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0일 시작돼 70일동안 한국 사회를 마비시킨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이 지난달 28일 사실상 종식됐다. “그봐 아무 일도 아니라고 그렇게 말했는데도 괜히 호들갑을 떨더니…. 침소봉대(針小棒大)하고, 과장하는 조선 사람의 근성을 못버렸어” 정부나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는 듯 하다.

하긴 사망자가 겨우(?) 36명에 불과하고, 감염자 186명일 뿐, 폐렴환자의 사망률과 비교하면 세발의 피인데 말이다. 그 70여일 동안 정부의 감염병 위기대응 능력이나, 의료기관의 관리 실태, 환자들의 의료쇼핑 관행까지 한국 의료 현실의 민낯을 똑똑히 보았다.

 

“니들이 알아서 하라”

 

이참에 ‘한국의 의료 현실을 고치자’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지만 ‘과연 제대로 될까?’의 의구심만 남는다. 왜냐, 초기 메르스의 불씨를 키운 것은 ‘정부의 무능’인 데, 이에 대한 책임도 사과도 없이 또 어물쩍 넘어가면서 그 책임을 ‘의료 현실’로 돌리며 어쩔 수 없었던 천재지변으로 삼으려 하니 말이다. 십 수 년 동안 되풀이 되어 온 FMD와 AI 발생 후 정부의 대응책을 보면 뻔한 결말일께다.

정부 당국의 책임자가 책임지지 않는 행위는 뭐라고 설명해야 하나. 여기에 항상 나오는 대책의 요지를 보면 진영의 논리를 내세워 국민들 사이를 이간시키고, 갈등을 키워 ‘네 탓 타령’의 수렁으로 밀어 넣으며 싸움판을 만들고 결국엔 ‘아몰랑, 니들이 알아서 하라’는 식이다.

일본이 위안부(클린턴 전 미국방장관이 표현한 성 노예가 정확하지만, 우리는 아직도 그렇게 부르지 않는다)나 징용문제에 사과하지 않는 것은 사과할 경우 그에 따른 보상과 과거사 문제가 본격적으로 불거질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그들의 말을 빌리면 정부가 사과하면 그에 따른 보상과 당국 책임자의 문책이 뒤따라야 하기 때문이란 말인가?

요즘처럼 국민들 사이에 ‘국가란 무엇인가’가 심각하게 다가온 적 없고, 절실하게 와 닿은 적도 없다. 최근 인기리에 상영되고 있는 영화 「암살」에서 ‘일장기에 대한 경례’ 한 장면이 묘하게 국제시장의 ‘국기배례식’과 겹쳐지면서 감독의 의도였던 아니던 ‘쿵’하고 가슴을 내리친다.

 

경기 침체 노동자 탓?

 

메르스가 잠잠해지면서 이번엔 ‘노동개혁’이 탄력을 받을 모양이다. 여기서도 일방적인 친기업적이다. 미국 경제의 주류를 이루었다 이젠 수정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는 ‘신자유주의 경제’를 우리의 대통령과 경제수장은 마치 우리의 경제를 살릴 구제주인 것처럼 여긴다. 성장의 동력이 꺼져 가는 게 노동자의 탓인가? 한국 경제를 성장하지 못하게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 노동조합과 노동자의 부도덕 때문인가?

“해고하기 어려워 경제 살리기 힘들다”는 말을 들으면 노동자는 섬뜻하다. 노동자에게 해고는 무엇을 뜻하는 지 사주가 어떻게 알까? 불합리한 해고 때문에 노동자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생긴 것이 노동조합이다. 그러한 이유로 정부에서도 노동 3권을 보장해 주는 것이다.

경제 침체의 원인을 기존의 노동자에게 돌리고, 청년 실업은 주구장창 회사에 버티고 있는 장년층 때문이라고 호도한다. 20대와 50대를 싸움시켜, 자식세대의 아픔을 보지 말자고 마지 못해 일자리에서 떠나게 한다.

그러나 한 번 친기업적인 정책이 어떤 효과를 가져 왔는지 따져 보자. 대기업들에게 일자리를 창출해 달라고 엄포도 놓고, 애원도 하고, 각종 세금 혜택을 주었지만 그로 인해 벌어들인 현금을 싸들고 투자할 때가 없고, 투자할 분위기가 안된다는 핑계만 들었다. 각종 부조리와 부정으로 교도소에 간 대기업 총수들의 사면을 이야기한다. 사주가 없어서 공격적인 투자를 할 수 없다는 것이 이유다. 이건 이율배반적인 행위이다.

지난해 신년 기자회견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2017년에는 우리 경제가 잠재성장률 4%, 1인당 국민 소득 3만달러을 넘어서 4만달러를 바라보게 되며, 고용률 70% 달성에 청년·여성 일자리가 많이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소위 「4·7·4 비전」이다. 이명박 정부의 가장 허황된 거짓말인 「7·4·7(경제성장률 7%, 1인당 국민소득 4만달러, 7대 경제대국)」과 비교 되는 대목이다.

 

국민은 적폐 대상 아냐

 

LG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한국 1인당 GDP(국내총생산)는 2만7600달러에 머물 것으로 내다봤다. 작년 2만7963달러에 못 미치는 수치이다. 거짓말이 돼 버릴 것이 염려해서였을까. 핑계가 필요해서였을까. 그래도 경제가 뒷걸음질 치는 이유를 노동자들의 부도덕성으로 치부하는 것은 좀 치졸하다. ‘노동 현실’이 개혁돼야 한다는 것에는 노동자 역시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한국 경제가 지금 위태하다고 느끼는 점에선 모두 같은 심정이다.

지금의 정부는 끈기도 없고, 국민에 대한 애정도 없다. 국가 제일주의 또한 추상적이다. 애정이 있으면 대화가 가능하고, 대화가 깊어지면 이해심이 생긴다. 그 이해심은 긍휼함을 갖게 한다. 긍휼함이 우러날 때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며 공동의 선을 지향하게 된다. 국민은 싸워야 할 대상이 아니다. 국민은 아무 것도 모르는 무지렁이는 더욱 아니다. 다가와 주길 바라는 국민을 ‘적폐’로 삼는 것은 나라를 깨자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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