시스템 사육방식에 업계 전체와 농가들이 몰두하고 있다.

해마다 각 도나 지역, 또는 전국단위로 고급육 품평회를 개최, 가장 높은 등급의 한우고기를 생산한 농가에게 각종 상을 수여하며 이를 독려하고 있다. 브랜드경영체 역시 1+등급 이상 생산농가에게 장려금을 지급하고 있다. 강원도 H브랜드의 경우 NO.9을 생산하는 1++등급 농가에게 100만원을 지급하고 있으며 전남의 S브랜드도 ++등급을 생산하는 농가에게 80만원을 지급하고 있다. 농축산부가 진행하는 축산물 브랜드경진대회에서도 1++등급 출현율을 평가 항목으로 정해 이를 기준으로 삼고 있는 등 농가들을 여전히 고급육 생산에 전념케 하는 시스템이 고착화 되어 있다.

여전히 한우업계 내부에서 ‘한우의 경쟁력=근내지방도=품질고급화’라는 인식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다수의 업계 관계자들은 “아무리 건강식을 선호한다고 하지만 한우에서 1+등급이나 1++등급이 아니면 수입육과 어떻게 차별화할 수 있겠느냐”면서 근내지방을 중심으로 한 등급체계와 마케팅을 지속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2~3등급 한우고기 가격의 약진과 최근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는 양지와 목심 등 저지방 부위의 소비 활성화는 근내 지방이 아니더라도 한우는 그자체로서 얼마든지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어서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이마트에서 선보이고 있는 호주산 목초비육 쇠고기 '그라스랜드'.

생산비 절감 현재 시스템으로는 불가능

국내 소고기 소비시장은 FTA 체결로 해마다 관세가 허물어져 미국의 경우 2026년에 호주는 2028년, 캐나다는 2029년에 소고기에 부과하는 관세가 모두 철폐된다.

때문에 한우업계에선 지금보다 최하 30% 넘게 싸게 공급될 수 있는 수입육과의 가격 경쟁력을 어떻게 확보할 지에 대한 고민이 깊다. 그러나 사료의 대부분을 외국에서 수입해 써야하는 국내 여건에서 현재의 생산비를 줄일 수 있는 묘안은 그리 많지 않다.

더욱이 고급육으로 분류되는 1+등급 이상의 한우고기 생산을 위해서는 배합사료를 원료로 한 사료를 장기간 급여해야 해서 한우고기의 생산비 경쟁력은 더욱 낮아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따라서 업계 내부에선 소비자들이 요구하는 적절한 마블링의 한우고기와 함께 생산비를 낮출 수 있는 새로운 사양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국내 최대의 한우 계열화 사업체인 ㈜민속한우의 경우 목표 등급을 1등급으로 조정한 대신 육량을 늘리고 사육월령을 30개월에서 27개월령으로 앞당기는 프로그램을 가동 중이다. ㈜민속한우에 따르면 30개월령까지 사육할 경우 고급육 생산과 정육율 향상으로 마리당 40만원의 추가 소득이 발생하지만 3개월 기간의 출하 연장시 사료비는 약 60만원이 투입돼 등급 목표치를 낮춰 월령을 앞당기는 것이 소득측면에서 오히려 도움이 된다.

권혁수 ㈜민속한우·㈜민속LPC 대표이사는 “무조건 1+등급 이상에 매진하는 방식이 아니라 농가는 가장 높은 이익을 취할 수 있는 등급 목표와 출하 월령을 계산하는 사양방식을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어떻게 할 것인가

“1++ 등급 생산을 못하면 죄책감마저 듭니다.”

전북 고창에서 20여년 넘게 한우를 사육해온 한 여성 축산인의 하소연이다.

지역에서 한우를 키우는 여성 축산인들이 모여 결성한 한사랑회의 임원이기도 한 그에 따르면 한우의 등급별 출현율은 농가들의 소득지표인 동시에 성적표가 되고 있다. 1+등급 이상 생산농가는 우등생, 2~3등급 이하 생산 농가는 열등생으로 분류되고 경쟁이 가열되면서 고급육을 생산하지 못한 농가들의 패배감과 상실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근내지방 중심의 등급체계와 마케팅은 ‘근내지방도=높은 품질=고급육’으로 고착되고 상위 등급 생산 농가들에게는 높은 소득을 보장해주면서 필연적으로 모든 농가와 산업이 1++생산에 목표가 맞춰쳐 있다.

그러나 최근 등급출현율 추이를 보면 한우고기의 육질등급은 소폭 증가하고 있는 반면 도체중 증가율은 둔화되고 육량 C등급 출현율이 크게 늘고 있어 육질위주의 사양방식에 한계가 온 것이 아니냐는 진단이 제기되고 있다. 더욱이 1등급 이상 한우고기는 지방함량이 높아 다이어트와 건강에 좋지 않다는 인식이 높아지면서 다양한 소비자들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사양체계와 소비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에 더욱 무게가 실리고 있다.

이를 위해선 서열식 등급제로 등급이 높은 고기가 좋은 고기로 인식돼온 현재의 마케팅 시스템을 이원화해 새로운 소비를 창출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전 카길 아태지역 육류수출책임이사를 지낸 킵 리차드슨(現 어센틱 미트 대표)은 “가정용 소비에선 주부들의 건강을 중시하는 구매 영향으로 마블링 적은 소고기가 인기가 있는 반면 식당용으로는 시각과 맛을 중시하는 경향으로 높은 등급 소고기가 인기”라고 말했다.

고급육 시장은 ‘특화된’ 외식용 소비시장으로 유지하되 2등급 이하의 한우고기에 대해 적극적으로 홍보하면서 생산비가 적게 드는 한우고기 생산과 함께 소비자들의 다양한 요구를 수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축산물품질평가원은 대형 마트의 정육코너에 ‘1등급 이상은 풍미가 좋고 부드러운 맛을 느낄 수 있으며, 2등급이하 소고기는 지방이 적어 담백하다’는 팜플릿을 통해 홍보하고 있지만 보다 적극적 수준의 마케팅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국가별 연간 1인당 소고기 지방 평균 섭취량은 우리나라가 1.1㎏ 수준이어서 우려할 만한 수준이 아니다’라거나 ‘지방이 싫은 사람은 2~3등급을 먹으면 된다’는 정부와 업계의 대응은 한국인들의 심각한 지방 기피 현상을 지나치게 안일한 방식으로 축소·대응하는 것이어서 한우고기가 건강이나 다이어트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인식을 방조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한우브랜드 경영체별로 1+이상 등급에만 지급하고 있는 출하장려금 등을 전격 폐지해 모든 농가와 산업이 높은 등급을 얻기 위해 매진하고 있는 현재의 경쟁적 사양 관리체계도 개편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확산되고 있는 저지방 건강식 열풍은 1+등급 이상육의 도매시장 가격에도 서서히 영향을 미치고 있어 높은 등급 소고기 생산을 정예화해 생산량을 조절해야만 현재의 높은 가격을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건강을 지향하는 소비 추세가 더욱 확산되는 가운데 자칫 1+등급 이상 생산에만 몰입할 경우 한우농가들의 소득 구조 붕괴와 더 큰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는 진단이다.

근내 지방 위주의 등급제와 이에 따른 사양방식, 마케팅은 그동안 한우산업을 지탱해온 버팀목이자 경쟁력이 분명했지만 이제 새로운 대안을 모색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옥미영 기자 omy@chukkyu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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