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씨는 어린이·어버이 날을 맞아 가족과 갈비탕 전문점을 찾았다. 어머니가 한 번 가본 적이 있는 ‘잘한다’는 갈비탕 집이었는데, 꽤 유명한 한우 갈비살 체인점이었다. 왕갈비탕 가격이 8000원으로 적혀 있어 갸우뚱 하던 A 씨는 그 밑에 작게 써 붙여 있는 원산지를 보고 쓴 웃음을 지었다. 친구들과 한 번 와 봤는데 양이 많고 맛이 있다는 어머니는 한우 갈비탕으로 알고 계셨던 것이다.

 

한우 매니아가 돌변

 

그날 A 씨는 특별한 날 호주산 갈비탕을 대접할 수 없어서 120g에 1만8000원 하는 한우 갈비살을 4인분 시켰다. 그런데 접시에 나온 것을 보니 차돌박이, 안창살, 살치살 그리고 갈비살 조금…메뉴에도 없는 ‘모듬’이었다. 주인 아주머니가 다가와 오늘 참 좋은 고기가 나왔다는 둥 원래 이런 좋은 고기는 안 나온다는 둥 바람을 잡는다.

무슨 트집이라도 잡을까봐 그녀는 고기를 구워 먹는 동안 몇 번을 테이블을 오가며 설레발이다. A 씨는 짜증이 나서 “우리는 ‘모듬’ 시킨 적이 없다. 그리고 접시의 고기 중 갈비살이 가장 이상하다”고 말했지만 분위기 때문에 더 따지지도 못했다. 안창이니 살치니 고기가 그다지 나쁘지 않았지만 갈비살 만큼은 아무래도 꺼림직했다. 호주산인 듯한 맛을 지울 수가 없었다.

청주 시내 유명하다는 곰탕집을 찾았던 B 씨도 마찬가지의 경우를 당했다. 탕 안에 들어 있는 고기의 질감이 아무래도 이상했다. 양이 많다는 이유로 찾는 손님들이 많았지만 그 양 때문에 원산지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는 듯 했다. “그럼 한우겠어? 외국산이겠지.” 같이 간 지인들에게 의심스러움을 이야기하자 돌아온 말이다. 그래도 그 중 자신과 같이 의문이 든 사람들이 있었던 모양이다.

얼마 전 그 집은 농수산물의 원산지 표시에 관한 법률 위반 협의로 불구속 입건됐다는 말을 들었다. 지난해 7월부터 올 1월까지 호주산 볼살 520kg을 곰탕에 넣어 팔면서 ‘호주산+국내산’으로 원산지를 표기해 5500만원의 매출을 올린 혐의였다.

C 씨는 국내산 한우에 대해 관심이 별로 없다. 다른 고기보다 값을 더 주고 맛있게 먹으려고 구입한 한우고기의 맛이, 일전에 맛나게 먹었던 그 고기와 달랐기 때문이다. 속았다는 분함 때문에 아예 외국산 쇠고기를 구입한다. 한우 매니아였던 그는 이제 외국산 쇠고기를 전파하는 전도사 역할을 한다. “외국산 쇠고기도 등급이 좋은 건 먹을 만 할 뿐 아니라 더 좋아”

 

솜방망이 처벌 원인

 

국내 축산업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생산지에서는 ‘악취와 공장식 축산’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소비지에서는 바로 이같은 ‘원산지 표시 위반’의 부정 유통에 있다. 생산지가 시스템의 문제라고 한다면 소비지는 ‘양심’의 문제이다. 어느 것이 더 크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설 또는 추석 등 명절 때만 되면 국내산으로 둔갑시키는 불량한 유통업체들의 농간으로 골탕 먹는 쪽은 매번 소비자와 생산자이다.

원산지표시제는 농축산물·수산물이나 그 가공품 등에 대해 적정하고 합리적인 원산지를 표시하도록 해 소비자의 알권리를 보장하고, 공정한 거래를 유도함으로써 생산자와 소비자를 동시에 보호한다는 목적으로 시행됐다.

이를 위반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이나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고, 표시를 하지 않을 경우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 처분을 받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위반업체와 업주에 대한 처벌이 ‘솜방망이’이거나 심지어 생계형 범죄 취급까지 함으로써 상습적으로 위반하는 사례가 줄지 않고 있다. 또 단속이 없는 주말을 이용하거나, 섞는 방식 등 더욱 교묘해져 가고 있다.

최근 원산지표시 위반사범의 처벌 강화를 위해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상습범에 대한 가중처벌 규정을 신설해 내달 15일부터 시행한다고 발표한 것은 뒤늦었지만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로써 위반금액 5000만원 미만 중소규모 유형의 경우 당초 기본 형량이 징역 4월~1년이었던 것을 10월~1년6월로, 일반 유형 징역 10~2년을 1년6월~3년6월, 5억원 초과 대규모 유형은 1년6월~3년을 2년~4년6개월로 높였다.

 

발상의 전환 큰 울림

 

여기에 생산자단체가 직접 원산지 표시제 위반업소를 대상으로 민사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나서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올바른 유통질서를 세워 생산자와 소비자를 동시 보호하는 한편 솜방망이 처벌로 부정을 저지르는 비양심적 유통업체에 금전적인 손실을 가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전국한우협회는 지난 1일 권준호 법률사무소와 업무협약을 맺었다. 이에 따라 권준호 법률사무소는 한우협회를 대신해 위반업소에 대해 소송행위, 변제의 수령, 상소 제기, 재판상 또는 재판 외의 화해, 손해배상금 범위 산정 등 기타 소송에 관한 일체의 권한을 위임받아 진행하게 된다.

이번 협약은 향후 한우고기를 부정유통하다 적발된 업자가 법적·행정적 처벌을 받는 것과 함께 생산자단체의 민사소송까지 겪어야 됨으로써 부정유통의 뿌리가 근절될 수 있는지의 여부를 떠나, 생산자들이 처음으로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비양심 유통업자와의 싸움에 직접 나섰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김홍길 회장의 ‘비양심적 유통업자의 영원한 퇴출’ 선언은 소비자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그 어느 홍보보다 효과가 뛰어난 신선한 ‘발상의 전환’으로, 축산업계의 큰 울림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저작권자 © 축산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