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8일 개최한 김영란법 시행령 제정을 위한 공개토론회에서 예외대상 선물금액 상한선을 5만원으로 정하자는 의견이 제기됐다. 3월 국회를 통과한 김영란법은 공무원 사회의 뿌리깊은 부정부패를 근절하기 위한 강력한 법안이고, 정식명칭은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다.

 

축산업 뿌리째 흔들

 

당초 공무원을 대상으로 했다가 사립대학 교수와 언론인까지 포함시켜 논란이 일기는 했지만 사회에 만연된 부정과 부패를 뿌리 뽑자는 점에서는 반대보다 찬성의 여론이 더 높다. 대상자들이 제3자에게 1회 100만원, 연간 300만원을 초과하는 금품을 받으면 직무 관련성과 관계없이 형사 처벌하도록 돼 있다. 다만 원활한 직무수행, 사교·의례, 부조 등을 목적으로 제공되는 음식물과 선물 등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일정 금액 내에서 허용하는 예외규정을 뒀다.

문제는 권익위가 논의하고 있는 선물금액 상한선 5만원이다. 농협축산경제리서치센터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과일의 경우 절반이 5만원 이상이고, 한우세트의 경우는 무려 90%가 10만원 이상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 과수농가와 한우농가의 경우 설과 추석 등 명절 특수로 일년 동안의 손실을 만회하고 목돈을 만질 수 있는 기회가 없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보고서는 권익위의 안대로 시행령·시행규칙이 정해지면 당장 한우농가와 연관산업의 손실은 현재 설·추석의 명절 특수가 8308억원임을 감안할 때 50%의 영향 시 4155억원, 30%의 영향을 받는다고 해도 무려 2493억원이라는 수치를 제시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데에 심각성이 있다. ‘선물금액의 5만원 상한선’은 축산업(농업은 제외하고)을 뿌리째 뒤흔드는 파장으로, 축산농가의 이탈과 축산정책의 퇴보, 외국산 축산물에게 모든 자리를 내어주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는 ‘핵폭탄’의 기폭제 역할을 하게 된다는 점에서 절대 시행되면 안되는 조항이다.

2001년 정부는 쇠고기 수입자유화를 통해 외국산 축산물 수입의 빗장을 열었다. 값싼 미국·호주·뉴질랜드 산 쇠고기가 무차별로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한우를 비롯한 축산물의 국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품질 고급화’를 내세웠고, 그 요체로 브랜드 축산물을 적극적으로 육성하기 시작했다.

 

성장동력 꺼지는 꼴

 

사료·종축·사양을 통일하는 3통(統)을 내세웠고, 축산물에 스토리를 입혀 소비자들에게 국내산 축산물은, 푸드마일이 길어 어떻게 사육되고 있는 지조차 모르는 외국산 축산물보다 안전하고 위생적이고 신선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를 통해 축산농가들의 의욕을 고취시키면서 ‘성장 동력’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소비자들은 안전과 위생이 보장된 국내산 축산물을 조금 더 높은 가격이어도 구입하겠다는 의향도 높아졌고, 그 의향은 현실화됐다.

그러나 상한선이 시행되면 성장 동력이 꺼진 상태에서 누가 과연 안전하고 위생적이고 신선한 축산물을 생산하려고 할까? 십 수 년 간 품질 고급화를 위해 흘린 땀과 소요된 자금이 모두 허사가 될 판이다. 축산농가들의 이탈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아무리 가축을 사육하는 일을 천직이라 생각해도 소득이 발생해야 유지할 수 있다. 고품질의 축산물을 생산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인들 어디 가당키나 한 일인가.

상한선이 시행되면 편법 한우 선물세트가 성행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편법적으로 가격을 다운시키는 경우도 생긴다. 이전의 세트를 만들려면 4만9900원 짜리 국거리와 등심 또는 갈비 등을 각각 다른 이름으로 포장해 전달하는 웃지 못할 일도 예상할 수 있다. 포장비용과 인건비 등에 대한 부담도 발생한다. 선물하는 이도, 받는 이도 잠재적 범법자로 둔갑한다.

한우 대신 비교적 가격이 저렴한 돼지고기나 닭고기 쪽으로 선물세트 구매패턴이 바뀌어 갈 것으로 보이지만 그렇다고 돼지나 닭고기도 웃을 일만은 아니다. 보다 차별화하려는 동력이 상실된 상태에서 오르는 생산비용과 소비자들의 고급화 추세를 ‘상한선’으로는 맞추기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이때 그 자리를 비교적 저렴한 외국산 쇠고기와 돼지고기 그리고 냉동육이 자연스럽게 차지할 것이라는 예상은 쉽다. ‘상한선’ 하나로 외국산 축산물은 무혈입성하는 꼴이다.

 

외국산은 무혈 입성

 

또 하나 더 있다. 최근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친환경 축산이나 무항생제 농가 육성은 할 필요도 없다는 점이다. 왜냐? 친환경으로 사육하려면 그에 대한 비용이 더 소요된 만큼 가격면에서도 차별화를 갖게 될 터이지만 생산된 축산물은 명절 특수 조차 누릴 수 없으니 말이다.

권익위원회의 토론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쉽게 ‘선물금액 상한선’을 논의했을지 모르지만 그 여파가 어떻게 어떤 방향으로 튈지를 충분히 고민했어야 했다. 그래서 ‘상한선’ 논의를 현장을 모르는 행정가들의 탁상공론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 유명한 「나비효과」를 간과했다는 점을 반성해야 할 시점이다. 축산농가나 축산인들의 입장에서는 정책도, 법도 제정신으로 판단하기 어려워 당최 정신이 없다. 축산업 전체를 죽이는 상한선을 마련한 이들을 보고 “저 사람들이 축산물 세트를 사봤어야 알지. 받는 데 익숙한 사람들 아냐?”고 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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