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A 체결이 뒤따르자 농민단체들을 중심으로 ‘무역이득공유제’를 실시하자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됐다. 물론 정부는 관심조차 두지 않았다.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까지 나서 FTA로 누가 어떤 이득을 보게 되는 지 알 수도 없으니 논의할 가치도 없다고 했다. 하도 귀찮게 구니까 도입이 타당한지 여부를 연구 용역이라도 줘, 짜여진 객관성을 내세워 농민단체들의 논리가 잘못됐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었으리라.

무역이득공유제 전도사 역할을 자처하고 있는 새정치연합의 유성엽 의원은 국감에서 이에 대해 캐물었다. 연구 용역보고서가 충분한 검토를 거치지 못한 채 졸속으로 작성됐다는 점을 지적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을 대상으로 한 증인 신문에서 용역보고서가 5월초 의뢰돼 불과 한 달 만에 작성됐으며, 다른 용역보고서에 비해 이례적으로 기간이 짧았다고 인정하게 했다. 이를 근거로 정부의 연구 용역이 ‘요식행위’라고 지적했다.

 

연구용역 요식 행위

 

무역이득공유제가 힘을 얻기 시작하자 일부 언론은 사설에서 직접적으로, 또는 교수를 포함한 연구원의 기고를 게재하면서 ‘국정을 발목 잡는’이라던가 ‘표 챙기기’로 몰아붙이고 있다.

사례 1=사설

“…정치권이 무역이득공유제의 본질이 뭔지 제대로 알기나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이것은 일부 농민단체들이 주장하는 것이다. FTA 반대로 더 많은 지원을 얻어내겠다는 의도가 숨어 있다. 과거 동반성장위원회가 들고 나온 초과이익공유제만큼 황당한 발상…FTA로 기업이 얻은 이익을 따지는 것부터가 그렇다. 당장 기업의 수출 증대가 FTA효과로 인한 것인지, 기술혁신이나 생산성 향상 노력에 따른 것인지 누가 가려낼 수 있겠나…”

 

일부 식자층 농업관

 

이 대목에서 한 번 묻자. FTA로 이득이 생기지 않는데 그럼 왜 하느냐고 말이다. 그럼 왜 FTA를 하면서 정부는 손실보다 더 많은 수익이 날 것이라고 홍보했는지 말이다.

사례 2=대학총장의 기고

“…최근에는 자유무역협정으로 이익을 얻었으니 농촌에 베풀라 다그치고 있다. 일명 ‘무역이득공유제’다. 그럴싸 해 보이지만 과연 그럴까? 자동차의 경우 한·미FTA는 2012년 체결됐는 데, 대미수출은 2011년 89억달러에서 지난해 150억달러로 늘었다. 그러나 수출 관세율은 2.5%로 체결 전후와 변함없었다. 반면 수입 관세율은 8%서 4%로 낮아져 3억8000만 달러에서 9억8000만 달러로 1.7배 증가했다…축산물 수입은 13억 2000만달러에서 13억 달러로 줄고 수출액은 51만 달러에서 153만 달러로 3배 증가했다. 세간의 인식과 달리 농축산업은 선전하고 자동차산업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기업 실적은 환율, 임금 등 다양한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 증가분을 어떻게 선별하겠다는 건지 알 수 없다.”

이익을 볼 것으로 예상했던 자동차산업이 FTA 때문에 어려워졌다면 당초 FTA의 기대효과를 잘못 설정한 정부의 책임이다. 그의 말처럼 이득 보는 산업이 정말 없다면 문제는 더 크다. 그리고 153만 달러 규모의 수출로 국내 축산업이 오히려 나아졌다는 주장은 옹색하기 그지 없다. ‘농민들이 베풀라 다그친다’는 시각은 일부 식자층의 농업관을 그대로 보여준다.

사례 3=연구위원의 기고

“…FTA의 목적은 비교우위 경쟁력이 있는 상품을 서로 교환함으로써 FTA 참가국 국민 모두의 후생을 증진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국은 스마트폰, 호주는 소고기에 비교우위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호주는 스마트폰을, 한국은 소고기를 값싸게 먹을 수 있어 두 나라 국민 모두 이익을 보는 것이다.”

여기서 이 사람이 이야기하는 국민이란 도대체 누군가? 농업에 종사하는 또는 비교 열세의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국민의 부류에서 제외되나? ‘국민 모두가 이익을 보는 것’이라는 차원에서 농민단체들은 ‘무역이득공유제’를 입법화해 달라는 것이다. 이어가는 그의 주장은 가관이다.

“호주산 소고기를 수입하면 한국 축산농가는 사라지는가. 그렇지 않다. 자유무역에 점진적으로 노출될 경우 축산농가가 생존하기 위해 더욱 자체 경쟁력을 높인다. 시장개방에 맞서 세계적인 고급 소고기브랜드 ‘와규’를 생산하는 일본이 좋은 예이다…보호를 계속하면 오히려 경쟁력이 더욱 떨어진다…이익을 나누면 수출 증대 동기 부여가 안된다…”

 

‘떼쓰기’ 명백한 왜곡

 

아마도 교수 세계나 연구원이 ‘세계화’ 문제의 핵심에 있었어도 이런 주장을 할 수 있었을까? 나의 일이 아니라고 쉽게 이야기하는 것도 한국 경제를 연구하는 한 사람으로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국 경제가 발전할 수 있었던 계기는 강력한 산업 보호와 전략적 수출에서 비롯됐다. 비교우위랄 것도 없던 시절 머리카락까지 팔아가면서 외화를 벌고, 철저히 수입을 통제하면서 벌어들인 외화를 개발에 투자해 왔기 때문이다. 지금 논리대로 비교우위의 전략을 썼다면 아마도 우린 경제 대국으로 성장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뻔히 한국 경제성장 과정을 알고 있는 학자가 지금 이 시점에서 비교우위를 논하는 것은 억지다.

농민들이 무역이득공유제를 들고 나서는 것은 ‘떼쓰기’가 아니다. 살아 갈 정당한 권리의 주장을 ‘부도덕’으로 몰고 가는 것은 명백한 매도이자 왜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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